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한 '실존주의'
'부조리'로 가득 찬 개인의 삶 - '이방인'
'영웅'의 평범성과 '부조리'에 대한 연대 - '페스트'
![[사진=wikipedia]](https://cdn.iworldtoday.com/news/photo/202207/408925_218359_2016.jpg)
[월드투데이 이주원 기자] 알베르 카뮈는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이자 철학자로, '부조리 문학'의 대표로 꼽힌다.
알베르 카뮈는 1913년 당시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던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돌도 되지 않은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그는 홀로 남은 어머니 밑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이후 알제 대학을 입학한 그는 평생의 은사인 장 그르니에(Jean Grenier)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큰 영향을 받게 된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교수가 되고자 했으나 결핵으로 단념하게 되고 한 일간지에서 신문 기자로 일을 하기 시작한다. 기자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대한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1942년에는 대표작인 '이방인'을 발표함으로써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고, 1947년에는 그의 또 다른 걸작 '페스트'를 발표한다. 이후에도 꾸준히 문단 활동을 하던 그는 1957년에 역대 두 번째로 어린나이에 노벨문학상 수상하게 된다.
한편 알베르 카뮈는 대표적인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 중 한 명으로 뽑히는데, 실존주의란 근대 서구 사회를 지배하던 합리주의에 반(反)하는 이념으로 보편적인 정의보다는 개개인의 주체적 삶에 초점을 맞춘 철학 사조이다. 실존주의는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며 '도덕률'과 같이 객관적 기준에 근거한 판단을 부정한다.
카뮈의 '부조리 문학'은 이러한 실존주의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 세상에는 도덕이나 인간의 사법제도와 같은 잣대로 온전히 재단할 수 없는 부조리한 것들이 무수히 많음을 상정한다. 그리고 그가 쓴 작품들에서는 주체성을 가진 인간은 이러한 '부조리'에 개인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함의되어있다.
이방인
알베르 카뮈 저, 이수진 역, 온스토리, 2013.05.20.
![[사진=온스토리]](https://cdn.iworldtoday.com/news/photo/202207/408925_218360_2113.jpg)
프랑스령 알제에 살고 있는 '뫼르소'는 어느 날 양로원으로부터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슬퍼하기는커녕 꾸벅꾸벅 졸거나 빈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등 별로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편 어느 날 그는 옆집에 사는 '레몽'이라는 사람과 친분을 맺게 되고 그의 바람난 정부(情婦)를 벌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는 모종의 사고를 치게 되고 피의자 신분으로 재판을 받는다.
나는 과거에도 옳았고 지금도 옳고 언제나 옳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인생을 살았지만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일은 했고 저런 일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일을 하지 않은 대신 다른 일을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나는 이 순간만을, 나의 정당성을 입증해줄 새벽의 첫 햇살이 비치기만을 기다려온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생의 마지막 순간에 '약혼자'를 받아들였는지, 왜 다시 시작하려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생명들이 꺼져가는 그 양로원 주위에서도 저녁은 애수 어린 휴식과도 같았을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 서서 엄마는 자유를 느끼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었던 것이다. 누구도, 그 누구라도 엄마를 위해 울 권리는 없다.
알베르 카뮈의 대표 소설 '이방인'은 그의 부조리 문학의 시작점이라고 여겨지는 작품이다. 소설 속 등장하는 인물들은 햇살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다른 사람에게 총을 쏘며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슬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량을 더 무겁게 부과하는 등 '부조리'하기 이를 데 없다. 이는 오랜 기간 근대 철학을 지배했던 이성의 객관성과 올바름을 강조한 합리주의적 인간관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 부조리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작품을 통해 작가는 무엇보다 우리의 삶은 불완전하고 '부조리'함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에 대해 주체적으로 저항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소설 속 등장하는 '뫼르소'는 이러한 '부조리'에 맞서 끝까지 저항하는 인물이다. 그는 획일적이고 인위적인 기준에 자신을 맞추지 않으며 투명한 유리처럼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낸다. 재판 제도도 종교적 규율도 그에게는 그저 자신의 존재를 가리는 부조리한 것일 뿐이다.
부조리는 비합리적이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홀연히 그림자를 드리울지 모를 '죽음'도 마찬가지로 부조리하다. 그렇지만 인간은 소설 속 인물처럼 부조리를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설 때 오히려 행복해질 수 있다.
소설 이방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실의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그들의 모습이 이질적이라고 느껴진다면 우리는 일상 속에 만연한 부조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은 합리적이기보다는 부조리한 것들로 가득 차있고, 앞으로도 부조리할 것이다. 인간은 그 자체가 영속적으로 부조리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페스트
알베르 카뮈 저, 최윤주 역, 열린책들, 2014.11.20.
![[사진=열린책들]](https://cdn.iworldtoday.com/news/photo/202207/408925_218361_2216.jpg)
어느 날 알제리 북서부에 위치한 오랑시에서 수천 마리의 쥐가 도시 곳곳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간다. 그럼에도 평온한 삶을 영위하던 오랑시의 시민들은 이러한 현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머지않아 사람에게도 심상치 않은 질병의 징후가 나타나게 되고 이후 이것이 무시무시한 전염병인 '페스트'임이 밝혀지게 된다.
이후 전면 봉쇄에 들어가게 된 오랑시 시민들의 삶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사 '리유'는 자신의 동료인 '타루'와 '그랑' 등과 함께 보건대를 결성하여 페스트의 확산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한다.
그렇다. 사람들이 실제로도 소위 영웅이라 하는 본보기와 선례를 마음속에 품고 싶어 한다면, 그리고 이 이야기 속에 그런 영웅들 가운데 하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서술자는 다름 아닌 바로 이 평범하고 앞에 잘나서지도 않는 영웅, 가진 것이라고는 마음속에 약간의 선량함과 겉보기에 그저 우스꽝스럽기만 한 이상밖에 없는 이 영웅을 추천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좋은 사람들조차 누군가를 죽이거나 누군가가 죽어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으며, 그 이유는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섭리가 이미 그렇기 때문이고, 누군가를 죽도록 만드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몸 한 번 움직이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1947년에 출간된 장편소설 '페스트'는 페스트라는 가공할 만한 재난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군상을 그린 일종의 재난 소설이다. 하지만 소설의 전개는 결코 극적이지 않으며 마치 하나의 잔잔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만큼 지극히 현실적이다.
이전 작품 '이방인'이 부조리에 대한 개인의 저항을 보여줬다면 '페스트'는 부조리에 맞서는 집단적인 반항을 그려내고 있다. 그렇지만 등장인물 모두가 부조리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인물은 관습이나 종교적 규율에 근거하여 현상을 해석하고 판단할 뿐이고 어떤 인물은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회피하는 것을 선택한다.
한편 이들과 달리 리유와 그 동료들은 페스트라는 부조리에 어엿이 반항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특출난 영웅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등장한다. 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비범하고 초월적인 능력이 아니라 부조리 앞에 연대하고자 하는 의지와 적극적인 실천일 것이다.
물론 리유를 위시한 보건대가 페스트의 위세를 꺾는 데 있어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반항의 길은 멀리 있지 않으며 그저 추상적인 가치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임을,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 연대야말로 부조리에 맞서는 방법임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이는 '영웅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영웅이 없다. 우리들 모두가 영웅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