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예술의전당 제공]

[서울=월드투데이] 박희숙 기자 = 2019년 회색빛 도시를 사는 아이들은 네모난 창(스마트폰 불빛·유튜브)에만 골몰한다.

그 '네모난 창'을 벗어나게 한 '루돌프'가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 제비처럼 몰려든 아이들은 (가상이지만) 눈송이를 맞으며 옹기종기 재잘거렸다. 어색한 몸짓들은 금방 유연해져 생기로움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17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국립현대무용단(예술감독 안성수)의 '루돌프'는 '어린이를 위한 현대무용 작품'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개막 한 달 전부터 전 회 매진을 기록, 일부 공연은 객석을 추가 오픈하기도 했다. '루돌프'라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사슴이 주인공이 아니다. 빨간 엉덩이를 가지고 있는 원숭이 '루돌프'가 주인공이다. 숲 속에 사는 루돌프는 자기만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찾으러 모험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긴팔 원숭이, 하마, 악어 등 다양한 동물들을 만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상상력이 극대화된다. 네 무용수가 팔, 다리 그리고 몸 등을 엇갈리며 다양한 동물을 표현하고 숲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루돌프'의 이야기를 만든 안무가 이경구는 "루돌프가 빨간 코를 가진 사슴이 아닌, 빨간 엉덩이를 가진 원숭이라는 가설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라며 "'루돌프가 왜 원숭이일까?'라는 질문을 통해, 어린이들이 익숙한 대상을 바라볼 때 낯선 것을 상상하는 힘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아이들은 극을 관람하는데만 그치지 않는다. 루돌프가 악어를 내좇기 위해 방귀를 모을 때, 입에서 나는 소리로 힘을 보태준다. 마지막에는 무대에 올라 할아버지가 루돌프를 찾도록 도움을 주고 무대 위에서 방방 자유롭게 뛰어다니기도 한다.

이미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린 무용작품이 있다. 발레리노 겸 안무가 유회웅의 안무작인 창작 발레극 '똥방이와 리나'다. 아이들의 건강과도 연관이 돼 부모들 사이에서도 호평을 듣고 있다. 성공한 공연 사례로 일본 명문대로 가서 발표를 하기도 했다. 유 안무가는 대학원에서 이 작품 관련 석사 논문도 쓰는 중이다.

어린이들에게 친근한 똥과 방귀 캐릭터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루돌프'에서도 방귀 소리와 이야기만 나오면 객석에서 까르르, 웃음보가 터졌다.

'루돌프'에서 또 인상적인 부분은 자리 배치다. 맨 앞 줄은 어린이만 가운데 줄은 어린이와 부모, 마지막 줄은 어른만 앉을 수 있다.

최근 1000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를 상영하는 극장들 사이에서 화두가 됐던 '노키즈 존'에 대한 우려는 '루돌프'에서는 없다.

아이들과 함께 문화생활을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죄인 취급'을 받는 이 시대에, 50분 동안 아이들이 공연을 보면서 마음껏 웃고 떠들고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루돌프'는 마련해준다.

세계 공연계 흐름과 달리 우리나라의 아동·청소년 관련 공연물 시장은 척박하다. 특히 유아들을 위한 공연은 전무한 상황. 지난 7, 8월 대학로와 세종문화회관 일대에서 열린 '2019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에서 스웨덴 달리아 아신의 베이비 드라마 '마음의 정원'은 금세 티켓이 매진됐다. 보호자 1명을 동반한 0~12개월만 관람 가능한 공연으로 아이들 정서 발달에 크게 도움이 됐다.

최근 국내 공연계도 유아부터 청소년까지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제작하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고 있다. 특히 국립현대무용단은 작년년부터 5년간 '어린이·청소년 무용 레퍼토리 개발 프 로젝트'(2018~2022)를 추진 중이다. 미래 세대가 성장 과정에서 현대무용 향유 경험을 쌓고, 이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도록 돕기 위함이다.

이번 '루돌프' 공연을 앞두고 벨기에 출신 안무가인 카롤린 코르넬리 어린이 무용 창작 단체 니아쉬(NYASH)의 예술감독을 초청, 48개월 이상~60개월 이하·7~9세 어린이를 나눠 움직임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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