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파스퇴르의 생애와 업적
백신의 개념을 개발하다

[월드투데이 이하경 기자]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미생물학자였던 루이파스퇴르는 1822년 12월 27일 프랑스 동부 쥐라 데파르트망에서 출생했다.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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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9살에 처음 학교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가족들에게 큰 기대를 받으며 성장한 파스퇴르는 파리의 에콜 노르말(파리 고등 사범대학)에서 물리와 화학을 공부하고, 모교의 조수로 활동했다.

중학교 물리교사를 거쳐, 1849년 스트라스부르대학 화학교수가 되었으며 스트라스부르 대학장의 딸인 마리 로랑과 결혼했다. 그 후, 1854년 신설된 릴대학 화학교수 겸 이학부장, 1857년 에콜 노르일 부주사에 취임했다.


파스퇴르 시대 이전까지는 음식이 썩는 것은 자연발생인가 아닌가에 대한 학자들의 논쟁이 한창이었다. 헬몬트의 쥐 만들기 실험, 레디의 생선 실험, 니담의 고기육수 가열실험, 스팔란차니의 실험까지 찬반논쟁이 한창이었다.  

파스퇴르는 유기체가 공기 중에 살고 있으며 미생물은 미생물로부터만 나온다고 주장했던 학자였다. 파스퇴르는 음식의 부패는 공기 중의 미생물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확증하며 자연발생설을 부인하였다.

루이 파스퇴르는 1862년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을 통해 기나긴 논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파스퇴르는 자연 발생학자들 말대로 생명의 기운은 들으오면서 외부 미생물은 들어오지 못하는 특별한 장치를 고안했다. 

백조 목 플라스크 실험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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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고기 국물을 플라스크에 넣고 플라스크의 목 부분을 가열해 길게 잡아 S자로 늘여 구부린다.

2) 그 후 플라스크 안의 고기 스프를 가열 해 고기 국물 안에 있는 미생물은 모두 살균한다.

3) 이러면서 플라스크 속 환경은 공기는 들어올 수 있지만, S자료 휘어 있는 부분에 물이 고여 미생물은 플라스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성된다. 

4) 2주 이상 실온에 내놓고 미생물이 번식하는지 살펴본 결과 미생물은 번식하지 않았다.

5) 파스퇴르는 플라스크를 기울여 수프가 구부러진 목까지 닿도록 했다. 그러자 물방울 안에 갇혀 있던 미생물들이 고기스프와 만나 번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프는 상했다.

그의 실험에 따라 생명체가 환경 안에서 저절로 생겨난다는 '자연발생설'은 부정되었고, 생명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어버이 생물로부터 발생한다는 개념이 자리잡았다. 

파스퇴르가 화학을 공부하며 처음 연구했던 것은 포도주의 부패를 막는 방법이었다. 포도주 제조는 프랑스 산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는데, 포도주가 상하며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에 매달린 끝에 파스퇴르는 포도주를 상하게 하는 미생물을 찾아냈다. 그리고 발효가 끝난 포도주를 낮은 온도에서 잠깐 가열하면 그 미생물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방법은 오늘날 까지도 '저온 살균법'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감염병과 백신에 대한 연구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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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 연구 이후 파스퇴르는 질병의 원인이 미생물일 수 도 있다고 생각해 감염병을 유발하는 미생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1865년 그는 프랑스 정부의 요청으로 당시 프랑스를 위협하던 누에병에 대해 조사했고, 누에병의 원인이 세균임을 밝혀낸다. 그 당시의 기술로는 세균을 죽여 누에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파스퇴르는 누예방의 예방법을 찾기 위해 집중했고, 누에 병이 누에에게는 발생하지만 알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병에 든 누에를 모두 폐기하는 방법으로 병의 전염을 차단하였다. 

1880년 프랑스에는 닭 콜레라가 창궐했고, 파스퇴르는 원인균을 찾아내기 위해 씨름한다. 그는 병에 걸린 닭에서 피를 뽑아 수프에 떨어뜨리고 그 안에서 번식한 세균을 분리해 배양했다. 그리고 배양한 세균을 건강한 닭에게 주사해, 그 중 콜레라 증세를 보이는 닭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닭콜레라 원인균을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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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파스퇴르가 조수에게 닭콜레라균을 대량으로 배양하도록 지시하였는데, 이를 잊은 조수가 영양분이 떨어진 배양액 상태에 닭콜레라균을 놓고 휴가를 떠나버렸다. 연구실에 돌아온 파스퇴르는 영양분이 떨어진 배양액에서 자라 약해진 세균들을 닭에게 접종했더니 닭이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파스퇴르는 강한 닭콜레라균을 구해 약해진 균을 접종했던 닭과 일반 닭에게 접종한다. 그러자 일반 닭은 닭콜레라에 걸린 반면, 약해진 균을 접종했던 닭은 증상이 금방 회복되었다.

파스퇴르는 이 사건을 통해 "약해진 세균으로 병을 가볍게 경험하면 그 병에 대한 면역력이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약하게 만든 세균에 '백신(vaccine)'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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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대중적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광견병 백신을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부터다. 그는 광견병에 걸려 죽은 토끼의 척수를 꺼내 건조시킨 다음 잘게 조각 내 현탁액을 만들었다. 이 용액을 개에게 접종시키면 다시는 광견병에 걸리지 않았다. 파스퇴르는 이 백신이 인간에게도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1885년 7월 6일,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린 조제프 메스테르라는 아홉 살 난 소년이 개 주인과 어머니와 함께 파스퇴르의 실험실로 찾아왔다.

소년은 개에게 팔과 양 다리를 심하게 물려 의사들에게도 '손 쓸 도리가 전혀 없다'는 진단을 받고 온 상태였다. 파스퇴르는 아이에게 마지막 방법으로 백신을 써보기로 하였고, 백신 접종을 받은 소년은 결국 광견병에 걸리지 않고 살아남는다. 

1895년 7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파스퇴르는 병원균을 찾아내고 예방 백신을 만드는데 힘을 쏟는다. 탄저병 백신, 광견병 백신 등의 개발로 감염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데 큰 업적을 남긴다. 파스퇴르의 장례식은 프랑스 정부가 주도하는 국장으로 치러졌고, 파리의 거리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의 물결로 가득찼다. 

파스퇴르는 스스로 "과학을 위해 살았다"고 말했다. 그의 시신은 자신의 이름을 딴 파스퇴르 연구소에 마련된 무덤에 안장되었다. 루이 파스퇴르는 페르디난트 콘, 로베르트코흐와 함께 미생물학의 창시자로 불리우고 있다. 

코로나19를 경험하고 있는 21세기에도 파스퇴르가 개발한 '백신'의 원리 덕분에 질병으로 인한 피해를 조금이라도 잠재울 수 있는 것 같다. 이처럼 수많은 생명을 구한 과학자 파스퇴르는 지금까지도 프랑스 국민들의 영웅으로 불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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