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이현욱 건축가]  단독주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건물 디자인? 아니다. 건물은 편하면 그만이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은 바로 마당이다.

마당이 있고 건물이 있는 것이지, 건물을 짓고 남은 공간이 마당이 아니다. 그리고 마당에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당연히 조경이다. 조경이야말로 단독주택의 시작이요, 끝이다.

사실 단독주택을 지으면서 이 부분까지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건물 짓기도 바쁘기 때문에 조경을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래서 열심히 건물을 지어놓고 조경에서 망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조경이야말로 돈을 쓰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소나무 한 그루에 1억이 넘는 것도 있으니. 멋있는 조경석은 개수가 적어서 운반비가 더 든다. 조경 공사 중에 가장 비싼 건 나무가 아니라 운반비와 인건비다. 큰 나무는 나무 자체도 비싸지만 심을 때 인력만으로는 어려워 장비도 불러야 한다. 또한 나무를 옮기는 과정에서 뿌리가 다칠 확률이 높아 병들어 죽는 경우도 많다. 비싼 나무는 관리도 힘들다.

​용인 스튜디오 땅콩집 마당 텃밭에 축구장에 파라솔에, 이 마당에는 없는 게 없다.(사진/이현욱 건축가)​
​용인 스튜디오 땅콩집 마당 텃밭에 축구장에 파라솔에, 이 마당에는 없는 게 없다.(사진/이현욱 건축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잘하는 조경일까? 건물도 편하게 짓듯이 조경도 편하게 하자. 처음부터 큰 나무를 심을 필요는 없다. 나무는 아이처럼 자란다. 아이들도 자기랑 같이 쑥쑥 자라는 나무를 보며 함께 성장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을 친구처럼 따뜻하게 대하게 된다. 

우리 집 거실에서 마당을 보면 왼쪽에는 살구나무와 감나무를, 그리고 오른쪽에는 모과나무와 대추나무를 사이좋게 심고 그 옆으로 단풍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마당 중앙에 앵두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 5월이 되면 작은 앵두나무에 앵두가 엄청 열려 아이들이 따먹기 바쁘다. 앵두나무가 아직은 작아 여섯 살 우리 딸이 따 먹기 가장 좋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 아이의 손을 보면 그날 얼마나 앵두를 많이 따 먹었는지 알 수 있다. 손과 손톱이 빨갛게 물들 정도로 하나도 남김없이 다 따 먹는다. 

“그렇게 앵두가 좋아?”

딸의 대답은 앵두나무에서 직접 따 먹는 재미가 좋다고 했다. 아무래도 앵두를 사탕으로 알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먹어봐도 사탕처럼 참 달다. 이름 바꿔, 사탕나무로.지난 가을에는 대추나무 뿌리가 아직 정착이 안 됐는지 열매가 열리지 않았다.

그 대신 모과나무에 모과가 두 개 열렸다. 어느 날 갑자기 가지 사이로 모과 두 개가 숨어 있는 걸 발견했다. 언제 자랐는지 모르게 마치 하늘에서 떨어져 나뭇가지에 걸린 것처럼 갑자기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더 크면 따자고 말렸지만 다음 날 아이들은 나무에 올라가 사이좋게 하나씩 땄다. 아이들은 먹기는 그렇고 모과 열매를 집에 가져와 공처럼 가지고 놀았다. 
“나 좀 그만 괴롭히고 차라리 빨리 먹어라.” 

사진/이현욱 건축가
사진/이현욱 건축가

모과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모과는 겨울이 올 때까지도 다락방에서 다른 공들과 함께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내가 용인 죽전에 처음 집을 지을 때의 일이다. 집이 작은 모바일 주택이라 주변 이웃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3주 만에 집을 짓는 과정도 이상하니 이해는 하지만 이웃들은 공사 중 사사건건 관여를 했다.

무심한 이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하나하나 대응을 해주니 나중에는 같이 고민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아니 집을 짓다 말아?” 
“돈이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그럼 조경에라도 돈을 써요. 우리 집은 조경공사비 3억 들었어.”
“와! 소나무가 멋있네요. 돈이 없어 조경공사비 500만 원에 끝내야 해요.”
“그래도 동네 수준을 맞춰줘야지. 이웃끼리.”
“죄송합니다.”

그때 나는 땅을 사고 남은 돈이 8천만 원밖에 없어 18평만 지어 살았다. 옆집들은 기본적으로 70평, “집을 짓다가 마냐?”는 질문은 당연했다. 작은 집에 비해 대지는 109평이나 되어 집을 짓고 나니 마당이 거의 운동장 수준으로 동네에서 가장 넓었다.

돈이 없어 집도 작게 지은 마당에 비싼 소나무를 심을 돈은 당연히 없었다. 옆집의 소나무는 잔가지가 멋지게 뻗어 나온 멋있는 소나무다. 그리고 그 나무를 중심으로 소나무들이 7그루 더 있었다. 누가 봐도 조경 공사비가 많이 든 집으로 보였다. 우리 집은 마당에 잔디를 깔고 대추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 

5월에는 우리 집 창문이 노랗게 변했다. 옆집 소나무 송진가루가 우리 집을 뒤덮었고 소나무에 영양제 주사바늘이 항상 꽂혀 있어 우리 아이들은 옆집의 나무들이 아픈 줄 안다. 그렇게 비싼 소나무이니 죽을까 봐 매일 정성을 다해 가꿀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전문 조경업체에서 수시로 와서 관리를 해주니 관리 비용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내가 심은 대추나무는 죽어도 큰 피해는 없다.

뭐, 죽으면 다시 심으면 그만이다. 비료도 안 주고 크게 신경도 안 쓰는데도 대추나무는 알아서 가을이면 대추를 선물한다. 작은 대추나무라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나무를 심은 다음 해, 마트에서 파는 큰 봉투로 세 봉지를 채울 정도로 대추가 많이 열렸다. 가을이면 우리 가족에게 푸짐한 선물을 주는 7만 원짜리 대추나무가 내겐 더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이번 가을에도 땅콩집에 아낌없이 나눠줄 나무들의 실력발휘를 기대해 본다. 

◆ 이현욱 건축가 

-現 이현욱좋은집연구소 대표

-캐나다 정부와 집짓기 프로젝트 시행

-땅콩집 열풍 전국 확산 (MBC 방송 출연)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본상( 기업혁신 부문)

-언론사 선정 올해를 빛낸 인물(2010년)

-화제의 논픽션 작가 선정((2011년)

-<두 남자의 집짓기>(2011년), <나는 마당 있는 작은 집에 산다>(2013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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