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암살당하다
오늘날에도 존경받는 대통령인 이유

[월드투데이 이하경 기자]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언급되는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북전쟁 중이던 미국을 하나의 미국으로 통일했으며, 임기 중 노예제의 폐지를 이끌어낸 인물이다. 

4년동안 이어진 전쟁으로 남부는 점차 힘을 잃어갔고, 펜실베니아 주의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북부가 승리를 거두며 승기는 북군쪽으로 기울게 된다. 링컨이 게티즈버그에서 한 연설은 오늘날 까지도 유명하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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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영원할 것입니다.

링컨의 암살

 그러나 링컨은 남북 전쟁이 끝난지 5일만인 1865년 4월 14일 금요일 오후 10시경 포드 극장에서 암살당한다.

금요일인 이날 오후, 링컨 대통령은 영부인 메리와 함께 워싱턴 시내에 있는 포드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했다. 이때 한 남자가 대통령석 문으로 몰래 들어왔고 링컨의 뒷머리를 향해 권총을 발사한다.

암살자는 남부 지지자였던 배우 존 윌크스 부스였고, 그는 암살 직후 "폭군을 죽여랴!"고 소리친 뒤 문 밖으로 뛰어나가 말을 타고 사라졌다. 다음 날인 4월 15일 오전 링컨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숨을 거두었고 미국 전 지역은 큰 충격에 빠졌다. 

링컨이 암살당하고 며칠 후 음모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사람은 대부분 체포되고 주범인 부스는 숨어다니다 며칠 후 군인들의 총을 맞고 숨졌다. 재판에서 유죄를 받은 4명에게는 사형, 3명에게는 종신형, 한 명에게는 6년형이 선고됐다. 링컨 대통령의 유해는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으로 옮겨졌다. 

시민들이 고인을 참배하고 마지막 작별을 고한 후 유해는 특별 열차에 실려 고향인 일리노이로 돌아갔다. 링컨의 시신은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 고향의 오크리지 묘에 안장되었다. 미국에서는 링컨의 탄생일에 가까운 2월 셋째 주 월요일을 '대통령의 날'로 정하고 역대 대통령들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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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은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남는다. 그의 일생이 인도주의적이었고, 미국을 하나의 나라로 연합시켰기 때문이다. 링컨 이전의 미국은 각 주의 연합체였을 뿐 한 나라라는 의식은 희박했는데, 링컨 이후 진정한 '미합중국'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또한 링컨은 노예제 폐지라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미합중국 헌법 제 13조를 통과시키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했다. 13조는 공식적으로 노예 제도를 폐지하고 범죄자를 제외하고서 비자발적인 예속을 금지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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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은 자신이 노예 제도를 없애기 위한 힘이 헌법에 의해 제한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각 주에 노예 소유즈들에게 노예 해방에 대한 대가로 보상금을 지급하여 노예 제도를 축소할 경제적 유인책을 펴도록 설득했다.

1862년 7월, 의회에서 남북전쟁에 가담한 자들의 노예를 강제 해방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링컨은의회 권력이로 이를 실현하는게 불가능하다며, 전쟁 사령관 직권으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보았지만, 이 법안을 승인했다. 1862년 9월 22일 발표되고 1863년 1월 1일 발효된 노예 해방 선언은 북부의 통제 하에 들어있지 않은 영역의 모든 노예를 해방하도록 했다. 

링컨은 노예 해방 선언문에 서명하며 "나는 내 삶에서 내가 옳은 일을 한다는 확신을 내가 여기 서명하는 지금 이 순간만큼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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