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운 박사] 오늘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통해  유럽의 밉상으로 여겨지는 고래대금업자 유대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마도 많이 억울해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유럽인이 아닌 우리가 보기에도 유대인 하면 돈만 아는 사람들이란 이미지가 강합니다.

특히 문학작품에서 유독 그런 색채가 강렬합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기에 문학작품에서 나쁜 사람들이란 이미지를 덮어쓰게 된 것일까요? 더 나아가 과연 그러한 평가가 온당할 것일까요? 지나친 인종주의적 편견이나 모함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은 꽤 잘 알려진 이야기여서 잘 알고 계실 것이지만,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국제 무역으로 꽤 성공한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가까운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사람에게 돈을 꿉니다. 친구가 필요했던 돈의 규모는 잘 나가던 안토니오도 쉽게 내줄 수 없는 액수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안토니오는 평소 고리대금업자라고 부르던, 간혹 마주치기라도 하면 얼굴에 침을 뱉곤 했던 유대인 샤일록에게 돈을 꿉니다. 안토니오는 돈을 꾸면서도 굽히지 않습니다. 당장 구할 수 없는 돈을 빌려주더라도 안토니오는 샤일록에게 자신이 일상적으로 하던 태도를 그만둘 일이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안토니오의 친구가 필요했던 돈은 성공한 국제무역상 안토니오도, 거부였던 고리대금업자 샤일록도 한 번에 구할 수 없는 규모였습니다. 안토니오의 친구는 도대체 어디에 필요했기에 이렇게 엄청난 돈을 필요로 했던 것일까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였던 베니스의 그 누구도 당장에 마련할 수 없는 엄청난 금액을 도대체 어디다 쓰려고 그랬을까요? 이에 대한 답은 잠시 미뤄 두고 문학작품의 주제로 돈이 등장하게 된 것에 대해 잠시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돈 이야기가 문학작품의 본격적인 주제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입니다. 자본주의 발전의 후발주자였던 프랑스 주식시장과 금융을 다룬 에밀 졸라의 『돈』,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인간 군상을 그린 오노레 발자크의 『곱세크』 등은 모두 19세기 문학 작품입니다. 왜냐하면 19세기 이전 시대의 부는 돈이 아니라 바로 땅에서 나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의 서두에 잠깐 등장하는 것처럼 전통적인 부는 땅에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피케티가 인용하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만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은 막 태동하기 시작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 관계가 돈을 중심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묘사한 초기 시도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는 왜 제목을 『베니스의 상인』이라고 했을까요? 상인은 누굴까요? 제 생각으로는 『베니스의 상인』의 주인공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아니라 국제 무역상 안토니오가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와 베니스는 국제 무역이 활발한 지역이었고 여기서 비롯된 막대한 부가 모이고 거래되던 공간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국제무역과 금융의 본 고장인 베니스의 상인이 어떻게 돈과 엮여 곤란을 겪고 헤쳐 가는지를 다룬 작품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합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국제무역의 주인공인 안토니오의 사업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안토니오를 괴롭혔던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셰익스피어가 보여주는 『베니스의 상인』의 스토리는 달리 도망갈 틈이 없는 막다른 골목 같은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주인공 샤일록에게 말이죠.

샤일록은 등장하면서부터 나쁜 사람입니다. 이름부터 그렇기 때문입니다. 히브리말로 샤일록은 고리대금업자를 욕할 때 쓰는 말로, 욕심 사나운 사람이라는 셀라크와 비슷합니다. 이와 비슷한 이름은 더 있습니다. 실록, 실로, 셀락, 셀라 같은 비슷한 이름이 그것입니다. 샤일록은 주인공이 되면서부터 나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혀 태어난 것입니다. 달리 해석할 방도가 없죠. 이름 자체가 나쁜 고리대금업자인데요.  

안토니오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직업은 대체로 세 종류입니다. 고리대금업자, 안토니오 같은 상인, 그리고 벌이 없이 살아가고 있는 신사(젠틀맨)입니다. 그리고 엄청난 부를 상속받은 여인이 등장하는데 딱히 직업이라기보다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그리고 속임수도 잘 쓰는 여인입니다. 사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상인이라고 할만한 사람은 안토니오가 유일합니다. 그의 친구들은 모두 직업이 없습니다. 그럼 돈벌이는 어떻게 하며 살아 가냐고요? 바로 돈 많은 여인과 연인사이가 되거나 결혼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입니다.

 『베니스의 상인』이 제시한 세계에서 연인사이가 된다는 것은 아버지의 금화가 가득한 궤짝을 몰래 훔쳐 연인에게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샤일록의 딸이 로렌조와 그 친구들에게 한 것처럼 말이죠. 결혼 역시 마차가지입니다. 사랑에 관한 온갖 미사어구가 등장하지만, 안토니오의 친구 바사니오가 막대한 부의 상속녀인 포사와 결혼하려는 가장 중요하고도 유일한 목적이 바로 그녀의 돈이었습니다. 바사니오가 돈이 필요했던 이유는 상속녀에게 잘 보이려면 여러 겉치레에 필요했는데 그 비용을 마련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진실한 사랑이라는 이야기와 이를 치장한 아름다운 표현 뒤에 숨어 있는 동기는 돈입니다.    

이제 안토니오가 돈을 꾸면서 샤일록과 맺었던 계약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샤일록은 안토니오가 하듯이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꿔 주기로 합니다. 대신 단서 조항을 답니다.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lb)는 받아내는 것이죠(1파운드는 화폐의 명칭(£)이기도 하지만 무게 중량을 가늠하는 단위(lb)이기도 합니다).   샤일록은 단서 조항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지만, 만약 안토니오가 돈을 갚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복수하겠다고 마음먹고 이자를 받지 않는 대신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했을 경우 안토니오의 살 1 파운드를 받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샤일록은 이런 무자비한 마음을 먹게 되었을 까요? 제법 긴 샤일록의 다음 대사가 자초지정을 설명해 줍니다.  적잖이 흥분한 샤일록은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들이 유대인으로서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토로합니다.

“물고기 낚을 미끼로 쓰지요. 다른데 소용없더라도, 내 복수심은 채워주겠죠. 그자는 수없이 날 모욕하고, 내 손실을 비웃고, 내가 얻은 이익을 조롱했으며, 내 국가를 경멸하고 내 거래를 방해했고, 내 친구들을 멀어지게 만들었으며, 내 적들을 흥분시켰소. 그런데 그 이유가 뭔지 아시오? 내가 유대인이라는 겁니다.” 다소 흥분한 샤일록의 말을 더 들어 보기로 하죠. “유대인은 눈이 없소? 유대인은 손도 오장육부도 육신도 감각도 애정도 열정도 없소? 기독교인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무기에 상처입고, 똑같은 병에 걸리고, 똑같은 수단으로 치료받고, 똑같은 겨울과 여름으로 추워하고 더워하지 않고? 당신들이 우릴 찌르면, 우린 피 흘리지 않소? 당신들이 우릴 간지럽히면 웃지 않소? 당신들이 우릴 독살하면 우린 죽지 않소? 그리고 당신들이 우리에게 해를 끼친다면 우린 복수하지 않겠소? 우리가 이 이외의 것에서도 당산들과 같다면 그 점에서도 같을 것이오. 유대인이 기독교들이게 해를 끼친다면 기독교인들의 겸손이 무엇이겠소? 복수요.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에게 해를 끼친다면, 기독교인의 본보기를 따르는 유대인의 인내심은 무엇이겠소? 물론 복수지요! 난 당신들이 내게 가르쳐준 악행을 실행하겠소. 힘들겠지만 배운 것보다 더 잘할 것이오.” 

보셨듯이 유대인으로서 당하고 있던 부당함과 모욕감이 샤일록으로 하여금 안토니오에게 무지비한 복수를 계획하게 했던 원인이었습니다. 실제로 유대인 집단 강제 거주지역이라고 알려진 게토는 바로 이 시대의 산물입니다. 히틀러가 만든 것이 아니죠. 게토는 독어가 아니라 이탈리아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밤에는 돌아다닐 수 없으며, 혹 낮에 돌아다닐지라도 빨간 모자나 노란 표시 같은 것을 하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리고 재산을 소유할 수도 없었습니다. 베니스 사람들이 길가는 유대인에게 욕하고 침을 뱉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습니다. 안토니오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안토니오와 사적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은 일이 엮였기 때문입니다. 문학작품의 본질 중 하나가 바로 인간들을 엮는 것 아니겠습니까?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갖는 특징 중 하나는 완전한 인간의 욕망과 분노가 아닙니다. 불완전한 존재로서 저마다 약점이 있는 인간의 욕망과 순수함 그리고 이들 간의 관계가 빗어내는 이야기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정치철학으로 유명한 알렌 블룸은 셰익스피어 주인공들의 비극은 그 자신에게서 온다는 측면에서 비극의 내재적 원인론을 주장합니다. 블룸에 따르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은 서로가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주변을 돌아 볼 틈이 없어 발생한 일입니다. 오셀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인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심복의 이간질에 혜안이 가려 부인을 살해합니다. 바로 그 순간 후회하며 절규합니다. 적어도 이런 측면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의 특징은 불완전한 인간과 그들이 맺어가는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인 샤일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샤일록이 비록 유대인에게 행해진 불합리한 대우에 분노하고 있지만 결국 이자를 받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샤일록이라는 존재가 스스로 만든 부조리라고 할까요? 샤일록의 입장에서 보면 『베니스의 상인』은 비극입니다. 못된 유대인이 자기 속임수에 넘어가도록 만든 통쾌한 법정 드라마가 아닙니다. 외지인이게 가혹하고 부당하기까지 한 베니스 공동체의 배타성이 만든 비극이지요. 오래 동안 살았지만 여전히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이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샤일록은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습니다. 물론 원인의 제공자는 바로 샤일록 그 자신입니다. 안토니오가 비록 계약을 위반해 돈을 갚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대신 갚겠다고 나설 때 사적인 복수심을 포기하고 제안을 받아들였더라면 결말은 달랐겠죠.  

바시니오의 결혼 구애자이자. 법률가로 변장한 현명한 여인인 포사가 사일록에게 제안한 금액은 빌려준 3천 더킷의 몇 배에 해당하는 6만 더킷이었습니다. 현 화폐가치로 하면 약 114억원 정도되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나 샤일록은 복수를 택합니다. 샤일록이 돈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당시 샤일록은 딸이 자신의 연인인 로렌조와 사랑의 도피를 하기 위해 아버지의 금화를 모두 들고 도망친 후였기 때문에 남은 재산은 없었습니다. 부인이 죽고 하나 남은 딸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전재산을 들고 도망친 후,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평소 모멸감을 주었던 안토니오였으니 거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복수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샤일록의 입장에서 이 이야기는 비극입니다. 사실 샤일록은 안토니오가 속했던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욕망의 실현이 거세당한 사람의 복수는 일반 사람의 것보다 훨씬 무섭습니다. 1막 3절에 샤일록의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전 나리의 친구가 되어 나리의 사랑을 얻고 싶어요. 나리께서 제게 주신 모욕은 잊어버리고 나리께서 당장 필요한 돈을 빌려드리면서 내 돈에 대한 ‘이자도 받지 않으려 하는데 제 말을 들으시려 하지 않는군요. 이건 제가 베푸는 친절입니다.”

여기서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친절”입니다. kindness(친절)는 kind(부류)와 비슷합니다. 즉 당신처럼 이자를 받지 않고 빌려줄 테니 더 이상 모욕하지 말고, 수염에 침 뱉지 말아달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피터 홀랜드에 따르면 셰익스피어의 단어 쓰임새에는 이런 류의 말장난이 빈번하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짚고 싶은 대목은 이렇습니다. 셰익스피어는 런던의 자신의 극장에 『베니스의 상인』을 올리려고 이 작품을 집필했습니다. 런던은 유대인에 대해서 베니스와 전혀 다른 도시였습니다. 강제 집단 거주지역도 없고, 고리대금업을 주업으로 삼는 유대인도 없었고, 안토니오처럼 유대인들에게 욕을 하거나 침을 뱉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왜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일까요? 아마도 셰익스피어는 자본주의 초기 현상, 즉 먼 나라 베니스에서 펼쳐지는 이전과 전혀 다른 세상인 자본주의의 태동기에 그 주인공인 상인이 겪는 여러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거기에 셰익스피어의 단골 주제인 사랑과 골탕먹임 같은 이야기를 제시해 런던 관객들의 즐거움을 북돋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실 사람의 살을 베는 계약서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독창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떠돌던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꾼들은 늘 그렇듯이 떠돌던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며 내는 재주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 각색한 이야기를 통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줄 수 있는 것은 솜씨 좋은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겠지요.

송종운 박사

◆ 송종운 박사 약력

울산과학기술원 사이언스월든 연구원

백석예술대학교 초빙교수

사단법인 한국사회경제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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