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어 임기 중 런던 부동산 집중 투자한 나자르바예프 일가
퇴임 후 카자흐스탄 이미지 세탁에 관여한 토니 블레어
캐머런 전 총리, 외국인 부동산 소유자 등록법 도입 추진

[사진=런던 시가지, AFP/연합뉴스]
[사진=런던 시가지, AFP/연합뉴스]

[월드투데이 최도식 기자]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시기 카자흐스탄 독재정부의 비자금이 런던에 흘러 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는 카자흐스탄의 고위 정치인들이 지난 1998년부터 4년 간 총 5억 3000만 파운드(약 8600억원) 상당의 호화 부동산 34곳을 사들였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언급된 정치 엘리트들은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인물들로, 그는 지난 1990년부터 약 30년 간 대통령직을 유지해왔으며 현재까지도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처럼 장기독재를 일어오던 나자르바예프는 부정축재로 최근 벌어진 반정부시위의 기폭제 역할이 되기도 했다. 지난 2일 시작된 카자흐스탄 시위에서 시위대는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을 향해 '노인네는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그의 권력퇴진을 요구했다.

[사진=지난 2일 독재정권에 대항한 카자흐스탄 반정부시위, AFP/연합뉴스]
[사진=지난 2일 독재정권에 대항한 카자흐스탄 반정부시위, AFP/연합뉴스]

실제로 공직자 일가가 약 8600억원 상당의 호화부동산을 사들였다는 점은 충분히 부정축재를 의심할 만한 대목이다. 부정축재 자금 이동을 분석한 책 '머니랜드'의 저자 올리버 벌로는 "카자흐스탄의 시위 사태는 자국 자산이 아무런 방해 없이 해외로 흘러나가는 데 대한 대응 성격도 있다"며 "그런 자산의 주요 행선지 중 하나가 런던"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카자흐스탄 독재자의 부동산 세탁은 이미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 때문에 영국 정치권에서는 이에 자국 내 부동산을 보유한 해외 소유주의 신원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부정 자금 세탁의 출처를 밝히는 일은 현재까지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영국 범죄수사국(NCA)이 나자르바예프의 맏딸 다리가 나자르바예바와 손자 누랄리 알리예프가 최소 8000만 파운드(약 1305억원) 상당의 런던 부동산의 출처를 확인하려 했지만 영국 법원이 기각해 무산된 적이 있다. 

또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는 지난 2016년 런던에서 열린 반부패 정상회의에서 역외 부동산에 대한 비밀 소유권을 종식하겠다고 했지만, 이후에도 영국의 외국인 부동산 소유자 등록 법안은 도입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카자흐스탄 전 대통령이 런던의 부동산을 매입하게 된 경위는 무엇일까?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소속 존 헤더쇼 교수는 나자르바예프 일가와 토니 블레어 총리, 그리고 영국 왕실의 앤드루 왕자 사이의 관계를 언급하며 이들 사이의 '은밀한 커넥션'을 제기했다. 

[사진=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AP/연합뉴스]
[사진=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AP/연합뉴스]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나자르바예프 일가의 부정 축재 자금이 영국 부동산으로 흘러드는 것을 방관했다는 의혹과 함께 지난 2011년 발생한 카자흐스탄 시위 이후 독재정부의 이미지 세탁을 도와 도덕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나자르바예프 일가는 블레어 총리가 재임하던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약 8600억원 상당의 자금을 영국 부동산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블레어의 임기 말인 2007년에는 나자르바예프의 사위 티무르 쿨리바예프가 앤드류 왕자의 버크셔 수닝힐공원을 1500만 파운드(약 244억원)에 매입하기도 했다. 

토니 블레어와 카자흐스탄 일가의 유착관계는 그가 총리에서 물러난 뒤 노골화됐다. 퇴임 후 컨설팅 기업을 운영하던 블레어 전 총리는 시위 강경 진압 후 이미지 개선을 고민하던 카자흐스탄 정부에 이미지  세탁을 위한 솔루션을 제시해준 것이다. 

[사진=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전 대통령, 로이/연합뉴스]
[사진=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11년 카자흐스탄에서는 나자르바예프 독재에 대항하는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강경 대응으로 시위대를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시민 14명이 사망해 국제사회로부터 큰 지탄을 받았다. 

나자르바예프는 블레어 전 총리의 컨설팅 기업에 자문을 구했고, 블레어는 1300만 달러(약 157억원)의 수수료와 함께 독재정부의 이미지 세탁을 위임하게 됐다. 이 일로 블레어 총리는 영국인을 비롯해 전 세계인들로 부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블레어 퇴임 이후 영국 내에서 이들의 커넥션을 밝히려는 정치권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영국이 독재 정권의 '비자금 세탁소'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선 외국인 부동산 소유자 등록 법안 도입이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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