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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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투데이 전유진 기자] ‘다양성 속 통합’의 가치를 내세우며 초국가 공동체 형성의 길을 걷고 있는 EU. EU는 공동시장 형성을 넘어 경제 동맹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 EU는 유로존 위기를 겪으며 회의론의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위기론은 ‘브렉시트(Brexit)’로 심화된다. 이에 브렉시트의 배경 및 과정을 소개해본다.


◆ 브렉시트, 4%p로 결정된 그 이후?

영국(Britain)과 탈퇴(Exit)의 합성어인 브렉시트는 영국 내 뿌리 깊은 반 유럽연합 정서와 함께 독립당, 보수당의 의제로 떠오르며 불을 지폈다. 캐머런 총리는 EU 회원국과의 합의안까지 만든 후 브렉시트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승부수를 2016년 6월 24일 띄웠지만 단 4%p차이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됐다.

EU는 브렉시트를 저지하는 입장을 보이다 탈퇴가 결정되자 입장을 바꿔 빠른 탈퇴를 요구했다. 캐머런 총리는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국은 혼란에 휩싸였다. 불안한 정국을 헤쳐나갈 수장의 존재가 없고, 파운드화 폭락 등의 악재에 휩싸였다


브렉시트 반대 시위 중인 모습 [사진=unsplash]
브렉시트 반대 시위 중인 모습 [사진=unsplash]

◆ 리그렛시트, 브렉시트 후회하는 이들의 등장

영국은 오히려 국민투표 후 탈퇴가 결정되자 그제서야 후회하는 움직임이 등장했다.

브렉시트 결정 후 파운드화 가치 급추락과 전 세계 증권시장 지수가 폭락하는 걸 보고 잔류를 지지하던 영국인들 사이에서 재투표 청원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나온 지 2일 뒤인 6월 26일 트라팔가 광장에 잔류측 지지자들이 모여 웨스트민스터 국회의사당 앞에서 행진을 진행했다.

브렉시트를 찬성한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와 더불어 정치인들이 브렉시트에 대한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자 사람들이 분노하고, EU 잔류측 시민들이 국회에서 무시당하면서 그 분노는 더 격해졌다.

2016년 7월 2일 런던 시내에서 열린 EU를 위한 행진(March for Europe)에 수만 명의 런던 시민들이 참여해 거리 행진을 벌였다.


[사진=Theresa May 총리의 페이스북]
[사진=Theresa May 총리의 페이스북]

◆ 메이 총리의 등장부터 퇴장까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사퇴함에 따라 여당인 보수당의 새 대표를 뽑는 경선이 시작됐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영국이 심각한 분열에 빠졌고, 캐머런 총리가 투표 패배의 책임을 지고 자리를 내놓은 만큼, 새 총리는 안에서는 갈라진 나라를 통합하고 밖에서는 EU와 탈퇴 협상을 진행할 막중한 책무를 지게 됐다.

2016년 7월 13일, 보수당 당수 겸 총리로 테레사 메리 메이 총리가 취임한다. 캐머런 총리가 물러난 지 20일 만이었다. 당시 브렉시트를 차질 없이 수행하고 유럽 연합의 탈퇴 협상에 적격인 인물로 평가받았다.

취임부터 2017년 초반기까지는 국정 운영에 호평을 받았으나 런던 그렌펠 타워 화재사고 대응 문제, 조기 총선에서의 실패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2019년 1월 15일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하여 실시한 승인 투표가 찬성 202표, 반대 432표를 받으며 영국 현대 정치 사상 최다 표차로 부결되며, 큰 위협을 받게 되었다.

결국 메이 총리는 6월 7일부로 당대표 사퇴 의사를 밝혔고, 이로써 브렉시트로 인해 두명의 총리가 사퇴하게 된다. 브렉시트는 총리 무덤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메이 총리가 뒷수습에 전념했음에도, 일이 점점 더 꼬여갔다. 이에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붙어있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바다 건너의 영국 [사진=구글지도]
붙어있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바다 건너의 영국 [사진=구글지도]

◆ 북 아일랜드-아일랜드 공화국의 성 금요일 협정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EU 회원국의 사람과 물건이 영국의 국경을 자유롭게 오갈 수 없다. 이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바로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 아일랜드의 국경 문제 때문이다.

아일랜드 공화국이 국가로 독립하면서 북쪽의 일부는 영국 영토로 남겨두었다. 그러나 이에 불만을 갖는 북아일랜드 사람들이 있었고, 갈등이 30년 넘게 지속됐다. 유혈사태까지 번지며 심화된 갈등은 1988년 극적으로 화해하고 협정을 맺는데, 이 협정을 ‘성 금요일 협정’이라고 한다.

해당 협정의 내용은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 사이에 사람과 물건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국경을 없앴다.

그러나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EU 회원국인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 아일랜드 간의 국경이 없는 셈이라, 영국이 부당하게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유럽연합의 지적이 있었다.


◆ 영국의 위자료 제공

다른 문제는 영국의 위자료 지불이다. 다른 말로는 합의금, 분담금 문제로도 불린다.

영국이 EU에 약속했던 여러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탈퇴하는 데에 관한 일종의 위자료이다. 또한 EU를 운영하기 위해 영국이 내던 분담금까지 추가로 내야하는 EU 회원국들의 불만 역시 만만치 않다.

EU집행위는 2019년 성명을 내고 영국이 EU회원국으로서 재정적 의무를 이행할 것임을 보장해야 한다며, 무역협정에 대한 협상을 시작하기 전 전제조건으로 재정적 의무 이행을 강조했다. 이는 EU회원국 시절에 약속한 재정 기여금을 지불하라는 것이다.

만일 영국이 합의금을 지불하지 않을 경우, EU는 그동안 계획해 놓았던 사업의 축소와 책정했던 예산에 대한 삭감이 불가피하다.


◆ 영국 거주 EU 시민의 권리 침해

이미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EU 시민들의 권리도 해결과제로 떠올랐다. 반대로 EU에 거주하고 있는 영국시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거주하고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자들이 이번 브렉시트로 인하여 비자 등 여러가지 문제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메이 총리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을까?


메이 총리의 연이은 실패를  풍자하는 잡지 ㅓ버[사진=unsplash]
메이 총리의 연이은 실패를  풍자하는 잡지 ㅓ버[사진=unsplash]

◆ 2018년 11월 탈퇴 합의안 발표

2018년 11월 15일 테레사 메이 총리는 유럽연합과 마련한 합의안 초안을 발표했다. 앞서 문제로 지목된 유럽에 거주하는 영국 시민들의 권리, 관세 동맹 잔류,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의 국경선 문제 등을 핵심적으로 다루었다.

합의안 내용은 분담금 390억 파운드 지불, 유럽연합의 관세 동맹 당분간 잔류, 북아일랜드의 국경 상태 유지, 유럽 연합 내 영국 시민들 및 영국 내 유럽연합 시민들에게는 영국의 탈퇴 이후에도 현재 지위 유지 등을 포함했다.


◆ 2019년 1월 15일 탈퇴 합의안 부결

그러나 해당 합의안은 준비기간 2년이 무색하게 의회에서 부결된다. 이 일로 메이 총리는 정치적 생명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현대 영국 정치 역사 상 가장 높은 표차로 합의안이 부결됐다.

브렉시트 찬성파는 소프트 브렉시트에 가까운 메이 총리의 합의안을 반대했고, 마찬가지로 브렉시트 반대파는 브렉시트 자체를 반대하기에 반대해서 지지를 얻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상황은 긴박했다. 3월 29일까지 브렉시트 합의를 완료해야 하고 EU는 당시 재협상이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5일 안에 메이 총리가 대안을 내야했다.


◆ 2019년 3월 12일 탈퇴 합의안  2차 부결

마지막 남은 선택지로 메이 총리는 3월 12일 브렉시트 제2승인투표를 개최하고, 이가 무산되면 13일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 딜 브렉시트 여부를 묻는 하원 투표 실시, 마찬가지로 이가 부결되면 마지막으로 14일에 브렉시트 연기 여부를 표결하겠다고 밝혔다.

브렉시트 합의안도 부결됐고, 노딜 브렉시트도 반대가 많아서 결국 메이 총리는 EU에게 합의기한 연장을 요구했다. 이에 1개월 더 연장하기로 결정됐고 추가 합의에서 2019년 10월 31일까지로 연기됐다.

메이 총리는 거듭되는 합의안 부결로 인해 6월 7일자로 사퇴한다.

메이총리를 반대하는 시위 [사진=unsplash]
메이총리를 반대하는 시위 [사진=unsplash]

◆ 노딜 브렉시트의 위험

노 딜 브렉시트는 아무것도 합의하지 않고(No deal) EU에서 탈퇴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 딜 브렉시트는 성 금요일 협정을 어기게 되는 것은 물론, 의료품·생필품 등 가격이 매우 올라 사회적 혼란이 우려됐다.


◆ 논쟁의 중심 ‘백스톱’

백스톱은 일종의 안정장치로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혼란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만약 브렉시트가 이뤄지게 되면 그동안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했던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두 지역의 국경지대에서 통행·통관이 엄격히 통제되게 되는, 이른바 '하드보더(hard border)'가 이뤄지게 된다. 이에 성 금요일 협정을 지키면서 두 사이에 하드보더(hard-border)가 세워지는 것을 방지하는 조치로 백스톱을 마련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브렉시트 전환기간인 2020년 말까지 북아일랜드를 비롯한 영국 전체가 EU 관세 동맹에 잔류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북아일랜드만 EU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영국 본토도 함께 관세동맹에 남기로 했다. 즉, 영국이 EU를 탈퇴하더라도 경제나 무역 측면에서는 여전히 EU 일원으로 남아있도록 했다.

이는 2018년 11월에 마무리된 브렉시트 합의안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되며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즉각적인 EU 탈퇴를 요구하는 브렉시트 강경파 의원들은 최악의 경우 2020년이 지나 영국 본토만 EU에서 탈퇴하고 북아일랜드만 공동시장에 남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한 것이다.

백스톱 조항 문제는 메이 총리 당시에는 해결되지 못하고, 보리슨 총리까지 논쟁이 연기된다.

한편, 메이 총리 탈퇴 이후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파 보리슨 총리가 취임했다. 그의 취임 이후 브렉시트 논의 과정은 후속 기사에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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