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특활비 유죄' 판결 사진제공=뉴스1

[서울=월드투데이] 남궁진 기자 = 재임 당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대법원이 항소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대법원은 앞서 2심에서 징역 25년이 선고된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도 항소심을 재심리하라는 판결을 내렸었다. 박 전 대통령의 확정 형량은 새누리당 공천개입 혐의와 관련해 선고받은 징역 2년이다. 최종 형량은 두 재판의 파기환송심과 상고심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28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 전 대통령의 상고심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27억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항소심에서 무죄로 봤던 일부 혐의를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특활비 관련 형량은 더 무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5월부터 2016년 9월까지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35억원의 특활비를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상납받은 특활비를 놓고 직무에 대한 대가성이 없다고 보고 뇌물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국정원장들을 ‘회계관계직원’이라고 보고 국고손실 혐의를 유죄 판단해 징역 6년에 추징금 33억원을 선고했다.

2심도 뇌물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또 국정원장들을 회계관계직원이 아니라고 보고 국고손실 혐의도 일부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남 전 원장으로부터 받은 특활비에 대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징역 5년에 추징금 27억원을 선고했다.

대법원 상고심의 쟁점은 국정원장을 회계관계직원으로 볼 수 있는 지였다. 국정원장이 회계관계직원이라면 국고손실죄를 적용할 수 있지만, 회계관계직원이 아니라면 국고손실 혐의는 무죄가 된다. 국정원 특활비가 뇌물인지도 쟁점이 됐다.

대법원은 국정원장이 회계관계직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국정원장은 특활비 집행 과정에서 사용처와 지급 시기·금액을 직접 확정하는 등 ‘지출원인행위’를 수행하고, 특활비를 실제로 지출하도록 하는 등 자금지출행위에도 관여한다는 것.

국정원 특활비가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한 하급심의 결론에는 문제가 없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다만 무죄 이유로는 "횡령 범행에 의해 취득한 돈을 내부적으로 분배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과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사이에 국정원 자금을 횡령해 박 전 대통령에게 넘기기로 하는 ‘공모’가 있었기 때문에 뇌물이 아니라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횡령한 돈을 내부적으로 분배하는 경우 뇌물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법리를 구체적 사안에 적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이 받은 35억 가운데 33억원은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에 해당한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남은 2억원은 2016년 9월 이병호 전 원장이 건넨 돈이다. 대법원은 이 돈을 뇌물로 봤다. 대법원은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8월쯤 이병호 전 원장에게 국정원 자금 교부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는데, 이병호 전 원장은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결정으로 특활비를 건넸다"며 "박 전 대통령은 이병호 전 원장이 지시 없이 건넨 돈을 별 다른 이의 없이 받았는데, 이 돈은 종전에 받던 것과는 성격이 다른 돈이라는 것을 미필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국정원장의 지휘·감독 및 인사권자로서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국정원장이 대통령에게 자발적으로 거액을 건네는 것은 대통령의 국정원장에 대한 직무집행에 관해 공정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며 "박 전 대통령과 이병호 전 원장은 직무상 관계가 있을 뿐, 2억원을 주고받을 정도의 사적인 친분관계는 없다"고 전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국정원장이 회계관계직원에 해당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명확히 판시했다. 이에 따라 1심에서 징역 2년~2년 6개월을 각각 선고받은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도 항소심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세 전직 국정원장은 항소심에서 "국정원장은 회계관계직원이 아니다"라는 판단에 따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혐의에 대해 무죄 판단이 내려졌다.

다만 ‘문고리 3인방’에 대해서는 원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이재만 전 비서관은 징역 1년 6개월, 안봉근 전 비서관은 징역 2년 6개월에 벌금 1억원·추징금 1350만원, 정호성 전 비서관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1억원이다. 대법원은 "원심의 사실 인정과 법리 적용에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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