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복잡한 혈액형, 12가지 넘는다

<편집자 주> '월드투데이'는 인간과 오랜 시간 동고동락을 함께 하면서, 언제나 우리곁을 지켜 온 평생 반려동물 개의 생활습성과 질병 등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이 칼럼을 신설했습니다.

칼럼을 집필해 주실 분은 국내 최고 권위의 수의학자인 서정향 건국대 수의과대학 교수이십니다. 서 교수님은 오랫동안 개의 습성과 질병, 특히 암에 대해 연구를 해 오신 분입니다.

이 칼럼을 통해 인간이 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서정향 건국대 수의과대학 교수

 

너는 혈액형이 뭐니?

우리는 혈액형에 관심이 얼마나 많은가? 혈액형에 따라 성격을 구분하기도 하고, ‘넌 혈액형이 뭐야?’라는 질문도 즐거운 화두가 되곤 한다. 당신은 당신 반려견의 혈액형도 알고 있는가? 혹은 관심을 가진 적이 있는가? 아니, 그 전에 개들도 혈액형이 있을까?

(사진제공=게티이미지)

개도 혈액형 있다

물론 개도 혈액형이 있다. 개의 혈액형은 사람보다 훨씬 복잡하다. 대표적으로 DEA(Dog erythrocyte antigen)로 가장 많이 구분되는데, 이는 ‘개 적혈구 항원’이라는 뜻이다.

먼저, 사람의 혈액형을 간단히 살펴보자. 사람은 적혈구 표면에 A형 항원, B형 항원 혹은 둘 모두를 가지거나 둘 다 가지지 않는 경우로 나뉜다. 그래서 A형 항원을 가지면 A형, B형 항원을 가지면 B형, 둘 다 가지면 AB형, 둘 다 가지지 않으면 O형이라고 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의 혈액형은 적혈구 표면에 붙어있는 항원의 종류에 따라 분류한다. 그런데 개는 사람에 비해 항원의 종류가 매우 다양해 혈액형이 12가지 이상으로 나뉜다.

개의 혈액형은 DEA-1.1, DEA-1.2, DEA-3, DEA-4, DEA-5, DEA-7 과 같이 나누는데, 그 빈도는 각각 33~45%, 7~20%, 6~10%, 87~98%, 12~23%, 8~45%이다. 어라, 다 합치면 100%가 넘는데? 이는 개들이 적혈구 표면에 딱 한 종류의 항원만 갖는 것은 아니라, 사람의 AB형보다도 더 다양한 항원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들은 정확히 하나의 혈액형을 가진다기보다는 각각의 항원에 대해 양성 혹은 음성으로 구분하기 때문에 혈액형 분포의 합이 100%를 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항원을 갖는 방식으로 유전되는 것을 ‘공우성(codominant)’이라고 한다.

 

개는 수혈받을 때 혈액형이 상관없을까?

(사진제공=게티이미지)

개에게 혈액형이 중요할 때는 언제일까? 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수혈이 필요할 때가 있다. 교통사고를 당해 출혈이 심하다든가, 수술 중 과다출혈이 일어난 경우 등이 그 경우다. 개는 첫 수혈 시에는 혈액형과 관계없이 수혈을 받아도 된다고 알려진 바 있다. 이는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지만, 모든 혈액형에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사람의 경우, A형인 사람은 B형 항원에 대한 자연항체를 가지고 있어 B형 혈액을 수혈받을 경우 항원-항체 반응에 의해 거부반응이 일어난다. 하지만 개들의 경우 다른 항원에 대한 자연항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첫 수혈은 혈액형과 관계없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개의 많은 혈액형 중에 특히 신경 써야 하는 혈액형 인자는 DEA-1이다. DEA-1이 음성인 경우 DEA-1.1이나 DEA-1.2 양성인 혈액형을 수혈하면 항체 형성을 강하게 자극하므로 첫 수혈에서도 거부반응이 일어날 수 있어 피해야 한다. 이렇게 한 번의 수혈이 이루어지고 나면 수혈받은 혈액에 대한 항체가 생성된다. 이는 두 번째 수혈 시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다음 수혈을 할 때는 개의 원래 혈액형과 수혈받은 혈액의 혈액형을 모두 고려하여 수혈이 이뤄져야 한다.

너무 복잡한가. 사람들의 간단한 혈액형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일 수 있다. 하지만 만일의 사고를 대비해 우리 개의 혈액형이 무엇인지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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