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월드투데이] 김태식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중국 당국의 초기 대응 부실이 재앙을 키웠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우한 폐렴' 발병 근원지로 밝혀진 화난 수산시장[사진=뉴스1]

무엇보다 지난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대유행 때처럼 감염자 정보를 축소하고 은폐하려고 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당시 사스가 중국 남부 지역에서 첫 발병 후 급속히 확산해 37개국에서 8천 명을 감염시키고 774명의 사망자를 냈던 가장 큰 원인은 중국 당국의 철저한 언론 통제 때문이었다.

사스가 2002년 11월 16일 광둥성 포산 지역에서 처음 발병했지만, 처음 보도된 것은 발병 45일 후인 2003년 1월 말에 이르러서였다. 이어 발병 5개월 만인 4월 10일에야 사스 발생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지만, 당시에도 중국 당국은 환자 수를 축소해 발표했다.

이번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명보 등 홍콩 언론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첫 환자가 발생할 당시 중국 당국은 이를 인지하고 연구팀을 파견, 화난 수산시장이 발병 근원지임을 밝혀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같은 달 31일까지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고, 우한 시내 한복판에 있는 화난 수산시장을 폐쇄한 것도 발병한 지 2주일 넘게 지난 1월 1일에서였다.

지난 19일에는 4만 명이 모이는 대규모 춘제(春節·중국의 설) 행사를 우한 도심에서 치르는 것을 우한시 정부가 허가할 정도였다.

홍콩 언론이 18일 선전, 상하이에서 우한 폐렴 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중국 당국은 이를 확인해주지 않다가 뒤늦게 발표했고, 15명의 의료진이 우한 폐렴에 무더기로 감염됐다는 것을 숨기기도 했다.

이번 우한 폐렴 사태와 사스 대유행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최고 지도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관료들이 행동에 나서지 않는 중국에 만연한 관료주의이다.

사스 대유행 때도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이 직접 나서 '사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서야 당 간부와 관료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 주석은 2003년 4월 18일 사스 은폐를 중단할 것을 보건 당국에 지시했고, 사스 은폐에 책임 있는 위생부 장관과 베이징 시장 등을 경질하면서 사스 확산 방지를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이후 중국 당국의 정보 공개와 전면적인 방역 체계 구축,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국제기구 및 세계 각국과의 공조 체제가 이뤄지면서 사스 확산은 비로소 통제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번에도 최고 지도자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나선 후에야 모든 조처가 신속하게 이뤄지기 시작했다.

지난 20일 시진핑 주석은 "단호하게 병의 확산 추세를 억제하라"라며 "인민 군중의 생명 안전을 가장 앞에 놓아야 한다"라고 강력하게 주문했다.

이후 23일 '우한 봉쇄' 조처가 이뤄졌고, 수도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각지의 춘제 행사 취소, 우한 지역에 대한 전면적인 지원, 사람 간 감염을 막기 위한 교통 통제 등의 신속한 조치가 이뤄졌다.

하지만 우한 봉쇄에도 불구하고 500만 명이 우한을 '탈출'한 것으로 전해지는 등 우한 폐렴 대응에 있어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많다.

자신을 후베이성 의료진이라고 밝힌 한 여성은 "우한 폐렴 감염자 수가 9만 명에 이르며, 한 사람이 감염됐는데 제대로 된 격리와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주변 14명이 감염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 홍콩 전문가는 "중국은 민감한 사안이 발생하면 최고 지도자의 지시만을 기다리며 절대 움직이지 않는 관료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라며 "사스 대유행이나 이번 우한 폐렴 때도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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