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오스트리아에 감돌던 전운

[사진=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스틸컷, (주)팝엔터테인먼트]
[사진=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스틸컷, (주)팝엔터테인먼트]

[월드투데이 배수민 기자] 알프스를 배경으로 한 영상미와 아름다운 음악으로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 온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본다.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나치를 피해 고국으로부터 망명한 오스트리아인 본 트랩 가족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1959년 11월 16일, 메리 마틴이 열연한 사운드 오브 뮤직은 뉴욕 브로드웨이 란트 폰테인 극장에서 성공적인 첫 무대를 장식한다. 

이후 사운드 오브 뮤직은 1963년까지 43개월간 1,143회나 공연되었다. 토니상에서 최우수 뮤지컬 등 7개 부문을 석권했고, 50년대 브로드웨이의 대표 뮤지컬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뮤지컬을 바탕으로 1965년 제작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전 세계적인 흥행을 불러일으켰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개봉 당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가 26년간 지키고 있던 역대 흥행 기록 1위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1966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등 5개 부문을 휩쓸었고, '사상 최고의 뮤지컬 영화'라는 찬사를 받으며 관객들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진=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스틸컷, (주)팝엔터테인먼트]
[사진=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스틸컷,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의 배경은 1930년대 후반,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오스트리아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수도원의 밝고 명랑한 견습 수녀 마리아가 퇴역 장교 폰 트랩가의 가정교사가 되어 사랑과 음악으로 상처 입고 경직된 가족을 회복시키는 이야기를 담았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분할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은 헝가리와 체코, 슬로바키아의 독립으로 영토는 제국 시대의 8분의 1, 인구는 9분의 1로 줄어들었고, 독일과 국경을 맞댄 소국으로 전락했다.

오스트리아는 전쟁에 패해 승전국에 막대한 전쟁 보상금을 치러야 했는데, 당시 통화였던 크론화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대규모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사태가 계속해서 나빠지자 1922년 가을에는 국제연맹에서 융자를 받아 파산을 겨우 틀어막았다.

1925년 크론화 대신 실링화를 새로 도입해 1929년까지 짧은 경제 호황을 누리기도 했으나,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경제 대공황으로 얼마 가지 못했다. 여기에 정치적 혼란이 겹치며 1920년대 말부터는 오스트리아에도 나치스가 생겨났고, 1933년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은 막을 내렸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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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의 지원을 받던 엥겔베르트 돌푸스에 의해 권위주의 정권이 세워졌다. 그는 1934년 2월 발생한 오스트리아 내전을 계기로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과 오스트리아 나치당의 활동을 금지했고, 이에 반발한 나치스는 같은 해 7월 쿠데타를 일으켜 돌푸스를 암살한다.

이 쿠데타는 돌푸스의 뒤를 이어 수상의 자리에 오르게 된 쿠르트 슈슈니크에 의해 진압됐다. 그는 이전 정권보다 독일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오스트리아를 독일계 국가로 선포하되 독일로부터 독립은 유지하고 싶다는 입장을 표했다.

그러나 독일 민족주의에 따르면 모든 게르만족은 단결해야 했고, 오스트리아 태생인 히틀러는 이를 현실로 만들고자 했다. 영국이 독일과 해군 협정을 체결하고, 이탈리아도 독일과 협력하는 베를린-로마 추축 노선을 구축하는 등 국제 정세도 독일에 유리하게 흘러갔다. 

1938년 2월 12일, 히틀러는 슈슈니크에게 오스트리아를 독일의 보호 아래 두기 위해 몇 가지 요구 사항을 전했다. 슈슈니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오스트리아 내에서는 정부 타도, 독일 병합을 요구하는 나치스의 움직임이 공공연히 개시되고 있었다.

[사진=픽사베이]

3월 12일, 독일 국방군은 오스트리아로 진군했다. 슈슈니크는 오스트리아의 독립 유지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오스트리아의 독립 유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계획했으나, 히틀러는 나치 정권 수립과 독일군의 오스트리아 침공 사이의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절망에 빠진 슈슈니크는 그날 저녁 총리직을 사퇴했고, 빌헬름 미클라스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새로운 총리를 임명하는 것을 거절했다. 오스트리아 나치당이 정부를 장악했고,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오스트리아에 입성한 독일군은 불과 하루 만에 내각을 포함한 빈의 대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그렇게 히틀러는 안슐루스, 즉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었음을 선언했다. 1938년 4월 10일, 독일의 통제 속에 유대인과 집시들을 제외하고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오스트리아 전체 투표자의 99.7%에 달하는 사람들이 나치당에 찬성표를 던졌고, 오스트리아는 오스트마르크라는 독일의 한 주로 전락했다.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흡수된 직후부터 부유한 오스트리아 유대인들은 재산을 강탈당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법적으로 유대계 자본을 강제로 탈취하는 것이 허가되었으며, 오스트리아 출신의 아돌프 아이히만이 직접 오스트리아에서 유대인 탄압을 감독했다. 

[사진=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스틸컷, (주)팝엔터테인먼트]
[사진=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스틸컷,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속 애국심 강한 본 트랩 대령과 그의 가족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겪는다. 본 트랩 대령과 마리아가 신혼여행을 떠난 사이 오스트리아는 나치 독일에 합병되고, 대령에게 소집 명령이 내려온다.

이들은 스위스로 야반도주를 계획하고, 나치 당원들에게 적발되자 본래 준비하던 민요대회 출전을 가장해 대회장으로 향한다. 본 트랩 대령은 "오스트리아 동포들이여, 이 노래에 대한 사랑을 잊지 말라"며 '에델바이스'를 부르고, 가족들은 수상자 발표가 진행되는 동안 도망쳐 오스트리아를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가족과 조국에 대한 사랑, 인생의 다양한 갈등과 성장, 관계에 대한 통찰력과 따뜻한 시선을 전하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 순수하고 대중적인 노래들로 선한 기운이 가득한 이 영화는 어려운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사랑에 대해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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