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율 60% 아이티, 국정 혼란과 자연재해로 이중고
모이즈 대통령 부정 선거, 임기 기간, 독재 논란 정리 및 퇴진 요구 시위
[월드투데이 전유진 기자] 지난 7일, 아이티의 대통령인 조브넬 모이즈(Jovenel moíse)가 괴한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지구 반대편에서 전해졌다. 이에 아이티 최근 정세부터 암살 사건 당시, 직후, 현재까지 파헤쳐보자.

아이티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각인된 계기는 대형 자연재해 때문이었다. 2010년 대지진에 이어서, 2016년 허리케인 메슈로 아이티는 황폐화되었다.시간이 흐르며, 아이티의 자연재해 피해는 세계사람들에게 잊혔지만 아이티는 여전히 그 여파에 허덕이고 있었다. 더불어 극심한 정국 혼란, 치안 악화도 겹치며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대통령 암살 사건까지 벌어지며 아이티가 더욱 극심한 혼돈으로 빠져들 것이 우려되는 상황. 아이티에 대한 소개부터 최근 국정까지 정리해보며 암살 사건의 배경을 살펴보았다.
◆ 아이티, 빈곤율 60%의 나라
인구 1천100만 명의 아이티는 빈곤율이 60%에 달하는 극빈국으로 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불린다.
카브리해 히스파니 올라섬을 도미니카공화국과 공유하고 있으며 인구의 95%가량이 아프리카계이며 프랑스어와 아이티 크레올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아이티는 늘 '혼돈', ‘빈곤’, ‘재난’ 등의 단어가 자주 따라다녔다. 빈곤한 탓에 기반도 열악하여 자연재해에 특히 취약하다. 2010년 규모 7.0의 대지진으로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던 것은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매년 허리케인도 찾아온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도래 이후 빈곤층도 더 늘었다.
![아이티 국기[사진=Wikimedia]](https://cdn.iworldtoday.com/news/photo/202107/403519_205478_5553.jpg)
◆ 불안했던 아이티의 민주주의
아이티는 스페인과 프랑스에 차례로 식민지배를 당했다. 독립 이후에는 오랜 독재를 경험했다. 프랑수아 뒤발리에와 장 클로드 뒤발리에 부자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독재 정치를 하며 국민들을 탄압했고 많은 국민들은 아이티를 탈출했다.
1990년, 처음으로 민주 선거에 성공하여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선출됐으나 바로 다음 해 쿠데타가 일어나 대통령직을 내려놨다.
혼란스러운 정국에 자연스레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
이번 암살된 모이즈 대통령 역시 혼란을 진압하지 못했고, 오히려 혼란을 자주 몰고 다녔다.
◆ 모이즈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까지
모이즈 대통령의 별명은 '바나나맨'이었다. 다소 조롱하는 뜻이 담겨있으나 그가 바나나 수출업과 자동차 부품사업 출신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업가로서 지역 상공회의소 회장으로도 활동하던 그는, 사실 2015년 전에만 해도 중앙정치권에서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모이즈는 그의 전임자인 미셸 마텔리 대통령이 2015년 차기 대선 후보로 그를 지명한 계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사업가였던 그는 2017년 2월 대통령으로 취임하는데 그 전후로 많은 논란이 있었다. 2017년 취임 이전, 2015년에 대선이 치러졌고 그는 1차 투표에서 33%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하며 결선에 진출했다. 그러나 출구 조사 득표율은 33%가 아닌 6%에 그쳤다는 것이 알려지며 부정 선거 의혹이 일었다. 거센 반발 속 1차 투표가 무효 됐고 선거는 2016년으로 미뤄졌다. 미뤄진 1년 동안에도 여러 혼란이 있었지만 결국 2016년 11월 대선이 진행됐으며 모이즈는 55%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그는 2017년 2월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연설 중인 모이즈 대통령 [사진=EPA, 연합뉴스]](https://cdn.iworldtoday.com/news/photo/202107/403519_205479_5814.jpg)
◆ 대통령 퇴진 요구 반정부 시위
모이즈 대통령은 취임 당시 빈곤에 허덕이는 국민의 삶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물가 인상과 연료난 등, 국민 생계는 더욱 어려워졌고 각종 부패 스캔들까지 이어졌다. 결국 국민들은 2018년부터 모이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시작했다. 시위가 격렬해지며 여러 명의 사상자도 나왔다.
재임기간 내내 퇴진 시위는 이어졌다. 그만큼 사회 혼란이 가시지 않았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 독재 논란과 임기 기간 논란
모이즈 대통령은 독재 논란과 사임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2018년에 의회선거가 치러지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대통령을 견제할 의회 없이 그는 혼자 국정을 운영했다. 야권은 '독재'라고 반발했다.
지난 2월, 야권과의 갈등이 더욱 깊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의 임기 기간을 두고 논란이 발생한 것이다. 야권은 모이즈 대통령의 임기가 전임자 퇴임 직후를 기준으로 계산되어야 한다고 했다. 즉 2016년 2월부터 5년 임기가 시작되어 2021년 2월에 끝난다는 주장이다. 앞서 언급했듯, 2015년의 대선은 무효 되어 2016년 11월에 치러지고, 모이즈 대통령은 2017년 2월에 취임했다. 모이즈 대통령은 2017년 2월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맞섰다.
야권의 퇴진 요구가 거세 지던 2월, 모이즈 대통령은 자신을 암살하려는 시도를 적발했다며 대법관, 야권인사 등을 체포하며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아이티 국민들 [사진=REUTERS, 연합뉴스]](https://cdn.iworldtoday.com/news/photo/202107/403519_205480_5915.jpg)
◆ 오는 9월, 더 극심한 혼란이 예고됐었다
오는 9월에는 혼란이 더 심해질 예정이었다. 모이즈 대통령이 추진 중이던 개헌 국민투표를 비롯한 대선, 총선 등이 한꺼번에 치러 지기 때문이다. 코로나 등으로 미뤄진 탓에 전부 9월에 진행될 계획이었다. 반정부 시위, 퇴임 논란, 또 개헌까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새로운 논란 및 의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컸다.
한편, 모이즈 대통령은 야당의 거센 반발에도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개헌을 추진중이었다.
◆ 혁명가? 개혁가? 상반된 그의 평가
모이즈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상반적이다. 과도한 권력을 추구한 독재자라는 평가와 최빈국 아이티에서 진정한 변화를 열망한 개혁가라는 평가가 존재한다.
실제로 그는 취임 후 의욕적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그만큼 갈등도 잦았다. 아이티 인프라 건설사업 등을 놓고 야당, 기존 권력 엘리트층과 끈임없이 갈등했고 저항하는 야당인사들을 탄압하려고 정치깡패를 동원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끊이지 않는 혼란에 시민들의 퇴진 시위가 이어지기도 했다.
반대로 그를 개혁가라고 평가하는 이들은 모이즈가 아이티의 각종 정부 계약을 독점적으로 향유하던 파워 엘리트층을 해체하려 한 개혁가라고 평가한다. 모이즈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그가 기득권 엘리트들의 이익에 복무한 구조를 깨려고 시도한 점을 인정한다고 전해졌다.
![모이즈 대통령 퇴진 요구 시위 [사진=AP,연합뉴스]](https://cdn.iworldtoday.com/news/photo/202107/403519_205482_149.jpg)
◆ 적이 많았던 모이즈 대통령
개혁가든 독재자든, 그는 정적이 많았다. 과거 모이즈의 정치적 동지였다가 정적이 된 야권 정치인 피에르 레지날드 불로는 모이즈에 대하여 아이티의 변화를 진정 원하는 사람이었다고 평가하면서도 암살 배후 세력에 관한 질문에 모든 사람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만큼 모이즈 대통령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적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즈에 의하면 모이즈는 자신의 죽음도 어느 정도 예견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생전 연설에서 부유층을 표적으로 삼았고, 이가 죽음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악화되는 아이티 치안
안 그래도 좋지 않았던 치안이지만, 정국 혼란 속에 아이티 치안은 더 점차 악화되고 있다. 아이티에선 이전에도 갱단들이 몸값을 노리고 저지르는 납치 범죄 등이 극성을 부렸는데, 최근 1∼2년 새 이 같은 범죄가 급증했다. 올해 1분기 아이티에서 일어난 납치 범죄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0%나 늘었다. 피해자가 당국에 알리지 않고 납치범들과 협상하는 경우도 많아 실제 납치 건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혼란과 위기가 중첩된 상황 속 대통령 암살 사건까지 벌어지며 아이티가 더욱 극심한 혼돈 속에 빠져들 것으로 우려된다. 국경을 맞댄 이웃 도미니카공화국도 모이즈 대통령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직후 곧바로 국경 폐쇄를 명령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