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홍콩 법원에서 자국 판사 '영구 철수'…"홍콩 정부가 자유 탄압해"
미·영 '홍콩 민주주의 악화 보고서' 발표…홍콩국가보안법 비판
중국·홍콩 정부 "홍콩 법치 굳건…내정 간섭 중단하라"
[월드투데이 안신희 기자] 홍콩의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영국, 홍콩 법원에서 자국 판사 '영구 철수' 발표
![홍콩 종심 법원 [사진=AFP/연합뉴스]](https://cdn.iworldtoday.com/news/photo/202204/408145_216971_1839.jpg)
영국 정부는 지난달 30일 홍콩국가보안법을 문제 삼아, 로버트 리드 대법원장을 비롯해 영국 대법원 판사 2명이 홍콩의 대법원 격인 종심 법원에서 맡아왔던 비상임 판사직을 즉각 그만두기로 했으며 향후 홍콩 종심 법원에 속한 자국 법관들 또한 영구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보안법 시행 후 홍콩 정부가 언론·출판·결사의 자유를 탄압해왔으며, 홍콩에서 자유와 민주의 조직적 약화를 목격해왔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영국 법관들이 홍콩에서 더이상 직을 유지할 수 없으며, 유지할 경우 압제를 정당화할 위험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로버트 리드 대법원장도 영국 대법원 판사들이 정치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어기는 홍콩 행정부를 지지하지 않고서는 홍콩에서 직을 계속 수행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3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홍콩 법원에 영연방 출신 외국인 판사를 임용하는 것은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훨씬 전인 1980년대부터 논의되어왔으며, 이는 홍콩에 법관 자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홍콩 성시대 법학자 린펑은 설명했다. 영국은 1984년 중국과 체결한 중영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에서 홍콩에 현직 법관을 파견하는 내용을 포함했고, 1997년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면서 현직 법관을 홍콩 종심 법원에 파견해왔다.
![[사진=AFP/연합뉴스]](https://cdn.iworldtoday.com/news/photo/202204/408145_216975_4636.jpg)
지난 2020년 9월에는 호주 출신 제임스 스피겔맨 판사가 2년의 임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사임한 바 있다. 사임 이후 그는 호주 언론을 통해 자신의 사임이 홍콩국가보안법과 관련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6월에는 영국 출신 바로네스 브렌다 헤일 판사가 한 달 앞둔 재임용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영국에서 진행된 온라인 포럼에서 국가보안법을 언급한 바 있다.
국가보안법과 선거제도 개편 등으로 '홍콩의 중국화'가 가속화된 상황에서, 홍콩 야권은 홍콩의 법치가 무너졌다고 비판해온 바 있다. 이에 홍콩 정부는 일국양제 아래 홍콩의 사법 독립은 지켜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대표적 근거로 종심법원에 외국인 판사들이 대거 포진해있다는 점을 내세워왔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번 영국의 철수가 향후 홍콩의 사법 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건이다.
홍콩국가보안법이란?
홍콩국가보안법은 2019년 홍콩에서 벌어졌던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직접 만들어 2020년 6월 30일 시행한 법이다. 이 법은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 야권과 시민사회의 대표 인사들이 줄줄이 체포되거나 기소되었고, 빈과일보를 비롯해 대표적인 민주 진영 매체들이 폐간됐으며 많은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이 자진 해산했다. 또 지난해 12월에 치러진 입법회 선거는 야당의 보이콧으로 인해 친중 진영만의 선거가 되었다. 올해 초 홍콩 당국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60여명이 체포되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영국 정부는 법관 철수를 발표하면서 빈과일보의 사주 지미 라이를 비롯해 47명의 야권 지도자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실도 지적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https://cdn.iworldtoday.com/news/photo/202204/408145_216970_1238.jpg)
또한 지난달 30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보도에 따르면, 홍콩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지난해 캐나다로 이주한 홍콩인의 규모가 24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캐나다 이민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인 3천444명이 캐나다 영주권을 얻었다.
홍콩의 이민 전문 변호사 장 프랑코 하비는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몇 달 간 홍콩에 살고 있던 캐나다 시민권자들로부터, 캐나다로 돌아갈 경우의 세금 문제에 대한 홍콩인들의 문의가 폭주했다고 밝혔다. 캐나다 이민 지원 비영리 단체 석세스 역시 최근 홍콩 고객의 대부분은 현지의 정치적 격변에 불만을 품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영국, 홍콩 민주주의 악화 보고서 발표
![[사진=AFP/연합뉴스]](https://cdn.iworldtoday.com/news/photo/202204/408145_216972_3853.jpg)
법관 철수 발표 다음 날인 지난달 31일, 영국 정부는 홍콩의 정치적·법적 시스템이 약화되고 있다는 반기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홍콩의 상황을 평가한 해당 보고서에서, 홍콩국가보안법은 홍콩기본법(미니 헌법)과 1984년 중·영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을 위반했을 뿐 아니라 사법부에 중국 정부의 법과 가치를 집행하도록 요구한다고 비판했다.
트러스 장관은 홍콩국가보안법이 영국의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다며, 해당 법으로 인해 홍콩 시민사회가 체포와 투옥의 두려움 속에 파괴되었으며 홍콩에는 독립 언론이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홍콩에서 법관을 철수하기로 한 결정으로 자유와 민주주의의 원칙을 수호한다고 전했다. 또한 홍콩의 선거제 개편으로 인해 의회에서 유의미한 야권이 제거됐고, 홍콩의 정치적 기구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었다고 비판했다.
![홍콩종심법원 [사진=EPA/연합뉴스]](https://cdn.iworldtoday.com/news/photo/202204/408145_216973_437.jpg)
같은 날 미국 국무부도 '홍콩정책법'에 따라 발간한 연례보고서에서 지난 1년간 중국 정부는 홍콩의 민주적인 단체를 해체하고 사법부에 전례 없는 압력을 가했으며 학자와 문화적 자유, 표현의 자유를 옥죄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올해 홍콩반환 25주년이 다가오면서 홍콩의 자유는 약해지고 중국 정부의 통제는 강화되고 있다며 중국 정부의 계속되는 탄압으로 홍콩과 중국 본토 도시 간 차이가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국무부는 보고서에서 지난 1년간 빈과일보와 톈안먼 민주화시위 추모 기념관 등이 폐쇄되고 인권이 침해된 사례들을 열거했다. 중국 정부가 홍콩선거제를 개편하여 선거 결과를 좌지우지하려 했다고 비판하며, 이러한 정책들이 글로벌 기업과 금융계를 포함해 홍콩 사회의 모든 면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지난 1년간 엄격한 코로나19 방역 정책과 '다른 이유'들로 미국 시민 약 1만5천명이 홍콩을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국무부는 홍콩당국이 평화로운 정치적 표현을 범죄화하며 홍콩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십 명을 체포하여 재판도 없이 장기간 구금하고 있다면서 홍콩의 사법 독립과 법치 수호 역량을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미국은 더 이상 홍콩에 중국 본토와 구별되는 특별한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국·홍콩 정부, "내정 간섭 중단하라" 성명 발표
미국과 영국의 발표에 대해 중국과 홍콩 정부는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영국 주재 중국대사관은 영국의 자국 판사 영구 철수 발표에 대해, 정치적 농간을 부리며 홍콩 사무와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대사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홍콩국가보안법이 실시된 후 홍콩 사회가 다시 안정되고 법치와 정의가 신장됐으며 수많은 홍콩 민중의 각종 권리와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변인은 중국은 일국양제 방침을 관철하고 홍콩의 번영과 안정을 수호하려는 결심이 확고하다고 밝혔다. 이어 홍콩의 사무는 중국 내정에 속하고, 중국이 홍콩을 다스리는 근거는 중국 헌법과 홍콩 기본법이라고 강조하며 홍콩을 어지럽히고 중국 내정에 간섭하는 일을 중지하라고 주장했다. 또한 중국 외교부 홍콩주재사무소는 (영국 법관들의 사임이) 홍콩의 법치를 교란하려는 악의적인 의도라고 밝혔다.
![홍콩 지하철역의 모습 [사진=AFP/연합뉴스]](https://cdn.iworldtoday.com/news/photo/202204/408145_216974_4444.jpg)
캐리 람 홍콩행정장관은 법관들의 사임이 홍콩국가보안법 도입이나 언론의 자유, 정치적 자유와 관련됐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전했다. 홍콩정부는 영국 법관들의 사임은 외부에서 정치적 압력이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라며 그런 일은 홍콩에서 절대 용인되지 않으며 홍콩의 법치는 굳건하다고 주장했다. 홍콩대율사공회와 홍콩율사회 등 두 변호사 협회도 각각 성명을 통해 영국 법관들에게 사임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자오리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일 정례브리핑에서 헌법과 기본법에 따라 엄격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일국양제 방침을 전면적이고 정확하게 관철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결심은 확고부도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홍콩 정부도 미국과 영국 정부의 보고서가 근거 없고 얼토당토 않은 주장이라며 내정 개입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