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경 본부장

근래 나라 사정은 아스팔트 위에 삽 끌고 갈 때 나는 소음과도 같다. 팍팍해진 경제 사정과 함께 몸과 마음을 힘들게 만든다. 엊그제가 설날이었다. 나라가 국민을 걱정해줘야 하는데, 이번 명절은 국민이 나라 걱정하면서 보낸 것은 아닌가 싶다.

역대 대통령마다 국정 운영시나리오, 로드맵이란 것을 갖고 있다.

당선 가능성이 크면 로드맵 준비 기간도 길고, 내용도 구체적이고 현실성도 높다.

하지만, ‘준비된 대통령’이란 구호를 내세운 대통령도 로드맵대로 국정 운영을 못했다. 계획대로 효과가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예측불허의 돌발변수들이 속출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급작스럽게 치러진 대선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나 견실하게 국정 운영 로드맵을 만들었을지 궁금하다. 과거 노무현 정권은 로드맵만 2,200가지나 된다고 자랑한 바 있다. 로드맵 정권이란 별명도 붙었다. 하지만 국정은 실패와 파탄의 연속이었고 민심은 싸늘했다.

당시 야당 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에게 500만 표 이상으로 대참패한 것만 봐도 민심 이반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압도적 대선 패배 이후 친노 진영에서 ‘우리는 폐족’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로 노무현 정권은 실패한 정권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작년 하반기에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재임 초기의 남북·북미 정상회담 이벤트 외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생산적인 국정 운영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광풍처럼 휘몰아치던 적폐청산, 친북 및 동맹·우방 경시, 탈원전,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 늘리는 정책, 부동산정책 등등 국가발전이나 나라 살림에 도움이 안 되는 정책들이 대부분이다.

문재인 정권은 취임 후 국정 운영 5개년 계획 및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한 바 있다.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은 국가 비전, 국정 목표·전략 등으로 구성돼 있지만, 국정 운영 방향의 골격과 핵심은 대통령 취임사에 담겨 있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다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오늘은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는 종식되어야 한다 ▲공정한 대통령이 되고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 ▲소통하는 대통령,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되겠다 ▲군림하고 통치하지 않겠다 등등….

놀랬다. 어찌 이렇게도 취임사와 반대로 국정이 운영될 수 있다는 말인가?

내용 대부분은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밝힌 것이고 마지막의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는 종식되어야 한다’라는 부분은 국정 운영의 사후 평가와 관련된 부분이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대로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재임 중 혹은 퇴임 후 반드시 불행을 겪었다. 퇴임 후 감옥 간 사람도 4명이나 되고, 재임 중 피살되거나 퇴임 후 스스로 목숨 끊은 분도 있다. 망명가거나 탄핵 돼 임기를 못 채운 사람도 있다. 용케 이런 비극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재임 중 아들 모두가 감옥에 갔다.

이 중에는 성공한 쿠데타였지만 16년 뒤 처벌받은 대통령도 두 명이나 있다. ‘성공한 쿠데타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고 사법부 판단은 삼권분립원칙 위배이기에 처벌할 수 없다’라는 반대여론도 강했다. 하지만 당시 김영삼 정권은 5.18 특별법과 공소시효 배제 특례법을 만들어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워 단죄했다.

조국 사태 이후 문재인 정권의 국정 운영은 상식과 합리의 바른길을 벗어났다. 청와대 부정·비리를 수사하는 검찰 핵심인사들을 공중분해 시켜 수사 자체를 방해한 것은 두고두고 통한의 한 수가 될 것이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국민 일각의 탄핵 주장이 나온 지 오래됐다. 문재인 정권은 강행 처리한 선거법과 공수처법으로 탄핵 가능성을 원천 봉쇄했다고 자족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국민 무시와 위헌·위법성이 농후한 막가파식 국정 운영이 계속된다면, 미래의 어느 시기에 미래 정권과 국민의 뜻에 따라 문 대통령도 얼마든지 사법처리될 수 있을 것이다. 공소시효가 지났다 할지라도 처벌을 위한 특별법과 특례법을 제·개정하면 되는 일이다.

노무현 정권이 수십 년도 더 지난 과거사 캐기로 인적 청산한 사례도 있다. 문재인 정권도 스스로 적폐청산을 내세워 과거사 문제로 사법 단죄와 인적 청산한 사례들도 많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누구라도 행위의 불법성이 인정되면 사법처리의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다른 전직 대통령들처럼 불행한 대통령 흑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개인의 불행 여부를 떠나 국민 자존과 국격을 훼손시키는 헌정사의 불행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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