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거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월드투데이 이예찬 기자] 최초의 한국인 프리미어 리거이자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끌었던 박지성은 축구팬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한국 축구계에서 입지가 높다.

박지성은 명지대학교 1학년 재학 중에 일본 프로 축구팀 '교토 퍼플 상가'에 입단하여 일본 1, 2부 리그에서 활약했다.

이후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발탁되어 지난 2003년 네덜란드 프로 축구팀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했다. 네덜란드로 이적하고 초창기에는 리그에 적응하지 못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팀과 네덜란드 리그에 적응한 뒤 팀의 리그 우승과 2004-05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달성에 기여하였다. 

[사진=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 홈페이지]
[사진=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 홈페이지]

2004-05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의 맹활약 덕분에 박지성은 유럽의 여러 명문 클럽들로부터 이적 제의를 받게 된다. 첼시 FC, 리버풀 FC, FC 바르셀로나 등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게 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 박지성은 최초의 한국인 프리미어 리거가 되었다. 이후 이영표, 설기현 등이 프리미어 리그로 이적하면서 한국에서도 프리미어 리그 중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최고의 명문 클럽 팀이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도 박지성은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프리미어 리그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FIFA 클럽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다.

박지성은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이자 최다 프리미어 리그 우승(2006-07, 2007-08, 2008-09, 2010-11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선발 출전(2008-09, 2010-11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2007-08시즌)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는 늘 팀 내 최상위권의 활동량을 보여주었다. 풀타임 경기를 기준으로 대부분의 경기에서 팀 내 1~2번째 활동량을 꾸준하게 기록하곤 했다. 

한 경기에서 많이 뛰었다는 활동량의 기준을 10km 정도로 잡는데 박지성의 경우 활동량이 낮은 경기가 10km 정도였고 평균 11km~13km를 뛰곤 했다. 그가 왜 '두 개의 심장' 또는 '세 개의 폐'로 불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지성은 국가대표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다. 지난 2000년 4월 5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한 뒤 한동안 주전과 비주전을 오갔지만 히딩크 감독 아래서 활약하며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고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유럽의 강호 프랑스를 상대로 후반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며 대한민국 월드컵 역대 최초 원정 첫승이라는 기록을 새로 썼다.

또한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출전하면서 대한민국 월드컵 역대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끌었다.

지난 2008년 10월부터 2011년 1월까지 2년 3개월 동안 대표팀 주장을 맡았으나 고질적인 무릎 부상 때문에 A매치 100번째 경기에 출장한 직후 만 29세의 이른 나이에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7시즌을 소화해낸 박지성은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에 이적 후 PSV 에인트호번에 임대 후 2014년 5월 14일 결국 무릎 부상이 심해져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2014년 5월 24일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경남 FC와 PSV 에인트호번과의 친선전이 박지성의 마지막 프로선수로서의 경기가 되었다. 이로써 박지성은 1991년 세류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한 24년 동안의 축구 인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박지성은 은퇴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앰버서더로 활동하게 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앰버서더는 구단의 이벤트에 참여하는 홍보대사와 비슷한 직책이다. 박지성은 아시아 전역에 걸쳐 맨유의 스폰서 기업의 마케팅 이벤트에 참여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이후 현재 활동하는 전북 현대 모터스 공식 어드바이저로 임명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앰버서더 직책을 그만두었다.

[사진=전북 현대 모터스 구단 홈페이지]
[사진=전북 현대 모터스 구단 홈페이지]

박지성은 은퇴하기 전부터 축구 행정가가 되고 싶다고 말해왔고 은퇴 이후에도 축구 행정가가 되기 위해 배우고 있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결국 지난 2021년 1월 18일 K리그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축구 행정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공식 직책은 '어드바이저'로 구단의 팀 컬러를 만들고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관리하는 등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선수단 운영, 스태프 및 훈련 등에 대한 아이디어 제공 등의 임무를 맡는다고 알려져 있다.

박지성은 자선경기나 TV 방송, 유튜브 등에 출연하며 근황을 밝히고 있다. 무릎팍도사에 나온 박지성의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원래 이름은 박지선이었는데 출생신고를 받은 면사무소 직원이 실수로 박지성으로 잘못 알아들어 그냥 바꾸지 않고 현재까지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SBS 아나운서인 김민지와 결혼해 장녀와 둘째 아들을 가져 두 남매의 아버지이고 현재는 축구 행정가로 활동하는 박지성의 앞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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