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이하경 기자]1985년 애플에서 쫓겨난 뒤 재기를 노리던 스티브 잡스는 픽사에 관심을 갖는다. 

잡스의 목표는 편리함을 주는 최고의 컴퓨터를 만들어 자신을 쫓아낸 애플에 복수하는 것이었다. 픽사는 루카스 필름의 컴퓨터 그래픽 사업부로 에니메이션을 제작하는 회사로, 그래픽에 특화된 컴퓨터를 개발하던 중이었다.

루카스필름의 대표인 조지루카스는 이혼으로 자금이 필요해 픽사 그래픽스 그룹을 매물로 시장에 내놓았고, 여기에 관심을 갖고 있던 스티브 잡스는 애플 컴퓨터로 모은 돈을 털어 픽사를 인수한다.

이때 픽사의 경영진이 내건 한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바로 장편 컴퓨터그래픽 에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픽사의 꿈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수를 하고 보니 픽사의 컴퓨터는 지나치게 고사양이고 비싸서 잘 팔리지 않았다. 돈을 벌지 못하는데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 제작비는 줄줄 샜다. 하지만 잡스는 픽사 경영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픽사에 자금을 지원했다.

1895년부터 시작해 첫 번째 컴퓨터그래픽 장편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로 수익을 내기까지 거의 10년 동안 꿈꾸느라 돈만 잡아먹은 기업을 이끌기위해 투잡을 뛰었다.

잡스가 기존에 운영하던 NeXT가 잘 나갔기에 더 이상 픽사가 하드웨어 판매를 고집할 필요가 없어졌다. 때문에 픽사는 하드웨어 판매를 중단하고 장편 에니메이션에만 집중하도록 했다. 그는 해가 갈수록 정교하게 발전하는 컴퓨터그래픽 에니메이션이 결국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영화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한 잡스는 픽사의 운영진인 존 래스터와 에느 캣멀에게 전권을 넘기고 간섭하지 않는다. 

원래의 스티브 잡스였다면 애플에서와 마찬가지로 공격적으로 밀어붙이며 자신의 뜻대로 일을 진행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잡스는 픽사를 통해 듣는 법을 배우게 된다. 추진력이 필요한 순간과 멈춰야 할 순간을 구분하게 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리더로 성장한다.

잡스는 돈의 논리를 고집하다 픽사의 창의성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한발 물러서서 전문가인 픽사의 의견을 따랐다. 

잡스는 자신이 늘 영화 제작의 실무에 무지하다고 말했지만, 영화에서 관객의 호응을 얻는 스토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그는 픽사 감독들이 스토리를 구상하는 과정에 참여했으며, 다음 생애는 픽사 감독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말까지 남겼다.

현실에서 감독은 될 수 없었지만, 그는 픽사에서 배운 스토리텔렝으로 청중 앞에서 더 효율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었다. 

스티브잡스는 실용적이면서도 재밌는 것을 창조하길 갈망했고, 픽사의 영화들은 인생의 진실을 얘기하기에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것이라고 믿었다. 

잡스는 '픽사'라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비록 젊은 날 애플에서 쫓겨나는 등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픽사를 끝까지 지원하며 응원했던 리더다. 픽사와 잡스가 서로를 믿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픽사 에니메이션도, 스티브 잡스가 이끌었던 애플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픽사에는 스티브 잡스를 추모하는 빌딩이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바꾼 천재, 픽사의 창의성을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지켜준 스티브 잡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는 장소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