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 성모마리아 대성당 사진제공=남양 성모마리아 대성당

[화성=월드투데이] 박장권 기자 = 숲 위로 솟아오른 두 개의 탑이 단풍 물든 남양성모성지를 굽어보고 있었다.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 설계로 기대를 모았던 경기 화성시 '통일기원 남양 성모마리아 대성당'이다. 성당 자리에서 양쪽으로 뻗어나온 언덕 줄기는 성지를 포옹하듯 감싸안았다. 평일 낮인데도 소풍 나온 어린이들과 산보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최근 이곳에서 만난 이상각(61) 신부는 "먹고 싶은 것 참고 한 달에 2만원씩 봉헌해주시는 분들의 희생을 모아 짓는 성당"이라며 "기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1989년 인근 남양성당에 부임한 뒤로 병인박해(1866) 순교지였던 이 성지를 가꾸는 데 30년 세월을 바쳤다. 그 결실인 대성당이 내년 초 준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달부터 음악회를 열고 건축물 개방 행사에도 참여하며 조금씩 문을 열기 시작했다. "봉헌을 약속한 분들이 지금까지 2만7000명쯤 됩니다. 폐지 줍는 할머니도 계시고, 군것질을 참을 수 있게 신부님이 기도해달라던 초등학생은 지금 고2가 됐죠."

자발적 기부 행렬이 이어지는 건 외국 유명 건축가의 멋진 성당이어서만은 아니다. 이 신부는 성당 건립의 의미로 크게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 '아시아의 복음화'다. "대성당 안에 아시아 여러 나라의 성모님도 모시려고 합니다. 아시아 교회의 발전을 위해 기도하게 되는 거죠. 우리나라에 온 이주 노동자들에게도 위로가 될 겁니다." 두 번째 '한반도의 통일'은 이곳이 성모성지로 선포된 1991년 이래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이 신부는 "소련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는 걸 보며 이제 우리가 기도할 차례라고 생각했다"면서 "이곳을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장소로 성모님께 바쳐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그 뜻에 공감한 당시 수원교구장 고(故) 김남수 주교가 이곳을 남양성모성지로 선포했다.

남양성지를 전담하게 된 1995년, 이 신부는 한 건축 잡지의 유럽 답사에 참가하면서 건축에 눈을 떴다. 그때 접한 이름 중에 마리오 보타가 있었다. 보타와 함께 일했던 한만원 건축가를 통해 성당 설계를 부탁했고 취지를 전해들은 보타는 흔쾌히 승낙했다.

2011년부터 한국을 여러 차례 오가며 보타가 내놓은 해법은 40m 높이의 두 탑이었다. 우뚝하지만 고압적이지 않다. 자연스럽게 주위에 녹아들면서도 풍경에 새로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탑 하단부인 대성당 제대(祭臺)에서 올려다보면 깊디깊은 빛의 우물에 침잠하는 느낌이다. 보타는 벽돌 줄눈의 색깔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최근 중국을 방문하는 길엔 인천공항 환승 시간을 쪼개 현장을 찾았을 만큼 애정을 쏟고 있다. 탑 꼭대기 작은 십자가의 마감을 확인하려고 비계를 걸어 올라가며 "이것이 건축가에겐 십자가의 길"이라 말했다고 한다.

1200석 정도의 대성당은 당초 계획에서 절반으로 줄였는데도 상당한 규모다. 이 신부는 "천주교 신자만을, 미사만을 위한 공간으로 짓는 성당이 아니다"라면서 "지역의 문화적 거점이 되고 주민들에게 남양 사람이라는 긍지를 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이 신부의 평생 헌신은 개인적 체험에서 비롯됐다. 남양에 오기 전 새내기 신부 시절, 물에 빠져 죽다 살아난 그는 어머니에게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이 물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던 그때, 어머니는 "네 아이를 데려가겠다"는 성모님 치 맛자락에 울며 매달리는 꿈에서 깨어나 기도하고 있었더란 얘기였다.

성모님을 위한 일을 하겠다고 다짐한 그의 여정에서 대성당은 중요한 이정표지만 끝은 아니다. 성당 곁에선 역시 세계적 건축가인 페터 춤토어가 '티 채플(tea chapel)'이라는 경당(천주교 기도실)을 구상 중이다. 춤토어는 현장의 기상 조건과 들려오는 소리까지 고려해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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