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현욱 건축가
사진=이현욱 건축가

[이현욱 건축가] “아빠! 우리 집 이름 바꾸자. 땅콩집 말고 마스터 집, 아님 포터의 집 그런 거 어때? 멋있잖아.”
퇴근해서 식탁에 앉자마자 아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갑자기 집 이름은 왜? 땅콩집이 자랑스럽다며. 좋아하는 이름이잖아. 무슨 일 있어?”
“아빠, 학교에서 오빠 별명이 땅콩이래!”
딸은 하하하 웃다가 뒤로 넘어갈 기세다. 딸의 웃음이 커지는 것에 반해 아들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친구들이 나보고 자꾸 땅콩이라고 놀려. 하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어.”

딸이 깔깔 웃으니 나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친구들이 너한테 어울리는 별명을 지어준 거야. 아빤 그 별명이 마음에 든다. 하하하.”
“아빠 그치?”
딸이 맞장구를 쳤다.
우리 아들의 학교 별명은 땅콩! 내가 땅콩집으로 유명세를 타는 바 람에 생긴 별명이다. 12월생이라 반 친구들에 비해 키가 작은 우리 아들은 키 순으로 앞에서 2번. 땅콩은 내가 봐도 어울리는 별명이다.
“친구들이 땅콩집을 잘 몰라서 그러는 거야. 당당하게 난 땅콩집에 산다고 얘기를 할 정도는 돼야지. 난 땅콩집이 좋다고.”
아들은 친구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는 눈치다.
“할 수 없지. 놀리는 친구들을 우리 집에 초대해. 이렇게 좋은 집을 보여주면 다시 또 놀러오고 싶어서 너를 좋아하게 될 거야. 그리고 다시는 땅콩이라고 놀리지 않을걸! 내일 당장 친구들 불러. 그동안 주말도 일하고 너희들과 노는 약속도 못 지키고 했으니까, 내일은 오전만 회사에서 일보고 오후에 올게. 좋지? 그리고 아빠가 친구들에게 자세히 잘 설명해서 다시는 놀리지 않게 할 테니까 어서 밥 먹자.”

친구들을 데려오라는 말에 아들의 표정이 금세 달라졌다. 그리고 딸이 더 좋아라 하며 물었다.
“아빠 나도 내 친구들 불러도 돼? 아빠가 우리 집 설명해줘.” “좋아! 내일 친구들 다 불러.”
아내는 내일 약속을 꼭 지키라며 손가락을 내밀었다.
“나 원, 이 정도 일로 손가락까지 걸어야 해?” “아빠 나도, 나도.”
다음 날 집에 오니 다락방에서 딸과 친구들이 노는 소리만 가득하 다. 나를 반기는 아내만 있고 아들은 보이질 않는다.
“아들은? 아직 안 왔어?”
“금방 올 거예요.”
다락방에 올라갔는데 딸은 노는 데 정신이 없어 아빠도 보이질 않나 보다. 설명이 필요없겠다 생각하고 1층으로 내려오는 순간, 현관문이 열리고 아들과 그 뒤로 네 명의 친구들이 들어왔다. 역시나 반 친구들은 나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고 집 구경에 신이 난 것 같다. 들어오자마자 한 친구가 아들에게 물었다.
“너희 집 몇 평이야?”
이 말에 아들은 눈을 위로 치켜뜨고 생각하지만 답이 없다. 이것들 봐라, 초등학교 3학년이 벌써부터 집 평수를 물어봐? 당연히 우리 아들은 우리 집이 몇 평인지 모른다. 나도 가끔 헷갈리는 데다, 사실 우리 집 평수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다락방을 평수에 넣어야 하나 아님 아파트 발코니처럼 서비스 공간이라고 해야 하나? 잠깐 생각한 아들은 이어 입을 열었다. 그 대답이 더 멋졌다.

사진=이현욱 건축가
사진=이현욱 건축가

“우리 집 3층이야!”
“한세네 집 3층이야? 죽인다!”
아들을 따라 친구들은 2층으로, 다락방으로 올라가면서 탄성을 지른다. 다락방에서 다시 1층으로 내려오더니 1층 거실을 지나 마당으로 달려 나간다.
“와 마당도 있어. 너네 집 부자구나.” 아들은 겸연쩍은지 씩 웃고 있었다.
사실 그 친구가 사는 아파트나 우리 집이나 가격은 똑같다. 하지만 돈을 떠나서 아이들이 보는 눈은 절대로 같을 수가 없다. 마당이 있고 다락방이 있는 단독주택을 부러워할 뿐이다.
“너희 집 몇 평이야?” 라는 질문에 요즘 아이들의 세태가 담겨 있다. 살고 있는 아파트 평수로 친구를 구별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직접 겪으니 당황스러웠다. 아파트 단지가 몰려 있는 동네에서는 30평 대, 20평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같은 동네, 같은 학교에 다닌다. 무서운 것은 평수 구별을 하고 같은 평수끼리 어울려 논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수로 그 친구의 모든 가치를 평가한단다. 참 서글픈 현실이다. 사람의 가치가 초등학교 때부터 돈과 배경에 따라 분리되고 경쟁하면서 커가면 이 아이는 미래에 모든 사람들이 친구가 아닌 경쟁자로 보일 것이다. 이런 일이 심지어 부모님까지도. 과연 아이들의 잘못일까?

사진=이현욱 건축가
사진=이현욱 건축가

“너 어디 갔다가 이렇게 늦었어? 학교 끝나면 집에 곧바로 와야지.” “응, 오늘 한세네 집에서 잠깐 놀다 왔어. 한세 엄마가 맛있는 과자도 구워 주셨어.”
“그래? 어디 살아? 몇 평 무슨 아파트?”
“평수는 잘 모르고 그냥 3층 단독주택에 살아. 마당도 있고 다락방도 있어. 한세가 너무 부러워. 우리도 마당 있는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면 안 돼요?”
“돈이 어디 있니? 잠깐, 남의 집에 놀러갈 땐 미리 얘기를 하고 가는 거야. 한세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전화해야겠다.”

계단 가운데에 책장을 만들어서 아이들이 오가며 쉽게 책을 볼 수 있게 했다. /사진=이현욱 건축가
계단 가운데에 책장을 만들어서 아이들이 오가며 쉽게 책을 볼 수 있게 했다. /사진=이현욱 건축가

아이들이 돌아간 얼마 뒤 아들 친구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 한세 엄마! 죄송해요. 아이들이 버릇이 없어서 오늘 신세 많이 졌어요. 언제 한번 저희 집에도 놀러오세요. 근데 집이 그렇게 좋다면서요? 우리 애가 입만 열면 한세네 집 얘기예요. 마당에 3층 단독주택 에…… 한세 엄마는 좋겠다 부자라서. 저도 집 구경 좀 시켜주세요.”
“아, 네. 집이 작아요. 부자도 아니고요. 한번 놀러오세요.”  ‘친구들에게 땅콩집 설명해주기’ 약속은 본의 아니게 지키지 못했지만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투명인간처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아들의 별명은 지금도 변함없이 땅콩이다. 바뀐 것이 있다면, 아들은 땅콩이라는 별명을 자랑스러워하고 친구들은 부러워한다는 것 이다.

 

◆ 이현욱 건축가 

-現 이현욱좋은집연구소 대표

-캐나다 정부와 집짓기 프로젝트 시행

-땅콩집 열풍 전국 확산 (MBC 방송 출연)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본상( 기업혁신 부문)

-언론사 선정 올해를 빛낸 인물(2010년)

-화제의 논픽션 작가 선정((2011년)

-<두 남자의 집짓기>(2011년), <나는 마당 있는 작은 집에 산다>(2013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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