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이현욱 건축가]  아들이 언제부터인지 건담을 사달라고 성화다.
“웬 건담? 닌자고는 어쩌고?”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건담을 보고 그게 너무 멋있어 보였나보다. 아들과 미션놀이를 하기로 했다. 책을 100권 읽으면 너의 소원을 들어주마! 

사진/이현욱 건축가
사진/이현욱 건축가

뭘 하나 해도 의미가 있는 선물이 되기를 바라는 아빠의 마음이랄까, 미션을 통해 가치를 인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들에게 제안했다. 가끔 나도 미션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다. 어찌 보면 아들을 빌미로 나의 미션이 시작된 것이다. 

아들과 나의 미션은 4년 전부터 시작됐다. 파워레인저 엔진포스. 기왕 장난감 사는 거 한 분야로 선택을 하자고 했다. 어릴적 나의 아버지는 집짓기 블록시리즈만 사주셨었다. 일관성 있게 블록도 한 회사 것만 집중적으로 사주셨다.

나중에 아버지 친구네가 블록장사를 하나 할 정도로 집짓기 블록이 엄청 많았다. 너무 많아 실제 집사이즈만하게 지어도 될 정도였다. 어려서부터 블록으로 집짓기를 하다 보니 지금도 집 짓기를 계속하고 있고 땅콩집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아들 또래들이 환장하는 장난감 파워레인저를 생일 선물로 사주기 시작했다. 시리즈를 모아 놓으니 장남감이지만 포스가 느껴졌다. 이번에는 헬기, 가격이 3만 원이라 부담이 없었다. 아직 돈의 값어치를 잘 모르는 아들에게는 3만 원이라는 가격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헬기 한 아이템을 얻었다는 게 중요했다.

크리스마스 날 또 파워레인저다. 이번엔 트럭. 헬기보다 좀 비싼 5만 원. 크리스마스니깐. 
새해 선물도 파워레인저. 이번엔 죠스. 그래도 3만 원이라 트럭보다는 부담 없이 사주었다. 어린이날, 유치원 졸업식, 행사 때마다 파워레인저를 선물해주었다. 코끼리, 자동차, 오토바이…… 종류도 가지가지였다.

사실 아이 장남감이 너무 비싸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데 10만 원이 넘는 토마스기차 시리즈보다 그나마 가격이 착하다. 어느 날 집에 와보니 아들은 자기만한 로봇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우리 아들 멋진 로봇 갖고 노네? 이거 친구 거야?” 
“아냐, 그동안 아빠가 사준 장난감 합친 거야. 왼쪽 팔은 죠스, 오른쪽 팔은 오토바이. 다리는 코끼리와 자동차. 몸통은 헬기.” 아니 이럴 수가! 그동안 모은 파워레인저를 합쳐 새로운 로봇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동네 아이들이 놀면서 장난감으로 만든 땅콩집 마을. 미래의 건축가들.(사진/이현욱 건축가)
동네 아이들이 놀면서 장난감으로 만든 땅콩집 마을. 미래의 건축가들.(사진/이현욱 건축가)

우리 아들은 1년을 투자해서 새로운 장난감을 완성한 것이다.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이 상황을 건축에 반영한다면 항상 주택을 설계하면서 고민한 사항에 대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을 지으면서 항상 경제적인 문제에 부딪히는 문제는 돈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따라서 설계만 완성해 놓고 시간을 가지고 계속 증축하여 집을 완성하는 것은 어떨까? 우선 급한 대로 금액에 맞게 집을 지어 살고 돈이 생기면 증축하면 되는 것이다. 파워레인저 장난감처럼 완성된 로봇을 사면 돈이 많이 들지만 작은 장난감을 하나하나 모으면 나중에 큰 장난감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쌈짓돈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시간이 필요하지만 부담 없이 목적을 완수할 수 있다. 이 아이디어가 죽전 모바일홈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누가 나에게 건축의 스승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우리 아들이라고 답할 
것이다. 순수함을 떠나 생각하는 수준이 기발하고 상상력은 어른인 내가 도저히 쫓아갈 수 없다. 

우리 집 예쁜 딸이 옆에서 자기도 하겠다고 아들과의 대화에 끼어든다. 우리 딸은 상황이 좀 다르다. 딸은 아직 글을 모른다. 그러므로 내가 책을 읽어줘야 한다. 우리 딸에게 책 100권 읽으면 무얼 해줄까?라고 물으니 딸은 망설임도 없이 건담 사달라고 답한다.

옛날 선녀와 나무꾼이 살다가…… 아빠 왜 한 줄 빼먹고 읽어! 아…… 미안해. (사진/이현욱 건축가)
옛날 선녀와 나무꾼이 살다가…… 아빠 왜 한 줄 빼먹고 읽어! 아…… 미안해. (사진/이현욱 건축가)

건담? 이유는 건담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오빠가 좋아하는 거면 분명히 맛있는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이들을 겨우 설득하고 언제 미션을 완수할 지 모르니 그냥 그때 가서 결정하기로 했다. 책 읽기 미션은 계속되고어느 순간부터 계단에 쌓이는 책들. 왜 계단이지? 아아이들은 아빠의 눈에 잘 띄는 곳이 계단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책이 쌓이는 속도가 무서웠다. 언제부터인지 옆에 또 하나의 책탑이 세워지고 있었다. 여섯 살짜리 딸도 100권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딸의 미션이 아닌 나의 미션. 아빠가 책을 읽어주면 그 책은 곧바로 계단으로 향한다. 아빠가 이렇게 많이 읽어줬나? 이상하게 책이 쌓이는 속도가 무섭다. 

딸이 반칙을 하나 싶어 아내에게 물어보니 쌓인 책의 3분의 1은 아빠가 없을 때 자기가 직접 읽은 것이라고 한다. 아니 언제 글을 배웠지? 어린이집에서 배웠나? 아빠가 자기 전 동화책 3권을 읽어준 것이 어느덧 한글을 깨우치게 됐다고 한다.

사진/이현욱 건축가
사진/이현욱 건축가

책을 읽어주니 한글공부가 따로 필요 없이 책을 읽어주니 자연스럽게 글을 배운 것이다. 시간을 들여 꾸준히 노력하면 못할 것이 없다. 특히 아빠의 호흡을 통해 듣는 소리는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어 정서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책 100권 읽기 미션의 우승자는 당연히 우리 딸이 되었다. 오빠보다도 선물을 빨리 받게 됐고 선물을 선택하라고 했지만 아직도 선물을 고르지 못했다. 이유는 나중에 더 큰 걸 사달라고 기다리는 중이란다. 나중에 대학 들어가서 자동차 사달라고 하는 거 아닌지 걱정이다. 가끔 빨리 결정하라고, 선물이 도망가 버릴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소용이 없다. 

사진/이현욱 건축가
사진/이현욱 건축가

책 100권 읽기의 교훈은 티끌모아 태산이다. 매일 책 3권을 읽어주니 아이가 한글을 저절로 배운다. 교훈이 이게 끝인가? 아니다. 책 100권 읽기는 역시나 나의 미션이다. 아이들을 통해 인생의 즐거움을 배운다. 아이들과 함께함으로써 오늘도 배운다. 나는 매일 배운다. 지금 당장 책 100권 읽기 아이들과 함께 한번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 이현욱 건축가 

-現 이현욱좋은집연구소 대표

-캐나다 정부와 집짓기 프로젝트 시행

-땅콩집 열풍 전국 확산 (MBC 방송 출연)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본상( 기업혁신 부문)

-언론사 선정 올해를 빛낸 인물(2010년)

-화제의 논픽션 작가 선정((2011년)

-<두 남자의 집짓기>(2011년), <나는 마당 있는 작은 집에 산다>(2013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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