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반 취약한 대성당, 진동에 손상 입었을 수도"
11C 동방정교회 문화의 산실, 성 소피아 대성당
'동굴 수도원' 페체르스크 라브라의 역사

키이우 성 소피아 성당[사진=AP/연합뉴스]
키이우 성 소피아 성당[사진=AP/연합뉴스]

[월드투데이 최도식 기자] 러시아군의 무차별적인 공습으로 키이우의 문화유산들이 위험에 처했다.

러시아군은 지난달 15일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 연속 포격을 가했다. 이전부터 가해진 러시아군의 집중포화에 키이우에는 굉음이 들려왔고 충격에 건물들이 흔들리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이 지역에 존재하는 유네스코 문화유산들도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이 지역 관리인은 AP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반이 취약한 대성당 등의 건물들이 진동으로 큰 손상을 입었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키이우에는 성 소피아 대성당을 비롯해 수도원 건물들, 동굴 수도원으로 불리는 페체르스크 라브라 등의 건물들이 존재한다. 이들 건축물들은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슬라브인들에게 동방정교회를 전파시키는데 크게 공헌했다.

◆ 성 소피아 대성당과 수도원 건물들

비잔틴 모델에서 영감을 받은 성 소피아 대성당은 11세기 동방정교회 문화를 보여 주는 주요 건물 중 하나이다. 대성당이 축조된 해는 1037년으로 야로슬라프 무드르이가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는 야로슬라프의 증조모인 올가 여공이 952년에 십일조 성모 교회를 대체한 것을 의미했다.

성 소피아 내부 회화작품 [사진=AP/연합뉴스]
성 소피아 내부 회화작품 [사진=AP/연합뉴스]

성당 장식에 보이는 양식적 특징은 11세기 키이우에서 일했던 성상화 화가들에 의해 인근 지역으로 전파됐다. 1240년 징기스칸의 손자 바투 칸의 침입, 1416년과 1482년 두 차례에 걸친 타타르족이 침입으로 성당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지만, 노브고로드, 프스코프, 블라디미르와 수즈달의 유적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이 지역 건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성당 건축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2개의 원주가 신도석 내부를 5개로 나누고, 섞어 쌓기를 사용한 교회는 상징적인 이미지와 건축 사이에 완벽한 융합을 보여 준다. 중앙의 금박 입힌 커다란 둥근 지붕과 그 위에 얹은 12개의 작고 둥근 지붕은 피라미드 구성으로 그리스도와 열두 제자를 상징하며 매우 강렬하게 표현된 것이 특징이다. 이는 18세기에 양파 모양의 돔을 복원할 때에도 축소되지 않았다.

성 소피아 성당 내부[사진=AP/연합뉴스]
성 소피아 성당 내부[사진=AP/연합뉴스]

1934년 '국가 건축과 역사 보존구역'으로 지정됐으며, 현재는 기념박물관으로 관리하고 있다. 

성 소피아 성당은 2차대전 당시에도 파괴되지 않았지만 이번 러시아군의 무차별적인 폭격과 이로 인한 진동으로 심각한 손상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한편 교회 주위에는 수도원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본래는 1633년에 목조로 지었으나 1697년 화재로 건물이 전소되어 석재로 다시 건축됐다. 

금박 입힌 양파 모양의 둥근 지붕 위로 솟아 있는 4층 종탑, 대주교 관사, 식당, 서쪽 문, 남쪽 입구의 종탑, 형제의 건물, 신학교를 지었다. 이 건물들은 당시의 성당 복원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전형적인 우크라이나 바로크 양식으로 둘레에는 돌담을 둘러쌌다.

◆ 페체르스크 라브라

드네프르 강의 오른쪽 강둑을 내려다보는 두 언덕 위의 목조 건물 지역에는 수많은 기념물과 동굴로 이루어진 페체르스크 라브라가 있다. 우크라이나 국가 유산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슬라브권의 종교 생활과 지적 생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651년 당시 페체르스크 라브라의 모습 스케치
1651년 당시 페체르스크 라브라의 모습 스케치

페체르스크 라브라는 두 개의 인공 동굴 체계를 기반으로 한 수도원 공동체로, 1051년 성 안토니우스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후 그의 추종자들이 몰려왔으며 터널과 수도 생활을 할 수 있는 방을 짓기 시작해 오늘날 '먼 동굴들'과 '가까운 동굴들'로 불리는 공간들이 만들어졌다.

오랜 역사를 가진 페체르스크 라브라는 성 테오도시우스 수도원장이 다스리는 공동체가 됐으며, 공후들의 지원으로 곧바로 번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몽골과 타타르의 침입으로 파괴된 후로 전체적으로 재건축됐으며, 1615년에 인쇄소가 생긴 뒤로는 문학서와 역사서를 출판하는 등 지성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 시기 많은 순례자들이 몰려들고 땅 위에는 수많은 바로크 기념물로 채워지는 등 제 2의 번영을 누렸다. 

페체르스크 라브라[사진=Wikimedia/Falin]
페체르스크 라브라[사진=Wikimedia/Falin]

1926년에 '역사 문화 보존구역'으로 선포된 페체르스크 라브라는 1941년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가장 오래된 건물인 성모 안식 성당이 파괴됐다. 현재는 1980년대 이후 현대화된 건물들이 동굴 수도원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수도원 풍경에서 중요한 명소 두 곳은 시계탑과 식당 교회(Refectory Church)다. 대주교의 저택은 현재 국립 우크라이나 장식 민속 예술 박물관이며, 인쇄소 건물은 책과 제본 박물관, 식당 교회는 그리스도교 박물관, 십자가 찬양 교회는 카타콤 역사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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