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경 본부장

3년 전인 2016년 11월 초.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국회의원 129명 전원이 국회 로텐더홀에 모였다.

“이 모든 사태는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잘못입니다. 의원 모두 역사와 국민 앞의 죄인입니다. 새누리당은 죽어야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사즉생의 각오로 다시 태어나겠습니다”

최순실 국정개입 파문 발생 10일도 안 돼 밝힌 대국민 사과문이다

이후 대통령은 탄핵당하고 자유한국당으로 당명도 바꿨다. 대선에서 557만 표라는 큰 표 차로 대패했다. 총선에 이은 두 번째인 패배였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세 번째, 재·보선에서 네 번째로 패배했다. 다음날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90명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며 또 무릎 꿇고 대국민 사죄를 했다.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정권까지 뺏겼다. 죽어야 산다고 의원 모두가 무릎까지 꿇었다. 존재감 없던 문재인 야당에 ‘그랜드슬램’의 영광을 안겨줬다. 그런데 책임지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사즉생의 각오는 면피용 액세서리였다.

탄핵 사태 이후 자유한국당은 내 탓은 없고 전부 네 탓을 한다. 2년도 못 돼 중앙권력과 지방 권력까지 모두 빼앗겨 빈털터리가 됐음에도 정신 차리지 못했다.

조국 일가 비리, 청와대의 감찰 무마, 선거공작 사건 등등 여권 악재가 줄을 잇지만, 자유한국당에 대한 국민 시선은 싸늘하다. 책임은 피하고 정리·정돈도 못하는 한심한 야당에 어느 국민이 애정과 신뢰를 보내겠는가?

조국 사태 국면에서 여당 초선 두 명이 불출마선언을 했다. 새해 들어 현직 장관인 여성의원 3명을 포함해 4명이 추가 불출마선언을 했다. 여당 불출마자는 벌써 두 자리다.

자유한국당에도 김세연 같은 젊고 유망한 인사가 불출마를 선언했다. 김 의원의 자기희생은 내부혁신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소참세연’(읍참마속이 아니라 웃으며 김세연만 당직에서 잘랐다)으로 끝나 버렸다. 냉소적인 신조 사자성어만 남긴 채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내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당에선 9명이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그중 6명이 김무성, 김세연 등 부산·경남 출신(PK)이다. PK 의원 22명 중 27%로 4명 중 한 명꼴이다.

자유한국당 당무감사 결과 대구·경북(TK)의 현역의원 교체요구는 전국 최고다. 19명 의원 모두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구 관리가 부실하고 당원과 지역민이 불신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불출마 의사를 밝힌 TK 의원은 한 명도 없다.

박 전 대통령이 집요하게 자기 사람으로 공천한 곳이 TK다. 그래서 TK 의원들은 대부분 친박계다. 탄핵사태 이후 TK 중심 친박계는 한때 위기를 맞았으나 당내 주류위치를 되찾았다. 나경원 원내대표와 황교안 대표 선출과정에서 세를 과시하며 부활한 것이다. TK 친박 의원들은 대부분 친황계로 변신하면서 지금은 주요 당직자가 되었다. 공천국면에서 주요 당직자가 된 것이다.

대구·경북의 진박(眞朴) 공천 해프닝은 총선 패배→탄핵→대선 패배→지방선거 및 재·보선 패배로 이어진 실마리였다. 최다 수혜자로서 책임을 질만도 한데 나 몰라라 한다.

지난 연말 여당은 예산안, 선거법, 공수처법 강행처리를 했다. 새해 들어 대통령은 추미애 의원을 청문보고서 없이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벌써 23번째 청문보고서 없는 장관임명이다. 역대 정권 중 최대 규모다. 국회 존중이란 개념은 대통령 머릿속에는 없는 것이다.

의회민주주의는 실종됐다.

이 모든 일을 문재인 정권이 태연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지리멸렬한 자유한국당 때문이다. 제1야당이 우습게 보이는 것이다. 제1야당이 제대로 된 견제를 통해 무너진 의회민주주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정권견제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힘과 세력이 없이 입으로 하는 공격은 공염불이다. 강행처리 3번을 연속으로 당하면서 생생하게 경험하지 않았던가?

21대 4.15 총선이 100일 남았다. TK와 친박 중심의 자유한국당은 총선 필패의 지름길이다. 보수의 궤멸을 방지하고 제대로 된 견제 세력이 되려면 물갈이가 아닌 판갈이를 해야 한다. 항아리가 군데군데 깨져 버렸는데 물갈이가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판갈이가 성공하기 위해선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이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당 지도부의 기득권 내려놓기가 필요하다. 큰 인물만이 큰 인물을 알아보고 등용한다. 그런 결단을 내린 큰 인물만이 더 큰 인물로 도약하는 법이다.

앤드루 카네기는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철강왕이자 기업가다. 그가 남긴 묘비명이다.

“여기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쓸 줄 알았던 사람 잠들다”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타산지석의 지혜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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