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웅주의 탈피한 중국식 SF 영화
미국의 부재와 '인류운명공동체' 이념

[월드투데이 노은하 기자]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이 소요되는 SF 영화는 그동안 세계 영화 산업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미국 할리우드의 전담 장르로 인식되어왔다. 미국과 더불어 G2라 일컬어지며 상호 견제와 대립을 지속하고 있는 중국은 이제 SF 영역에서까지 미국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지난 2019년에 개봉되어 신드롬에 가까운 흥행을 이끌어낸 중국의 SF 영화 '유랑지구'가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씨네그루]
[사진=씨네그루]

새롭게 등장한 중국식 SF 영화 '유랑지구'에서는 할리우드식 영화문법을 탈피해 독자성을 구현하고자 하는 시도가 돋보인다.

그동안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가 미국을 중심으로 외부로부터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지구의 적에 맞서 인류를 지키려 한 데 반해 '유랑지구'는 그런 정형화된 패턴을 벗어던졌다.

외부의 적 대신, 영화는 태양의 소멸이라는 독특한 상황 설정을 두고 있다. 태양의 노화로 인해 태양계의 질서가 무너지자, 더 이상 태양을 중심으로 돌 수 없게 된 지구가 태양계를 벗어나 새로운 터전을 찾아 나선다.

거대한 추진 장치인 행성 발동기 1만 개를 세계 곳곳에 건설해 지구 자체를 이동 수단으로 삼아 광활한 우주를 떠도는, 제목 그대로 ‘유랑하는 지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사진=씨네그루]
[사진=씨네그루]

태양의 소멸로 인한 영하 70도의 이상 기후에서 살아남은 지구인들은 지하 도시로 옮겨가 삶을 이어간다. 지하 도시에서는 교육과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고 명절 분위기도 내는 등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는 미국인과의 대립이나 협력은 물론 영어조차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자동 번역기를 통해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유랑하는 지구는 여전히 인류의 삶의 터전이지만 여기에서 미국은 태양과 함께 빠져있다. 

이러한 영화 속 미국의 부재를 현실에 대입해 보면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국제 질서에 대한 일종의 폐기 선언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유랑지구'는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졌던 미국 중심의 질서가 파괴된 미래와 그 안에서 필요하게 될 새로운 협력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사진=씨네그루]
[사진=씨네그루]

영화의 대략적인 내러티브는 목성과의 충돌을 앞둔 범우주적 재난의 위기 속에서 지구를 구한다는 비교적 단순한 영웅 서사이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까지 이른바 ‘슈퍼 히어로’는 등장하지 않는다. 

지구가 목성과의 충돌이라는 대재앙에 직면한 상황, 최후의 방안은 목성의 폭발에 의한 충격파를 이용해 지구와 목성의 충돌을 막는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앞두고 도움을 요청하는 중국인 소녀의 호소에 지구 멸망을 앞둔 좌절감에 빠져 있던 세계 각국의 지원대가 하나둘씩 합류한다. 결과적으로 모두의 힘을 모아 지구엔진을 가동시켜 성공적으로 목성의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한 명의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평범한 다수가 영웅이 되고, 그 평범한 영웅들의 협력을 통해 보다 나은 결과를 이끌어 낸다는 서사는 슈퍼 히어로물의 성격이 강한 기존 할리우드 SF영화와 대비된다. 비범한 소수의 활약으로 세계를 구원하는 '미국식 영웅주의'로부터의 탈피를 꾀한 것이다.

[사진=씨네그루]
[사진=씨네그루]

대신 영화의 내러티브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소위  ‘인류운명공동체’라는 이념이다.

‘인류운명공동체’는 중국 대외 정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담론으로, 서로 다른 체제 간의 갈등과 충돌을 극복하고 각국의 협력을 통해 인류 공동의 이익과 가치를 추구하자는 이념이다. 대표적으로 현재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대다수의 중국인들은 영화에서 구현된 할리우드 못지않은 수준의 기술력과 전 세계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보편성을 지닌 내러티브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영화가 수출되면서 해외에서 과연 이 영화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해외 반응에 대한 중국의 관심은 '유랑지구'의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자부심에서 비롯된 기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근저에는 '유랑지구'를 통해 표현된 미국이 부재하는 새로운 질서와 이를 대체할 ‘인류운명공동체’ 이념이 해외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저작권자 © 월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