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페랭, 색소 '등황' 이용해 분자의 존재 발견...최초의 아보가드로 수
아인슈타인의 브라운 운동 이론 근거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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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투데이 권성준 기자]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인류 문명이 멸망하고 단 한 문장만을 전달할 수 있다면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원자론은 대략 기원전 400년부터 제시됐었던 생각이었다. 본격적으로 과학계에서 원자론이 대두된 시기는 18~9세기였다고 알려져 있다. 존 돌턴이 '질량 보존의 법칙', '일정 성분비 법칙' 등을 설명하기 위해서 처음으로 과학적인 원자론을 제시했으며 돌턴의 원자론에 입각해 '아보가드로의 법칙' 등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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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자연에서 대부분의 원자들은 혼자 존재하지 않고 다른 원자들과 결합해 분자를 형성한다. 원자의 존재를 파악하기 위해선 분자를 발견해야 한다.

화학 보다 조금 늦게 물리학에서도 기체의 운동을 기술하기 위해 원자 혹은 분자의 존재가 논의됐었다. 하지만 원자와 분자의 존재성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실제로 물리학에서 분자 모형으로 기체의 운동을 설명했던 루드윅 볼츠만은 다른 과학자들의 맹렬한 비난에 우울증을 얻어 자살했다고 알려져 있다.

[장 페랭. 사진=노벨 재단]
[장 페랭. 사진=노벨 재단]

분자의 존재에 대한 오랜 논쟁을 마무리 지은 과학자의 이름은 장 페랭이다. 그는 이 업적으로 192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전부터 분자의 존재는 거의 확실해 보였다. 대표적인 근거로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브라운 운동이 있다. 브라운 운동은 물 위에 떠있는 꽃가루가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현상이다.

아인슈타인 이전의 과학자들은 브라운 운동이 물의 온도 차이로 일어난 대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꽃가루와 물 분자의 충돌이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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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랭은 아인슈타인의 브라운 운동 이론을 확인하려 했다. 그는 산 위로 갈수록 대기가 희박해지는 현상에서 착안해 실험을 진행했다.

높은 고도에서 공기가 더 희박한 이유는 중력 때문에 기체 분자들이 지표 인근으로 가라앉기 때문이다. 일부 분자들은 다른 기체 분자들과 충돌해 가라앉지 못하고 상공에 머무른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한 현상이지만 한편으로 굳이 분자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더라도 설명은 가능했다. 이 현상이 분자에 의한 현상이라는 근거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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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랭은 이 현상이 대기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알갱이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했다. 작은 알갱이를 액체에 섞으면 알갱이는 가라앉지만 일부 입자들은 가라앉지 못하고 액체에 떠있는다.

실험에는 무게와 크기가 동일한 입자들이 필요했는데 고무나무에서 얻을 수 있는 등황이라는 천연 색소가 가장 적합했다. 물속에서 등황을 손으로 비비면 작은 알갱이들이 물에 섞인다.

알갱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는다. 하지만 모든 입자가 바닥에 가라앉지 않고 일부는 물속에 떠있는다. 바닥에서 멀어질수록 떠있는 입자의 농도가 희박해진다. 실험 결과는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대기의 희박함과 알갱이의 희박함이 동일한 원리에 의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며 분자 이론이 옳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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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 아니라 페랭은 이 실험을 이용해 '아보가드로 수'를 측정했다. 아보가드로 수는 분자량에 해당하는 무게에 들어있는 분자의 개수를 의미한다. 산소 분자의 분자량은 32다. 아보가드로 수는 32g의 산소 기체에 들어있는 산소 분자의 개수를 의미한다.

그가 구한 아보가드로 수는 분자 이론에서 예상한 수치와 일치했다. 이 값은 현대에 정밀하게 구한 아보가드로 수하고도 유사한 값이다.

이후에는 톰슨, 러더퍼드, 채드윅 등이 원자를 형성하는 기본 입자들을 발견했고 20세기 이후 분자 모형은 과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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