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이현욱 건축가] 대부분은 1999년, 극장에서 네 번이나 본 영화가 있다. 「매트릭스」. 영화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으로 이 장면을 꼽을 것이다. 네오가 총알을 피하는 아주 멋있는 장면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부분보다는 모피어스가 네오를 처음 만나서 네오 손에 알약 두 개를 주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다. 빨간약과 파란약. 두 알 중에 파란약은 현재 사는 현실로 다시 돌아오는 약이고 빨간약은 진실을 알게 되는 약이다. 네오는 진실을 알고 싶어 빨간약을 먹고 결국 모피어스 멤버에 합류하게 된다. 인간이 멸망한 진실. 이 장면이 너무 인상이 깊어 그날부터 이상한 꿈을 꾼다.

처음 보는 사람이 나타나서 내게 말한다.                                                                                                 “이현욱 씨 당신을 쭉 지켜봤습니다.” 
분명 모피어스는 아니지만 얼굴이 없는 사람도 아닌데 얼굴 생김새가 기억이 안 난다. 
“네? 누구시죠?”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파란약과 빨간약이 있습니다. 빨간약을 먹으면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얼굴 없는 그 사람은 두 개의 알약을 내 얼굴 가까이에 내민다.
“이거 먹으면 진실을 알 수 있나요? 나의 미래가 보이나요?” 

파란약, 빨간약을 내 손에 쥐어주는 꿈. 당시 나는 나의 인생의 정체성에 대해 한참 고민하던 중이었고, 그렇기에 더욱 현실에 적응 못하고 방황하는 나에게는 아주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그 이후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많은 시간을 들여 대화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 마치 오래전에 만났던 사람처럼. 이 사람이 언제 빨간약 주나? 나에게 삶의 진실을 알려줄 사람은 아닌가? 여행을 가면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자아가 성장한다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들로 많은 빨간약을 받아 먹었다. 

사진/이현욱건축가
사진/이현욱건축가

그리고 2011년 친구랑 땅콩집을 짓고 집 짓기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신념에 친구랑 같이 글을 썼다. 이렇게 탄생한 책이 「두 남자의 집짓기」다.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렸다. 아니 매트릭스처럼 빨간약을 공급했다. 그런데 그냥 약만 공급했지, 내용이 없다. 매트릭스 영화를 보면 기계군단과 대적할 시스템이 어느 정도 만들어져 있어서 네오가 기계들과 매트릭스에서 대적을 한다. 그럼 땅콩집은?

“당신은 누구시죠?” 
“빨간약을 먹으면 집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됩니다. 빨리 이 약을 먹으세요.” 
“네, 그럼 이 약을 먹고 그다음은 뭘 하죠?” 
“알아서 잘 하세요.”

며칠 전에 나한테 메일이 하나 왔다. 「두 남자의 집짓기」 책을 통해 희망과 절망을 경험하게 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이 책이 없었으면 그냥 아파트에서 편하게 살 수 있었는데, 덕분에 아파트를 버리고 개고생을 하게 되었다는 미움 섞인 메일이었다. 

집 짓기는 참 쉬우면서 어렵다. 어른들의 말씀에 ‘집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얘기가 있다. 과거에 집을 짓다가 어려운 낭패를 당하는 경우를 많이 겪었던 경험에서 생겨난 유행어다. 집 짓기에 전문지식이 없는 상태이고 그 당시에는 정보력도 떨어져서 문제가 생기면 물어볼 데도 없던 시절이었다.

분명 집 짓기는 인생의 어려운 도전이다. 집 짓기는 건축부분의 문제만 있으면 다행이지만 여러 복합적인 현상이 얽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주 복잡한 도전이다. 예를 들어 어디에 땅을 사고, 이 땅은 좋은 땅인지, 등기상에 문제가 없는지, 집 짓는 건축허가가 나는 땅인지, 가격이 비싼지, 그럼 땅을 사서 어떤 집을 지어야 하는지, 내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충분한지, 형태는 어떠해야 하는지, 외장재와 내장재는 어떤 것이 좋은지, 이 집에 맞는 가구는 또 어떤 것이 외장재와 어울리는지 등을 고민해야 하고 결정할 게 많다. 

뿐만 아니라 건축가는 누구를 선택하며 시공은 어디에 맡겨야 올바른 선택인지, 설계는 언제하고 시공은 언제 할지, 시공방법은 철골, 목조로 할지, 콘크리트로 할지 고민하고 생각할 게 너무 많아 10년 늙을 만도 하다. 이 정도면 다 끝난 건가? 싶다가도 이 많은 고민들에는 순서가 있고 타이밍이 있어 순간의 결정으로 순서가 엉망이 되는 경우도 많다. 건축주랑 설계미팅을 하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질문이 “어머 이런 것도 고민해야 하나요?”이다. 

건축, 집 짓기는 선택이다. 모든 순서가 선택에서 시작하고 선택에서 끝난다. 장점만 모아서 절대로 집을 지을 수 없다. 그것은 욕심이고, 불가능한 일이다. 선택에 이점도 얻지만 손실도 생긴다. 쉽게 말해 싸고 좋은 집은 없다. 비싸다고 좋은 집도 아니다.

집이란 마음먹기에 달렸다.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살펴보며 지금까지 함께하는 이들을 믿고 따라가면 예상보다 훨씬 쉽게 결과에 다다를 수 있다.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네오를 구원자라고 목숨을 걸고 믿음으로써 네오가 그 믿음에 부응하듯 절대자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고 모피어스를 위험에서 구한 것처럼.

집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만큼 진짜 힘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집 짓기는 재미있고 인생에서 도전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 당신은 이 어려운 길을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집을 짓기보다 돈 주고 집을 살 것인가? 쉬운 방법을 택할 수도 있지만  집은 돈 주고 사는 물건이 아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집을 짓고 그 집에서 인생의 고통과 즐거움을 느끼며 그 집에서 죽는다.

의, 식, 주. 인생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요소들. 옷을 지어서 입고 밥을 지어서 먹고 집을 지어서 산다. 선조들은 왜 의식주와 관계된 단어에 ‘짓는다’는 단어를 붙여 사용했을까? 이유는 인간은, 사람은 ‘짓고 살다’가 맞기 때문다. 

여러분 여기 빨간약과 파란약이 있습니다. 빨간약을 먹으면 인생의 진실을 알게 됩니다. 힘든 집 짓기의 여정이 기다리지만 파란약은 현실에 안주하는 편안한 삶을 가져다줍니다. 빨간약, 파란약. 이제 당신의 인생을 선택하세요!

◆ 이현욱 건축가 

-現 이현욱좋은집연구소 대표

-캐나다 정부와 집짓기 프로젝트 시행

-땅콩집 열풍 전국 확산 (MBC 방송 출연)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본상( 기업혁신 부문)

-언론사 선정 올해를 빛낸 인물(2010년)

-화제의 논픽션 작가 선정((2011년)

-<두 남자의 집짓기>(2011년), <나는 마당 있는 작은 집에 산다>(2013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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