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의 하나 송광사, 훌륭한 스님을 가장 많이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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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의 하나 송광사, 훌륭한 스님을 가장 많이 배출
  • 윤현권 기자
  • 승인 2019.10.2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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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전경
▲송광사 전경

송광사는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조계산(曹溪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혜린 관련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이다. 대길상사(大吉祥寺)·수선사(修禪社)라고도 하며,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우리 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의 하나로 승보사찰(僧寶寺刹:훌륭한 스님을 가장 많이 배출함으로서 얻어진 이름)로서 매우 유서깊은 절이다.

승보사찰은 불교 교단을 이루는 세 가지 요소인 불(佛)·법(法)·승(僧) 가운데 승, 곧 훌륭한 스님이 많이 배출된 사찰을 말한다. 송광사는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을 비롯하여 조선 초기 고봉국사까지 열여섯 분의 국사(國師)를 배출하였다. 국사는 나라가 인정하는 최고의 승직으로 시대를 대표하는 승려를 일컫는데, 그런 국사가 한 절에서 열여섯 분이나 배출되었으니 세세손손 절의 자긍심이 될 만하지 않겠는가.

본래 송광사는 신라 말 혜린선사에 의해 창건된 길상사(吉祥寺)라는 자그마한 절이었다. 이 길상사가 큰절로서 규모를 갖추고 새 불교사상의 중심지로 이름을 얻은 때는, 보조국사가 절의 면모를 일신하고 정혜결사(定慧結社)의 중심지로 삼은 고려 명종 27년(1197)부터 희종 원년(1205)에 이르는 시기이다.

정혜결사란 고려 후기 불교계가 밖으로는 정치와 지나치게 밀착하여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안으로는 교(敎)와 선(禪)의 대립으로 혼탁해지자 보조국사를 중심으로 기존 불교계를 반성하고자 펼친 수행운동을 말한다. 보조국사 이후 참선과 지혜를 함께 닦는 정혜쌍수(定慧雙修)라는 수행기풍은 조선 오백년을 거쳐 오늘날까지 우리 불교의 사상적 기둥을 이루고 있다.

보조국사는 정혜결사의 중심지로 삼은 이 절의 이름을 정혜사(定慧社)2)로 바꾸고자 했지만 가까운 곳에 이미 같은 이름을 가진 사찰3)이 있어 수선사(修禪社)로 바꾸었다. 수선사라는 이름은 ‘깨달음[悟]은 혜(慧)이고 닦음[修]은 정(定)이므로 정혜(定慧)를 아우르는 것이 선(禪)이 된다’는 뜻을 드러내며, 정혜결사 의지를 담고 있다.

즉위 전부터 보조국사를 매우 존경한 희종이 길상사의 이름을 수선사로 고치도록 친히 글을 써주었다고도 전한다. 이후 조선 초기에 이르면 수선사라는 절 이름은 송광사로 바뀐다. 송광사라는 이름은 조선 초기 소나무가 많아 ‘솔뫼’라고도 불리던 송광산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절 이름의 실마리를 제공했던 송광산은 도리어 조계산으로 바뀌었다.

송광사는 보조국사 이후 2대 국사인 진각국사와 조선 왕조가 성립된 직후의 16대 고봉국사에 의해 각각 크게 중창되었으나 정유재란으로 절이 크게 불타고 승려들이 쫓겨나는 수난을 겪었다. 이후 인적이 끊겨 폐사 지경에 이르렀는데 임진왜란 전후에 서산대사와 쌍벽을 이룰 만큼 법명이 높았던 부휴대사(浮休大師, 1543~1615)가 들어와 송광사의 명맥을 다시 이었다.

▲고려 고종제서
▲고려 고종제서

이후 송광사는 헌종 8년(1842)에 큰 불을 만났으며 그 이듬해부터 철종 7년(1856)까지 다시 크게 중창되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크게 파손되었다가 조금씩 복구·중창되었으며, 근래에는 대웅보전을 새로 짓는 등 대규모 불사가 있었다.

현재 송광사는 건물 50여 동의 사찰로 작지 않은 규모이지만, 이미 고려 명종 때부터 건물 80여 동을 갖춘 대가람이었고, 한국전쟁 이전만 해도 그 규모가 유지되고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건물이 많았기에 송광사에는, 비가 오는 날에도 비를 맞지 않고 자유롭게 경내를 오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처럼 송광사는 사격(寺格)이나 규모 면에서 우리 불교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목조삼존불감
▲목조삼존불감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에 있다. 호남고속도로 주암교차로에서 주암 면소재지인 광천리로 난 22번 국도를 따라 약 400m 가면 요곡삼거리가 나온다. 요곡삼거리에서 왼쪽 승주로 난 22번 국도를 따라 약 300m 가면 다시 문길삼거리가 나온다.

문길삼거리에서 오른쪽 보성으로 난 27번 국도를 따라 8.4㎞ 가면 길 앞 왼쪽에 느티나무가든이 있는 송광사 삼거리가 나온다. 송광사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난 834번 지방도로를 따라 1.1㎞ 가면 송광사 입구 관광단지 주차장에 이르고 주차장을 지나 1.2㎞ 더 가면 송광사에 닿는다(고속도로에서 송광사에 이르기까지는 곳곳에 안내표지판이 서 있다).

순천(순천역 앞)에서 송광사까지는 111번 좌석버스가 승주읍과 광천리를 거쳐 하루 16회 다닌다(1시간 10분 소요). 광주 종합버스터미널에서도 송광사까지 버스가 하루 9회 다닌다.

순천 송광면과 승주읍에 걸쳐 있는 조계산(884m)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넉넉하고 유순한 산이다. 또 등산로도 험하지 않고 평탄한 길이 많아 어린아이를 동반하더라도 편히 산을 넘을 수 있다. 조계산 산행은 여러 코스가 있는데 그중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이어지는 코스가 가장 대표적이다. 송광사→마당재→야영장→선암굴목재→선암사로 이어지는 산행거리는 약 7㎞이며 3시간 정도면 여유 있게 산을 넘을 수 있다.

◆가람 배치

▲송광사 가람배치도
▲송광사 가람배치도

송광사는 조계산 기슭에 기대 서향하고 있다. 서향이 흔한 예는 아니지만 송광사 주변의 자연조건으로 볼 때 계곡물이 흐르고 산자락이 열려 있는 서쪽을 향해 절이 열린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송광사 화엄일승법계도
▲송광사 화엄일승법계도

송광사의 가람 배치를 잘 살펴보면 상단·중단·하단 세 영역의 중심축이 일직선을 이루지 않고 조금씩 틀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전체적인 축을 따르면서도 부분적으로 자유로움을 지향하는 선종사찰의 한 특성이다.

◆청량각에서 천왕문까지의 진입 영역

절 아래쪽 상가를 지나 계곡을 따라 한참 오르다보면 내를 가로지르는 멋진 누다리를 만난다. 송광사의 길을 여는 청량각(淸凉閣)으로, 막상 걸어 지나갈 때는 눈길이 가지 않지만 개울 쪽에서 보면 무지개다리 위에 서 있는 아름다운 정자이다. 잠시 앉아 다리쉼하며 송광사로 들어갈 마음의 준비를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송광사의 숲길
▲송광사의 숲길

청량각을 통과하면 계곡을 끼고 측백나무와 잡목숲이 나타나고 그렇게 숲길에 취해 걷다보면 일주문과 함께 송광사 역대 고승과 공덕주들의 비를 모아놓은 비림(碑林)이 나온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단칸짜리 건물 두 채가 조그맣게 서 있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 가운데 가장 작지 않을까 싶은 척주각(滌珠閣)과 세월각(洗月閣)이다. 척주각과 세월각 앞에는 깃대처럼 생긴 높이 15m의 고사목이 있다.

▲송광사 일주문
▲송광사 일주문

경내로 들어가려면 일주문을 지나 왼쪽에 위치한 능허교(凌虛橋)라는 무지개다리 위에 놓인 우화각(羽化閣)을 통과해 계류를 건너야 한다. 계류와 능허교, 우화각이 삼박자를 이루는 풍광은 경치 좋은 송광사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절경이다. 계류가 흘러내려가는 쪽으로 임경당(臨鏡堂)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계류가 흘러오는 우화각 뒤쪽으로는 침계루(枕溪樓)가 의젓하게 자리하고 있다.

▲일주문 소맷돌의 돌사자
▲일주문 소맷돌의 돌사자

천왕문은 정면, 측면 각 3칸으로 광해군 원년(1609)에 초창되었다고 전해지며 숙종 44년(1718)에 중수되었다. 내부에 있는 사천왕상은 순조 6년(1806)에 최종적으로 채색되었다. 사천왕상 앞에는 각기 동방지국천, 남방증장천, 서방광목천, 북방다문천이라는 설명과 더불어 송광사의 사계절을 담은 사진이 걸려 있다.

◆종고루에서 대웅보전까지의 중심 영역

▲척주각과 세월각
▲척주각과 세월각

천왕문을 지나면 먼저 종고루가 앞을 가로막는다. 종고루 아래로 난 계단을 통과해야 절의 중심이 되는 대웅보전 앞마당으로 들어설 수 있다. 대웅보전 앞마당은 종고루를 기준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약사전, 영산전, 지장전, 대웅보전, 승보전, 성보각으로 둘러싸여 있다.

▲우화각 전경
▲우화각 전경

약사전과 영산전은 대웅보전 앞마당 한귀퉁이에 자리한 자그마한 건축물들이지만, 건축적인 가치가 있어 각각 보물 제302호, 제303호로 지정돼 있다.

◆보조국사 지눌과 부도

▲약사전과 영산전
▲약사전과 영산전

관음전 뒤편 양지바른 언덕에 이르면 보조국사의 것이라고 전해지는 부도가 있다. 고려 말기에 제작된 높이 2.5m의 이 부도는 높직한 장방형 기단 위에 몸돌이 둥글게 조각됐으며 지붕돌도 간략하여 대체로 건조하고 딱딱한 느낌을 준다.

▲대웅보전
▲대웅보전

보조국사의 속성은 정씨이며, 법명은 지눌, 만년에는 목우자(牧牛子)라는 호를 즐겨 사용하였다. 황해도 서흥땅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여러 가지 약을 구해 먹여도 잘 낫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부모가 부처님께 빌어 건강해지면 출가시키겠다고 맹세하였는데 그후 병이 깨끗이 낫자 약속한 대로 8세에 출가시켰다.

◆수선 영역

▲대웅보전
▲대웅보전

대웅보전 뒤편의 높은 석축 위에 조성되어 있는 이 수선 영역이야말로 송광사를 승보사찰답게 하는 곳이다. 여기에는 국사전(國師殿), 설법전(說法殿), 수선사(修禪社), 하사당(下舍堂), 상사당(上舍堂), 응진전(應眞殿) 등 여러 건축물이 있다.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내부를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보조국사 부도가 있는 언덕에서 아쉬운 대로 수선 영역의 공간구성을 엿볼 수 있다. 수선사는 보조국사 지눌의 거처였다고 전한다.

◆송광사의 문화재들

▲보조국사 부도
▲보조국사 부도

송광사의 문화재 가운데 국보로 지정된 것은 국사전과 목조삼존불감(木彫三尊佛龕, 제42호) 그리고 고종제서(高宗制書, 제43호)이다.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는 모두 13점인데, 다음 다섯 책은 고려시대 목판대장경들을 본보기로 삼아 조선시대 세조 때 다시 새겨 펴낸 목판본이다.

▲보조국사 영정
▲보조국사 영정

고려 숙종 때 대각국사 의천이 직접 감수한 「대반열반경소」(大般涅槃經疏, 보물 제90호),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妙法蓮華經觀世音菩薩普門品三玄圓贊科文, 보물 제204호), 「대승아비달마잡론소」(大乘阿毗達磨雜論疏, 보물 제205호), 「묘법연화경찬술」(妙法蓮華經讚述, 보물 제206호), 「금강반야경소개현초」(金剛般若經疏開玄鈔, 보물 제207호).

▲수선 영역
▲수선 영역

이밖에 옛 승려들이 경권(經卷)을 말아둘 때 사용했던 정교한 죽공예품인 경질(經桎, 보물 제134호), 불경을 넣은 목함에 달아서 내용을 표시하는 데 사용된 경패(經牌, 보물 제175호) 43개, 의식이 있을 때 사용한 금동요령(金銅搖鈴, 보물 제176호) 등이 있다. 최근에는 16국사 영정이 보물 제1043호로 지정되었다.

▲국사전
▲국사전

건물 가운데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는 앞서 살펴본 하사당·약사전·영산전이 있다. 그외 능허교 및 우화각, 보조국사비, 자정국사 사리함, 능견난사(能見難思), 금강저(金剛杵), 고봉국사주자원불(高峰國師廚子原佛), 팔사파문자(八思巴文字) 등이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윤현권 기자    yhk@naver.com


기사 URL : http://www.iworld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3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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