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들의 총성과 방치된 시신, 혼돈의 알마티
시위대에 조준사격 승인한 토카예프 대통령
러시아 공수부대가 카자흐스탄에 투입된 이유는?

[사진=알마티에 투입된 군인들, 로이터/연합뉴스]
[사진=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으로부터 시위대에 대한 조준사격을 승인받은 군인들, 로이터/연합뉴스]

[월드투데이 최도식 기자]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반정부시위 진압을 위해 러시아 공수부대를 동원한 가운데 시민들에 대한 조준사격을 승인하면서 5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난 2일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가 최대 도시 알마티를 중심으로 6일째 계속되고 있다.  

시위 과정에서 경찰과 국가근위대 소속 군인 측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자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시위대를 살인자로 언급하며, 이들에 대한 경고 없는 조준사격을 허가했다. 이로 인해 시위대 측에서도 5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상황이다. 

타스·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내무부(경찰) 공보실이 7일(현지시간) 오후 기준 전국에서 3천811명의 시위 참가자가 체포됐으며, 26명이 사망, 26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발표했다. 

시위대와 정부 군경 간의 충돌에 러시아 군대까지 카자흐스탄 문제에 개입하면서 현지의 군사적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진 상태다. 지난 5일 토카예프 대통령이 시위 진압과 관련해 러시아에 지원 요청을 보냈고,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공수부대를 파견한 것이다.

■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알마티

시위의 최대 격전지는 1997년까지 카자흐스탄의 수도로서 기능했던 최대 도시 알마티이다. 대부분의 사상자들도 이 지역에서 발생했다.

현재 알마티는 전날 새벽부터 경찰병력과 군인들에 의해 시작된 시위진압 작전이 계속되고 있다. 외신은 알마티 광장의 군사적 긴장감과 함께 도시의 참혹한 광경을 묘사했다.

[사진=시위진압에 투입된 군대, TASS/연합뉴스]
[사진=알마티에 투입된 군 병력, TASS/연합뉴스]

타스 통신은 7일 오전 시내 공화국 광장에서 규칙적으로 들리던 총성이 저녁 무렵이 되면서 상당히 줄어들었으나 광장은 여전히 자동소총을 든 군인들이 장악하고 있으며, 군용트럭과 장갑차도 배치돼 있다고 소개했다. 또 광장과 주변 도로에는 간밤에 총격을 받은 자동차들이 버려져 있으며, 차 안에는 숨진 사람들이 있지만 여전히 수습되지 않고 있다고 참상을 전했다. 

알마티 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에서도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알마티 인근의 알마티주 주도 탈디코르간에서 복면을 쓴 수십명이 구치소를 공격하는 사건 등이 곳곳에서 발생해 여러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알마티를 비롯해 수도인 누르술탄(옛 아스타나)에서는 여전히 인터넷 접속이 거의 되지 않고 있고, 전화 통화도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선 국제전화도 사실상 차단된 상황이다.

■ 민주주의 역행하는 토카예프 대통령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정부군에게 시위대에 대한 조준사격을 승인했다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는 국영방송의 대국민담회를 통해 시위대가 국제 테러리스트 조직이며 외국에서 철저한 군사교육을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진=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Khabar TV/로이터/연합뉴스]
[사진=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Khabar TV/로이터/연합뉴스]

이에 국제사회가 카자흐스탄 정부에 시민들과의 협상에 응하라고 요구하자 "범죄자, 살인자들과 어떻게 협상을 한단 말인가. 우리는 국내와 외국에서 온 무장하고 훈련받은 강도들과 마주하고 있다. 그들은 강도이고 테러리스트들"이라며 협상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사진=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토카예프 대통령의 발언과는 달리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된 시위대의 모습, AFP/연합뉴스]
[사진=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토카예프 대통령의 발언과는 달리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된 시위대의 모습, AFP/연합뉴스]

자국에서 발생한 시위를 테러단체의 소행으로 왜곡하는가하면 서방언론에 대한 비난도 쏟아냈다. 시위 진압 상황에 대해 "대테러 작전이 계속되고 있으며, 반군은 무기를 내려놓지 않고 범죄를 계속 저지르고 있거나 그럴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 "그들과의 싸움을 끝까지 밀고 가야 한다. 항복하지 않는 자는 제거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소위 자유 언론매체와 외국의 운동가들이 카자흐스탄의 소요를 선동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모든 형태의 법률 파괴주의에 대해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 카자흐스탄에 파견된 러시아 공수부대

카자흐스탄 대통령 행정실은 토카예프 대통령의 요청으로 옛 소련국가 안보협의체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의 평화유지군 선발대가 카자흐스탄에 파견됐다고 전했다. 이어 테러리스트 소탕 작전은 카자흐스탄 군경 특수부대가 수행하고 CSTO 평화유지군은 국가 주요시설 경비 임무만 수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파견되는 병력 규모는 2천500명으로 러시아 병력 1진이 지난 6일 현지에 도착해 작전에 착수한 상황이다. CSTO 평화유지군에는 러시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출신 군인들이 포함됐다. 국가별 병력 현황은 자세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아르메니아가 100명, 키르기스스탄이 150명, 타지키스탄이 100~200명을 파견한 것으로 알려진 점에 비춰볼 때, 러시아 공수부대가 이번 평화유지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카자흐스탄에 투입된 러시아 공수부대, 러시아 국방부/로이터/연합뉴스]
[사진=카자흐스탄에 투입된 러시아 공수부대, 러시아 국방부/로이터/연합뉴스]

AFP통신은 CSTO에 대해 "러시아군이 주도하는 '미니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라면서 "러시아를 뺀다면 별로 남는 게 없다"는 전문가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평화유지군의 지휘권이 러시아 공수부대 사령관에게 맡겨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일과 7일 연이어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하고 시위 사태 대응에 대해 논의했다고 크렘린궁이 밝혔다. 추가로 푸틴 대통령이 벨라루스, 타지키스탄, 아르메니아 등의 정상들과도 카자흐스탄 사태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카자흐스탄 역사상 최악의 반정부시위로 기록될 이번 사태는 정부의 액화석유가스(LPG) 시장 자유화 정책의 실패로 LPG 가격이 150% 폭등한 것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1991년부터 약 30년간 지속된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의 독재에 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지난 2019년 퇴임했지만 그의 세력으로 분류되는 토카예프 대통령이 집권하며 사실상 독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시위는 한편으로는 민주화 시위의 성격을 띠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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