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이현욱 건축가]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 보면 아름드리 나무에 집 하나가 가끔 등장한다. 「톰 소여의 모험」에도 나무집은 꼭 나온다. 숲속에 아주 큰 나무 중앙에 나무판자로 만든 엉성한 나무집. 출입은 밧줄을 타고 오르내린다. 아이들의 꿈의 집 나무 판잣집이다. 

동화책을 읽다가 나무집이 나오자 우리 딸이 조르기 시작했다. 
“아빠, 나무집 만들어줘. 이 동화책 그림처럼 나무 위에 집 만들어줘.”  옆에서 아들이 책상에서 공부하다 말고 딸의 대화에 끼어든다. 
“아빠 이 집도 만들었잖아. 나무집 정도야 금방 만들수 있지? 마당에 우리들을 위해 하나 만들어줘라.  ”이 말에 나는 안방에서 다림질하는 아내에게 소리지른다. 

“이봐 이래서 동화책 읽어주면 안 돼. 아이들의 상상력이 지나쳐서 현실과 혼돈하잖아.” 
우리 집 마당에는 나무 위에 집을 지을 정도로 큰 나무가 없다. 그럼 언제 가능할까? 아마도 내가 죽고 아들이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때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들을 설득해보지만 우리 딸은 나의  볼을 잡고 놔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이 땅콩집도 내가 직접 지은 줄 안다. 나는 설계, 감리만 하고 이 집은 목수들이 지은 건데. 하는 수 없이 나무집을 만들어주기로 약속을 하고 도면을 그려서 목수 팀에 견적을 의뢰했다. 하루 반나절 일 하고 자재비 포함. 50만 원 페인트는 별도. 결국 일사천리로 진행을했다. 4개의 기둥에 받침대를 만들고 그 위에 벽을 세우고 지붕을 얻는다. 나무집 공사는 1시간 만에 끝나고 목수 팀은 철수했다. 

“역시 기획이 중요해.” 미리 자재를 절단해 와서 1시간 만에 조립이 끝났다. 파라솔에 앉아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올 때까지 기다렸다.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무슨 색으로 칠할지 고민한다. 딸을 위해 분홍색? 아님 아들을 위해 노란색? 옆집 재모를 위해 파란색? 커피를 마시면서 나무집을 자세히 보니 내 어릴 적 추억이 문득 떠올랐다. 

내 나이 일곱 살, 갈대밭 사이로 아버지와 한 아이의 모습이 나타난다. 갈대밭은 석양에 황금색으로 변했고 그 두 명의 뒤로 나무집 하나가 황금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결혼해서 이사를 많이 한 이유가 어려서 이사를 자주한 경험에서 오는 것 같다. 유치원에 다닐 때 우리 동네 판잣집에 대한 아픈 추억이 나의 건축철학에 영향을 준 것이 분명하다. 사연은 이랬다. 

잠실에 있는 5층 주공아파트에서 1년 동안 산 적이 있었는데 내가 살던 아파트 옆에는 석촌호수가 있었다. 지금은 롯데월드가 멋있는 호수를 배경으로 들어서 있지만 내 어린 시절의 석촌호수는 그냥 작은 갈대밭이었다.

지금의 석촌호수는 작은 늪지대를 개간해서 크게 만든 것이다. 여름이면 물이 불어 낚시도 할 수 있는 석촌호수는 작은 웅덩이로 기억에 남아 있다. 아빠와 그곳에서 낚시를 하거나, 아빠 옆에 가만히 앉아 갈대밭 사이로 해가 지는 것을 구경하곤 했다.

사진/이현욱건축가
사진/이현욱건축가

그렇게 6개월이 지나고 봄이 왔다. 4월 어느 날 일은 벌어졌다. 3월이 내 생일이고 일곱 번째 생일날 부모님은 큰맘먹고 비싼 자전거를 선물로 사주셨는데 자전거를 산 지 한 달 만에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자전거를 선물로 받지 않았으면 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어쩌면 나는 지금 건축을 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4월 28일 오후 2시, 그날도 하루 종일 자전거를 자랑하려고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자전거는 동네에서도 빛났다. 빛나다 못해 눈이 부셔 봄 햇살에 번쩍거렸다. 동네 친구들은 부러워서 한 번만 태워달라고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아이스크림 하나 주면 태워줄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친구가 내 자전거를 타고 노는 사이 처음 보는 형이 나타나 말을 걸어왔다.

“내가 딱지 줄게 나도 한 번 태워주라.” 
“네? 딱지요?” 
“그래, 딱지가 숨겨진 보물섬을 알아. 한 번만 태워주면 그 장소를 가르쳐줄게.” 
나는 그날 그 형을 처음 보았다. 이 동네에서 본 적이 없었는데 딱지에 정신이 팔려 경계심이 아예 사라졌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난 그 형에게 말을 걸었다. 

“형 진짜야? 딱지 주인이 없어? 얼마나 있는데?” 
“아주 많아. 너무 많아서 우리 둘이 같이 들지도 못할 정도야. 내가 그동안 모은 딱지인데 너 다 줄게.” 
그 형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자전거를 타고 있던 친구를 불렀다. 그만 타라는 말에 삐쳐서 가버린 친구를 신경쓰지도 않고 어느새 그 형을 따라가고 있었다. 

“형, 어디로 가?” 
“응 빨리 따라와. 누가 가져갈지도 몰라.” 
나는 자전거를 타지 않고 밀면서 걸으며 열심히 형을 따라갔다. 10분쯤 갔을까? 어느 상가 앞에서 우리 둘은 멈춰 섰다. 
“이 상가 4층 계단이 끝나는 곳에 있어. 옆에 자전거 세워놓고 같이 올라가자.” 
“자전거 잠가야 하는데…… 잃어버리면 아빠한테 혼나.” 
“괜찮아 금방 오면 돼. 빨리 올라가자.”
형의 말에 걱정은 됐지만 딱지를 빨리 갖고 싶은 마음에 자전거를그냥 세워두고 형을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4층을 단숨에 올라간 우리는 숨을 할딱거리며 딱지를 찾았다. 우리 둘은 여러 종이상자가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사이로 들어가서 박스를 뒤졌다. 1분 정도 지났을까? 형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이상하다? 여기 있었는데 어디 갔지?” 
“형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여기 아니야?” 
“잠깐 넌 여기서 찾아봐. 반대편 계단인지도 모르겠다. 찾으면 밑으로 들고 내려와, 알았지?”
그렇게 말하고 형은 계단을 내려갔다. 아무런 의심없이 나는 형을 찰떡같이 믿고 있었다. 

‘그래 내가 찾아야겠다. 자기가 숨기고 찾지도 못해. 바보!’ 
10분이 지나도 딱지는 보이지 않고 머리는 종이박스 쓰레기 먼지를 뒤집어써서 하얘졌다. 
“에이 뭐야? 형한테 가봐야겠다. 여기는 없어.” 계단을 내려가서 반대편 계단을 오르려는 순간 길가에 세워둔 내 자전거가 없어진 걸 알게 되었다. 

“어 이상하다. 여기다 세워놨는데 어디 갔지? 형은 또 어디 간 거야? ”
자전거를 세워놓은 곳 앞 가게 아저씨에게 여기 자전거 못 봤냐고 물어봤지만 못 봤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한참 주변을 살피고 자전거를 찾았지만 내 자전거는 보이지 않았다. 찾다가 형에게 물어보려고 반대편 계단을 올라갔지만 형도 보이지 않았다. 

“이 형은 대체 어디로 간 거지?” 
1시간 이상 자전거를 찾다가 집으로 달려가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엄마도 같이 찾았지만 동네 어디에도 내 자전거는 없었다. 저녁에 아빠가 와서 내 얘기를 듣더니 꼭 찾아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나는 그제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그 다음 날 일요일, 아빠를 따라 하루 종일 자전거를 찾았지만 내 자전거는 보이지 않았다. 나를 속인 그 형의 행동이 너무 괘씸하다고 그 형을 꼭 혼내주겠다고 나를 타이르는 아빠를 보니 안심이 됐다. 
‘내가 바보가 아니라 그 형이 나쁜 거야. 그런 나쁜 형이 어디 있어.’ 
이렇게 마음속으로 나를 달래며 아빠가 그 형을 찾아주기만을 바랐다. 

자전거를 잃어버린 지 2주가 지났다. 엄마가 바보같이 속고 다니냐며 나를 야단치면 아빠는 그 형이 나쁜 놈이라고, 일곱 살이 뭘 아냐며 속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엄마를 달랬다. 엄마는 비싼 자전거를 잃어버린 것보다 아들이 바보같이 속았다는 게 더 속상하셨던 것 같다. 마침내 한 달이 지나서 아빠가 자전거를 찾았다고 말했다. 그 형이 사는 곳을 알아냈다고 얼굴 확인을 해야 하니 같이 가자는 것이다. 난 조금 무서웠다. 아니 그 형이 나에게 보복을 할까 봐 안 가겠다고 했다.

그냥 경찰에 넘기라고, 감옥에 넣으라고 울면서 발버둥을 쳤다. 
“현욱아 너를 속인 그 형이 맞는지 확인을 하고 경찰에 신고하자. 
걱정하지 마. 아빠가 알아서 할 테니 아빠를 믿어.” 

난 그 형한테 가기가 죽기보다 싫었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아빠의 손을 잡고 같이 아파트를 지나 갈대밭을 걷기 시작했다. 
“아빠, 이 길은 낚시하러 가는 길인데? 맞아?” 
“응 맞아. 그 옆에 살더라고.” 
갈대밭으로 낚시는 다녔지만 사람이 사는 집이 있다는 건 그때 처음 알았다. 익숙한 갈대밭 길을 지나고 우리가 자주 가던 낚시터도 지나니 갈대숲 사이로 집들이 보였다. 집이라는 게 판잣집들이 여러 채 모여 있는 동네였다. 아빠는 판잣집 사이로 조금 들어가다가 어느 집 문앞에 멈춰 섰다. 

“여기가 그 형이 사는 집이야.”
아빠는 그 형의 이름도 아는지 이름을 불렀다. 
“석근아, 안에 있니?” 
아빠의 말에 문을 열고 그 형이 나왔다. 이름은 석근이고 나보다 다섯 살 많다고 했다. 
“아빠 이 형 맞아. 이 형이 내 자전거 훔쳐갔어!” 
아빠는 흥분한 나의 어깨를 잡고 나를 진정시켰다. 
“아빠가 알아서 할게, 너 먼저 낚시터로 가 있을래?” 
갑자기 그 형의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고 너무 놀란 나는 아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그 집을 벗어나고 있었다. 발길을 돌려 판잣집 사이의 골목길을 벗어날 때 다시 뒤를 돌아봤다. 갈대밭 뒤로 판잣집들이 죽 늘어서 있고 석양에 갈대밭이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석양에 물든 판잣집과 그 뒤에 서 있는 두 사람. 아빠와 그 형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습이 진지했다. 그 풍경은 마치 한 폭의 명화를 보는 것 같아 나는 가던 길을 멈춰 서서 한참을 지켜보았다. 내 눈에 그 판잣집은 더 이상 판잣집이 아니었다.

훌륭한 갈대밭 정원을 가진 아름다운 건축물로 변해 있었다. 그곳에 아빠와 그 형이 서 있다. 판잣집 지붕의 높이는 아빠의 머리보다 한 뼘 정도밖에 높지 않아 아담하고 따뜻해 보였다. 아빠가 하는 말을 듣고 있던 그 형은 울기 시작하고 아빠는 그 형을 안아주고 있었다. 

어린 내 마음속에 뭔지 모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땐 그 기분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는데, 집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집은 따뜻해야 하는 것이구나, 집 자체가 자연의 일부이며 사람까지 자연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 집이구나 하는 걸 그때 나는 알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아파트보다 그 판잣집이 더 멋져 보였다.

우는 형을 달래고 그 형의 울음이 그치자 아빠는 발길을 돌렸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나한테 아빠는 형에게 손들어 인사를 하라고 하고 같이 손을 들어 줬다. 

형도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분명히 웃고 있었다.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는 얼굴로 그 형 뒤로 어린 동생 둘이 열린 문으로 나와 같이 손을 흔들었다. 다정해 보이는 형제들이었다. 

“아빠 우리도 이리로 이사 오자. 이 집 너무 좋아 보여. 그리고 나도 남동생 하나 만들어줘. 응?” 
아빠는 나의 뒤통수를 한 대 때리며 자기 물건 간수도 못한다며 내가 나쁘다고 야단을 치셨다. 그동안 내 편을 들어주던 아빠는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했다. 그 형을 감옥에 보내는 대신 나를 나무라는것이다.

나 때문에 저 형이 나쁜 짓을 하게 됐다고, 내가 안 속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딱지가 그렇게 좋으냐고 혼을 내셨다. 추억에 잠겨 마당의 나무집을 보고 있는데 어느새 아이들이 마당으로 들이닥쳤다.

사진/이현욱건축가
사진/이현욱건축가

아빠의 능력에 감탄을 하며 하루 종일 나무집을 오르락내리락한다. 밧줄 대신 사다리지만 벌써 네 기둥 사이에 나무판대기를 모아 바닥을 만들어서 2층을 만들었다. 
“오빠는 2층에 살아, 나는 1층에 살게.” 
벌써 우리 딸이 집 층수를 나눠 영역을 정리한다. 그리고는 집 내부를 꾸미기 시작했다. 저녁에 아이들 자기 전에 아빠의 나무집(판잣집)에 대한 추억을 말해주자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우는 형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해했다. 잘은 모르지만 석근이 형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동생들 봐서 나쁜 짓 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고 동생들 잘 봐주라고. 힘 내라고. 정 힘들면 아저씨를 찾아오라고 말했을 것이다. 우리 궁금이 딸이 묻는다. 

“아빠, 자전거는 어떻게 됐어?” 
자전거는 중고로 팔아서 쌀을 샀다고 했다. 동생들이 하도 배고프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훔쳤다고. 3년쯤 지나고 그 집을 다시 찾아갔지만 그 형은 없었다. 아니, 그 나무 판잣집이 없었다. 갈대밭도 없어지고 그 주변으로 아파트 건설이 시작되어 모두 사라져 버린 뒤였다. 주변 부동산 아저씨 말로는 불법 건축물을 구청에서 다 철거하고 쫓아냈다고 한다. 그곳 사람들과 마찰이 좀 있었지만 다들 포기하고 떠났다고 했다.

부동산 아저씨가 앓던 이가 빠졌다며 속시원하다고 좋아했던 기억이 나 씁쓸했다. 비록 나무 판잣집은 없어졌지만 내 마음속에, 그 시절 우리 가족의 마음에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 집 마당에 지은 나무집에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다음 날 옆집 재모에게 나무집 마음에 드는지, 뭐 느끼는 게 없냐고 물었다. “아저씨, 핑크색이 뭐예요? 창피해서 못 올라가겠어요. 다른 색깔로 바꿔주세요!” 

◆ 이현욱 건축가 

-現 이현욱좋은집연구소 대표

-캐나다 정부와 집짓기 프로젝트 시행

-땅콩집 열풍 전국 확산 (MBC 방송 출연)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본상( 기업혁신 부문)

-언론사 선정 올해를 빛낸 인물(2010년)

-화제의 논픽션 작가 선정((2011년)

-<두 남자의 집짓기>(2011년), <나는 마당 있는 작은 집에 산다>(2013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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