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반도에 거주하던 크림 타타르인, 20세기 러시아에 의해 강제 이주 당해
크림 위기에서는 우크라이나와 함께 러시아에 맞서 싸워
키이우 부시장, "크림 타타르족의 고통에 어느 때보다 공감하고 있어"

사진 = 주 사우디 우크라이나 대사관의 모습. 조기를 게양한 모습이 눈에 띈다 / 주 사우디 우크라이나 대사관
사진 = 주 사우디 우크라이나 대사관의 모습. 조기를 게양한 모습이 눈에 띈다 / 주 사우디 우크라이나 대사관

[월드투데이 우현빈 기자]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서 18일 하루 간 조기가 게양된다.

키이우 시청은 17일 저녁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18일 하루 간 크림 타타르족 대학살 희생자들을 추념하는 의미에서 조기를 게양할 것이라고 밝혔다.

크림 타타르족은 크림반도에서 살아가던 튀르크계 민족으로, 먼 과거에는 동유럽과 러시아인들을 납치해 이슬람 국가에 팔아넘기는 노예무역을 주 수입원으로 삼기도 했다. 이 당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이 현재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등지였는데, 이로 인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인들은 크림 타타르족을 적대시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크림반도가 러시아 제국의 손에 넘어가면서부터 크림 타타르족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다. 러시아 혁명을 틈타 크림 인민 공화국을 건설해 독립을 시도했지만, 불과 2개월 만에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무너지며 실패하기도 했다.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소련이 건설되자 이들은 다시 소련 러시아의 자치 공화국인 '크림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 공화국'을 건립했다. 그러나 자치 공화국은 2차대전 도중이던 1944년, 나치 독일에 협력했다는 핑계로 스탈린에 의해 크림'주'로 격하당했다.

당시 스탈린은 크림주 격하와 함께 크림반도에서 크림 타타르인을 포함한 타타르인을 내쫓을 것을 명령했고, 당시 크림반도에 거주하던 18만여 명의 크림 타타르인 모두가 하루아침에 뿔뿔이 흩어져 강제 이주를 당했다. 러시아의 강제 이주를 다룬 마이클 류킨의 저서 'Moscow's Lost Empire'에 의하면 당시 강제 이주 과정에서만 8천여 명이 사망했으며, 강제 이주 이후 5년 간 공식 집계로만 4만 2천 명, 크림 타타르족 자체 통계로는 최대 8만 8천여 명이 사망했다.

크림반도는 스탈린 사망 이후 새로 집권한 니키타에 의해 1954년 우크라이나로 넘어갔다. 당시 니키타는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을 비판하고 각 민족이 귀환하도록 대부분 허용했지만, 크림 타타르인들은 귀환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들은 소련 붕괴 직전인 1989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입법 대행 기관이었던 크림 최고위원회에서 추방이 범죄이며, 그 결정이 무효라고 선언하고서야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크림 타타르인들의 귀향 이후에도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들을 탐탁잖게 여겼다. 그러나 두 민족 간 통혼이 자주 이루어지면서 크림 타타르인들의 외모가 우크라이나인들과 비슷해지기 시작했고, 지난 2014년 크림 위기 때도 크림 타타르인들은 우크라이나 편에 서서 러시아와 맞서 싸웠다. 우크라이나인들의 미움 섞인 시선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결국 8년 전인 2015년 12월, 우크라이나 의회는 마침내 크림 타타르족의 강제 이주가 '학살(genocide)'이었다고 인정했다.

지금의 우크라이나에서 크림 타타르인들은 러시아에 대한 저항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특히 러시아에 의해 전 국토가 점령당할 뻔했고, 지금도 영토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은 크림 타타르인들과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누고 있다.

사진 = 키이우 부시장 네포프 뱌체슬라프 이바노비치 / 키이우 시청
사진 = 키이우 부시장 네포프 뱌체슬라프 이바노비치 / 키이우 시청

키이우의 네포프 뱌체슬라프 부시장은 "우리는 지금 우리 땅의 침입자들에게 억압받던 크림 타타르족의 아픔을 그 어느 때보다 더 공감하고 있다"라며, "이 도시(키이우)는 그 연대의 표시로 크림 타타르족 집단학살 희생자 추념일을 맞아 조기를 게양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영토의 지배뿐 아니라 크림 타타르족과 같은 강제 이주를 당할 위기에도 처해 있다. 지난 17일, 러시아 국가 두마(하원 의회)에서는 계엄령 개정안이 채택됐다. 이 개정안에는 계엄령 선포 지역의 주민을 그 외의 지역으로 강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4월 말에는 푸틴이 내년 7월 1일까지 러시아 여권을 받지 않은 사람들을 국외로 추방하는 법에 서명하기도 했다. 이로써 러시아 점령지에 남아있는 우크라이나 주민들은 연이은 강제 이주의 위기에 처하게 됐다.

사진 = 모스크바 출신의 이스라엘 역사가 레오니드 프라이스만 / Al Silonov / wikimedia
사진 = 모스크바 출신의 이스라엘 역사가 레오니드 프라이스만 / Al Silonov / wikimedia

변호사, 역사학자 등 전문가들은 이 같은 러시아의 결정이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며, 독재자들이 즐겨 하는 악습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모스크바 출신의 이스라엘 역사학자 레오니드 프라이스만은 "러시아가 스탈린과 나치 독일을 뛰어넘고 싶어하는 것 같다"라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아이들에게 하는 짓은 나치가 했던 짓과 같다. 나치 독일은 독일인을 닮은 폴란드 아이들을 골라 독일 가정으로 보낸 바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러시아 내부로 불법 이주시킨 혐의로 푸틴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다만 러시아는 ICC 회원국이 아니어서, 실제로 푸틴을 ICC 법정에 세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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