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현욱 건축가
사진/이현욱 건축가

[월드투데이 이현욱 건축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강의 요청이 들어오는데 주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집 짓기 강의를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 한번은 서울 디자인리빙페어에서 「작은 집이 럭셔리하다」라는 주제로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럭셔리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유는 럭셔리 잡지사에서 주최하는 강의이기 때문이다. 작은 집은 내 전공인데 럭셔리라니. 럭셔리를 빼고 강의를 하자고 할 수도 없고 참 난처했다. 그날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고민을 가족들과 함께 이야기해보았다.

“여보, 단독주택에 뭐가 있어야 럭셔리하다고 할 수 있지?” 
“우선 주방이 이런 거 말고 럭셔리한 거 있잖아. 3천만 원짜리 주방
정도면 럭셔리하지. 예를 들어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이탈리아 에페티(Effeti), 아님 하드웨어가 좋은 독일 명품 주방가구 라이히트(LEICHT) 정도?” 

아빠! 마당이 있어야 럭셔리한 집이야. (사진/이현욱 건축가)
아빠! 마당이 있어야 럭셔리한 집이야. (사진/이현욱 건축가)

전문가인 나도 처음 들어보는 주방회사 이름들을 나열한다. 아내는 신이 나는지 화장실 명품회사까지 열거한다. 

“화장실을 잘 꾸미면 집이 럭셔리해 보이지. 가구도 단가가 나가는 거 놓으면 집안 분위기가 확 달라져.” 
나도 모르는 새 아내는 집 짓기 전문가 수준이 되어 있었는데 각 회사의 장단점까지 분석한 상태였다. 덧붙여 가격대까지 침을 튀면서 흥분한 상태로 설명했다. 아내는 이 정보들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당연히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였다.

일반인들도 집 짓기 정보의 많은 부분을 인터넷에 의지를 하다보니 잘못된 소비문화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 

“평당 800만 원 정도면 집이 럭셔리하지.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우리 집 짓는다고 공부 좀 했는데 땅콩집에는 쓸모가 없네.” 
누가 옆에서 잘못 들으면 명품가방 얘기하는 줄 알 거다. 내가 얘기를 하지 말아야지. 음. 력셔리의 기준은 돈이군.

아내의 말을 종합하면 집은 작은데 럭셔리라는 뜻은 자동차에 비유하면 BMW 미니라고 생각하는 게 딱 맞는 표현이다. 아내는 말 나온 김에 우리 집 거실 가구들을 바꾸자고 난리를 치니 말을 잘못 꺼낸 것 같다. 분위기를 바꿔서 딸에게 물었다. 나의 얼굴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뭔가 신선한 대답이 안 나오면 미쳐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우리 이쁜 딸은 럭셔리한 집이 뭐라고 생각해?” 
“아빠! 럭셔리가 뭐야?” 

사진/이현욱 건축가
사진/이현욱 건축가

당연히 럭셔리 라는 단어의 의미를 아이들은 모른다. 
“아빠가 설명을 하자면, 럭셔리란 비싼 거, 그러니깐 집에서 가장 비싸고 중요한 거야.” 
“아, 앞마당!”  역시나 딸아이의 답은 신선했다. 나는 흥분된 마음으로 이유를 다시 물었다. 
“왜?” 
아이는 너무 쉽게 의외의 대답을 했다. 

“마당이 없으면 좋은 집이 아니지. 가장 비싼 건 마당이야. 마당은 꼭 있어야 해. 마당이 없으면 뭐가 비싼 집이야?” 
딸아이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다른 건 또 없어? 두 번째로 중요한 건?” 두 번째 질문에도 딸아이는 생각도 하지 않고 단번에 대답을 했다. 
“옆집 재모 오빠가 있어야 해.” 
의외의 대답에 당황을 하면서도 역시나 신선하다는 표정으로 이유를 물었다. 

“그건 왜? 비싼 집이랑 옆집 재모 오빠랑 무슨 상관이지?” 
“옆집이 없으면 재미없잖아. 난 재모 오빠가 좋아. 사탕도 사주고, 껌도 사주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여섯 살 딸보다도 삶의 진실을 모르고 살고 있었던 거다. 우리는 어느새 알게 모르게 물건의 값어치를 모양과 돈으로 판단을 해온 것이다.

비싼 마감재와 가구와 큰 집이 럭셔리의 기준이라면 아이들이 생각하는 값어치의 기준은 그냥 주방에서 엄마랑 쿠키를 구워먹는 그 순간이 더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비싼 서재가 중요한 게 아니고 자기 전에 자기 침대에서 30분 책 읽어주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럭셔리한 집에는 마당이 있고 이웃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게 없으면 10억이 넘는 비싼 집이라도 절대 럭셔리한 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아이에게 배운다. 

럭셔리한 집이란 생각하기 나름이다. 생각에 따라 나에게 너무 먼 얘기가 될 수도 있고 지금 내가 사는 집이 럭셔리한 집이 될 수도 있다.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니 모든 게 다 보였다. 내친 김에 딸아이에게 럭셔리한 집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여섯 살 딸이 생각하는 럭셔리집이다.

사진/이현욱 건축가
사진/이현욱 건축가

◆ 이현욱 건축가 

-現 이현욱좋은집연구소 대표

-캐나다 정부와 집짓기 프로젝트 시행

-땅콩집 열풍 전국 확산 (MBC 방송 출연)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본상( 기업혁신 부문)

-언론사 선정 올해를 빛낸 인물(2010년)

-화제의 논픽션 작가 선정((2011년)

-<두 남자의 집짓기>(2011년), <나는 마당 있는 작은 집에 산다>(2013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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