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의 어린시절
남북 전쟁의 배경

[월드투데이 이하경 기자]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언급되는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북전쟁 중이던 미국을 하나의 미국으로 통일했으며, 임기 중 노예제의 폐지를 이끌어낸 인물이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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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의 생애

에이브러햄 링컨은 1809년 2월 12일 목수 일을 하며 생계를 이끌어가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링컨의 아버지는 켄터키 주에서 15번째 가는 부농으로 넉넉한 집안 형편이었지만, 링컨이 태어난 후 얼마 지나지않아 3번의 파산을 경험한 후 인디애나 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재혼 후 식구가 늘며 가정 형편은 점점 안 좋아졌고, 어린 링컨에게도 공부보다 농사와 노동의 일을 강요하는 등 마치 노예처럼 아들을 부렸다고 한다.

링컨의 친어머니 '낸시 링컨'은 링컨이 8살일 때 독초를 먹은 소의 우유를 먹고 걸리는 '밀크병'에 걸려 죽었다. 아버지의 재혼으로 새 어머니인 '사라 부시 링컨'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책을 좋아하는 링컨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지원했으며, 배움에 대한 그의 열정을 응원해 주었다.

성인이 된 이후 독립해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한 링컨은 우체국장, 뱃사공, 측량기사, 프로레슬러, 가게 점원 등 여러 직업들을 전전하다 사업을 실패하고 다음해 치른 1832년 일리노이 주 의원 선거에서도 13명 중 8위로 낙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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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끝에 변호사가 된 링컨은 1834년 일리노이 주 의원 선거에 다시 출마해 당선, 정치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후 일리노이 주 의원 의장 낙선, 1840년 대통령 선거인단 낙선, 1844년 연방하원 의원 공천에 탈락하는 등 고배를 마신다.

1846년 37세의 늦은 나이로 간신히 하원의원에 당선된다. 이후 연방상원의원, 부통령 후보 경선 낙선, 상원의원 선거 낙선 등 7번의 낙선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 시간동안 링컨은 노예제도에 대해 완강한 반대 의견을 밝히며 노예제를 반대하는 대표 정치인으로 우뚝 서게된다. 

1860년 말 흑인 노예제문제가 첨예한 갈등을 빚는 시기 치뤄진 대선에서 링컨은 드디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당시 여당인 민주당이 북부 민주당(스티븐 더글라스)과 남부 민주당(존C. 브레킨리지)으로 쪼개지며 링컨의 당선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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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에 대한 논쟁이 미국 내에서 예민한 주제로 다뤄지며 링컨의 완강한 '노예제 반대' 입장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도 많았다. 대통령 취임식을위해 워싱턴DC로 향하려던 링컨에 대한 암살 음모가 발각되며,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새벽시간에 조용히 워싱턴DC에 가야 했다.

남북전쟁의 발발

링컨 취임 후 1달만에 남북 전쟁이 발발하는데 분열의 남북 분열의 가장 큰 이유는 '노예제도' 때문이었다. 당시 남부는 노예제도를 찬성하는 입장이었기에 노예제를 강경하게 반대하던 정치인이 대통령이 된 것에 대해 반발했고, 링컨 당선 직후 연방 탈퇴를 선언한다. 

사우스캘롤라이나가 1860년에 맨 처음 탈퇴를 선언하더니 그 다음 해가 되자 미시시피, 플로리다, 앨라배마, 조지아, 루이지애나, 텍사스, 버지니아 등 8개 주가 줄줄이 연방에서 떨어져 나가 남부연방을 의미하는 Confederacy라는 국가 체제를 수립했다. 

이후 링컨과 경쟁했던 남부 정치인 제퍼슨 데이비스를 아메리카 연합국의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국기도 달리한다. 

링컨이 "어느 주도 미연방에서 탈퇴할 수 없다"고 선언했고, 미국을 통합하기 위해선 전쟁이라는 방법밖에는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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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이 대통령이 된 지 불과 한 달 만인 1861년 4월 12일, 남군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포트섬터라는 북군 요새에 포격을 개시했다. 이는 4년 동안 60만 명의 미국인들이 목숨을 잃는 처절한 전쟁, 남북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공격이었다.

군사병력은 남군이 크게 열세했고, 1863년에는 북군 60만 명, 남군 약 20만 명으로 크게 차이가 난다. 북군이 유리한 국면으로 접어든 1863년 새해 첫날을 기해 링컨 대통령은 노예제 폐지를 선언했다. 연방정부로부터 떨어져 나간 주, 즉 남부 연방 소속 주의 노예를 전면 해방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연방정부 소속 지역의 총 인구 1천850만 명 중에는 노예가 거의 없었지만, 남부 연방 지역에는 노예가 400명이나 있었다. 1864년 전쟁 중 어렵사리 재선에 성공한 링컨은, 1864년 남부의 항복으로 미국을 하나로 통일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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