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속 흰토끼의 기원은?
영화의 흰토끼, 알고보면 하나가 아니다
'통속의 뇌' 재점화한 매트릭스 세계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온 영화 '매트릭스'

[월드투데이 김지현] 매트릭스의 초반부, 그러니까 네오가 자신이 사는 세상이 프로그램에 불과할 뿐임을 인지하기 전 네오는 발신자가 불분명한 메세지를 받는다.

[사진=흰토끼를 따라가라는 메세지를 받은 네오,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그 메세지는 위의 사진과 같다.

이후 모두가 알겠지만 네오는 자신을 찾아온 무리 속 여자가 흰토끼 문신을 한 것을 보고 그들을 따라간 후 자신의 현실이 가짜였음을 알게 된다. 

이렇듯 영화에서 흰토끼는 짧게 등장했지만 큰 상징을 가졌다. 흰토끼를 따라가기 전후로 현실 인식을 나누는 관문 역할을 한 셈이다. 

[사진=매트릭스:리저렉션에서 등장하는 바니,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매트릭스1뿐만이 아니다. 올해 개봉한 매트릭스4(매트릭스 리저렉션)에서는 '벅스'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새롭게 등장한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왜 하필이면 이런 공상과학영화에서 뜬금없이 '흰토끼'를 소재로 가져왔을까? 말이다. 

흰토끼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러한 의문은 오래가지 않아 영화 속에서 해결된다.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겠지"나 "토끼 구멍으로 떨어진 것 같지?" 등의 대사를 통해 영화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흰토끼를 빌려왔음을 친절하게 드러낸다.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Lewis Carrol)'의 저서다. 소설 속에서도 흰토끼는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이끄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사진=토끼굴로 들어가는 흰토끼, 월트 디즈니]

우리가 알던 토끼와 조금 다르다. 두 발로 걸으며, 조끼를 입고, 그 속에 시계를 넣어 다닌다. 앨리스에게 말도 건넨다. 

토끼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흥미로운 나를 보고 어떻게 따라가지 않을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흰토끼는 앨리스 이후로도 많은 작품에서 이스터에그로 활약해왔다. 대표적인 영화를 꼽아보자면 2010년도에 개봉한 '하트비트'다. 

[사진=영화 '하트비트'속 주인공이 술래잡기 도중 흰토끼를 만나는 장면, AT9]

주인공이 숲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도중 흰토끼를 만나는 엉뚱한 연출이 돋보이는데, 영화의 원제목 의미인 '상상의 사랑'을 들으면 연출의 의미를 예상할 수 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판타지스러운 사랑 이야기의 도입부를 알리는 역할로 흰토끼를 등장시킨 것이다.

매트릭스 속 또 다른 흰토끼

관객에게 있어 놓치지 말아야 할 '흰토끼'의 존재가 또 하나 있다. 바로 감독이다.

감독은 영화 속 흰토끼가 되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으로 하여금 '우리가 사는 삶이 과연 진짜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끔 한다.

'흰토끼'의 질문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통 속의 뇌 논증'이다

[사진=데카르트, 인물세계사]

이 개념은 데카르트의 '악마' 가설에서 시작된다. 

데카르트가 살았던 시대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기였다. 그렇기에 중세의 영향을 받은 데카르트는 신과 악마의 존재를 받아들였다.

여기서 데카르트의 질문이다. '만약 악마가 실존해서 내가 느끼는 모든 감각을 악마가 조작한 것이라면, 이게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가?'이다. 

악마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을 조작한다는 가정을 하면 우리는 이게 가짜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물음은 현대에 와서 심리철학자 힐러리 퍼트넘의 '통 속의 뇌'가설로 재점화된다. 상상력으로 유명한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또한 자신의 소설 '나무'에서 이러한 가정을 토대로 전개해나갔다.

[사진=장자의 호접지몽, 공부왕이 즐겨찾는 고사성어 탐구백과]

이는 서양뿐 아니라 동양에서도 계속되어온 질문이다. 호접지몽 설화에 대해 한 번쯤 들어왔을 것이다.

장자가 꿈에서 나비가 되어 자신의 본 신분을 깨닫지 못하였고, 꿈에서 깬 뒤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속에서 장자가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보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란 말은 터무니없어 보일지 몰라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에 걸쳐 계속된 질문임을 알 수 있다.

[사진=이상한나라의 앨리스 속 흰토끼, 픽사베이]
[사진=이상한나라의 앨리스 속 흰토끼, 픽사베이]

감독도 관객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흰토끼'인 셈이다.

관객들이 영화관에서 매트릭스를 다 보고 컴컴한 영화관 밖으로 나서는 순간 뭔가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감독의 의도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흰토끼는 이전에 알던 세상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의 도입을 알린다. 그러니 앞으로 영화를 볼 때 흰토끼가 나온다면 유심히 지켜보는 게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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