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월드투데이] 박희숙 기자 = 판사 출신 김윤수(68)씨는 경남고·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법시험을 통과해 판사 10년, 변호사 10년, 다시 시군(市郡) 법원 판사 생활 10년을 거쳐 현재는 경기도 양평에 칩거하며 불경 번역만 하고 있다. 변호사 활동은 사실상 접었다.

김씨가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40대 중반 변호사 시절. 우연히 서점에서 '임사(臨死) 체험' '윤회(輪廻)' 관련 서적을 발견하면서다. '윤회는 있다, 없다'는 엇갈린 주장을 담은 책을 탐독하던 그에게 불교가 다가왔다. 그러면서 '지금 생(生)이 끝이라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현재의 성취에 매달리고 욕망에 끌려다니는구나.

우리가 다음 생을 살아야 한다면?'이라는 의문이 들었다. 재판정에서 마주한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 특히 많은 것을 누리고 있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욕망에 사로잡혀 흉한 꼴을 당하고 있었다.

선어록(禪語錄) 등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1년에 200권 가까운 불교 서적을 읽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궁금증, 의문이 다 풀리진 않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번역에 문제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선종(禪宗)의 거목인 혜능 스님의 가르침을 담은 '육조단경(六祖壇經)'과 '주석 성유식론' 등을 번역해 봤다. 원고를 완성하자 걱정은 경제성, 즉 팔릴지였다.

2006년 아예 자신의 아호를 딴 '한산암'이란 출판사 등록을 하고 출판 편집을 배워 직접 자신의 책을 출판했다. "지금까지 10여종 책을 냈는데, 다행히 초판은 모두 소화해 손해는 안 봤다"고 했다. 입문서 격인 '불교는 무엇을 말하는가'는 개정판 포함해 7000부를 판매했다.

'아함경'은 오랜 숙제였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나눈 대화와 가르침을 원어에 가깝게 팔리어(語)로 기록한 것이 '니까야'라면, 산스크리트어(語) 등에서 한문으로 옮겨 적은 것이 아함경이다. 부처님과 제자들의 대화가 생생하게 기록됐지만 분량이 방대한 데다 내용이 반복되고 때로는 '알면서 거짓말하면 절대 안 된다'처럼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도 많다. 이 때문에 중국을 거친 대승불교 전통을 이은 한국 불교계에선 오랫동안 주요 경전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아함경을 읽으면서 그는 비로소 궁금증이 풀리기 시작했다. 어렵게 느껴지던 부처님 가르침의 배경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 마침 전재성 박사와 각묵 스님 등이 팔리어 경전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대조할 대상이었다. 그는 팔리어 경전이 번역되기를 기다리며 '반야심경' '묘법연화경' '대방광불화엄경' 등을 번역·출간했다. 번역 기준은 간단했다. '좋은 번역이 있는 경우는 빼고 내가 이해되지 않는 경전만 번역한다'였다.

2011년 만 60세로 퇴직한 후 아함경 번역에 뛰어들어 8년이 걸렸다. 다행히 지인들을 중심으로 140여명이 16권 한 질을 예매해주며 응원했다 . 그는 "개신교인과 천주교인들은 대부분 성경을 소장하고 읽으면서 예수님 말씀을 안다"면서 "불자(佛子)가 700만~800만이라는데 부처님의 말씀을 직접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신행생활이 아닌 공부로 불교를 배운 그에게 참선 수행은 숙제였다. 마음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는 "수행과는 금생(今生)에 인연이 아닌 것 같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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