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 화가로 알려졌으나 독자적 길 개척해
다양한 실험과 풍부한 표현으로 작품 세계 확장해나가

[월드투데이 장지민 기자]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예술 세계를 보여준 에드가 드가, 그가 걸어온 길을 함께 거슬러 올라가보자.

[사진=화가의 초상 (참빗살 나무 문 앞의 드가), 오르세 미술관]
[사진=화가의 초상 (참빗살 나무 문 앞의 드가), 오르세 미술관]

드가는 1834년 7월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이탈리아 나폴리에 은행을 설립한 성공한 은행가였으며, 아버지는 이 은행의 파리 지점장이었기 때문에 드가는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전형적인 부르주아 집안 출신인 그의 그림에서는 당시 상류층 사람들이  즐겨 관람하던 발레, 경마, 서커스 등의 소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시 파리 최고의 고등학교인 리세 루이 르 그랑에 다니던 드가는 박물관에 갔다가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학교를 졸업할 때쯤에는 루브르 박물관의 허가를 받아 그림을 모사하기 시작했다. 미술을 향한 열정을 키워나가던 그는 아들이 변호사가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파리 대학 법학부에 입학했으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얼마 가지 않아 학업을 중단하게 된다.

[사진=벨렐리 가족, 오르세 미술관]
[사진=벨렐리 가족, 오르세 미술관]

1855년, 드가는 파리의 유명 미술 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하여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제자인 루이 라모트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이 시기 그는 앵그르적 선과 전통적 드로잉을 충실하게 학습했으며, 루브르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는 훈련을 이어나갔다.

드가는 1856년부터 3년에 걸쳐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르네상스 미술에 심취해 고전 미술을 연구했는데, 특히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안드레아 만테냐의 작품을 배우고, 또 니콜라 푸생과 한스 홀바인의 그림도 배웠다. 1858년에는 고모 라우라 벨릴리의 초대를 받아 피렌체에 방문하여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벨릴리 가족'을 작업한다.

[사진=발레 수업, 오르세 미술관]
[사진=발레 수업, 오르세 미술관]

드가는 1860년대 무렵부터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베르트 모리조 등의 인상주의 화가들과 정기적으로 교류하며, 역사화 뿐만 아니라 발레 공연, 경마장, 카페 같은 근대적 삶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발발한 1870년, 포병대에서 복무하던 드가는 소총 훈련 중 자신의 시력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인물의 배치에 변화를 주고 사진을 찍는 방식으로 야외와 실내의 순간적인 광경을 표현했다.

[사진=스타, 오르세 미술관]
[사진=스타, 오르세 미술관]

드가는 1874년부터 1886년까지 총 7번의 인상파 전시회에 참가했고, 이로 인해 초기 인상파의 주역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드가는 자신이 인상주의자로 분류되기를 거부했으며, 실제로 그는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 다르게 실내에서 작업하는 것을 좋아했고 철저한 계산에 의해 그림을 그렸다.

그는 회화 뿐만 아니라 판화, 조각, 사진 등에도 관심을 가지며 다양한 실험과 풍부한 표현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확장시켜나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드가의 지병은 점점 악화됐고, 말년 무렵에는 실명에 가까운 상태가 된다. 이후 그는 조각에 집중하다 1917년 9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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