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마당은 아이들의 정서발달과 자연 친화에 도움이 되는 행복한 놀이터다. /사진=이현욱 건축가
마당은 아이들의 정서발달과 자연 친화에 도움이 되는 행복한 놀이터다. /사진=이현욱 건축가

[이현욱 건축가] 친구들에게 같이 집을 짓자고 하면 처음 반응은 무조건 오케이다.  ‘우리 나중에 크면 나란히 집짓고 살자’며 어린시절 추억을 나누며 들 떠 있다가도 다음 날 통화를 하면 친구의 반응은 거절하는 경우가 대 부분이다. 아내의 반대 때문일 수 있고 돈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 직 장과의 거리, 아이들 학교 문제 등 이유가 다양하다.

그런데 ‘땅콩집 친구 찾기’ 상담을 하다 보면 뜻밖에도 부모님의 반대가 가장 많다. 굳이 편안한 아파트를 버리고 왜 불편한 단독주택에 살려고 하느냐, 돈이 없으면 그냥 아파트에 살지 굳이 친구랑 같이 집 을 지어야 하냐, 나중에 집을 팔 때 아파트보다는 쉽지 않을 거다, 여 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집에서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 등등 왜 사서 고 생을 하느냐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단독주택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한 세대여서 아파트라는 편안하고 따뜻한 공간을 선호한다.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아이들이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라난다. ‘집은 아파트가 최고’라는 고정관념, 그리고 편안함과 재테크의 이점 으로 아이들이 희생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금 땅콩집에 같이 살고 있는 모 언론사 기자는 2007년 죽전 모바일홈을 지어 살 때 만난 사회친구다. 나는 건축가로, 친구는 건축 기자로 처음 만났다. 모바일홈은 2006년에 이슈가 된 집으로 TV 방송과 여러 잡지에 소개되며 유명해진 집이었다.  그 기자는 뒤늦게 나를 찾아왔다. 기사로 소개되는 집은 길어야 6개월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모든 기사가 그렇듯이 나의 집은 모든 기자에게 잊혀진 지 오래였다. 이 사람은 뭐지? 왜 이제 와서 인터뷰를 요청하지? 쓸 기사가 없나? 라고 생각하고 마지못해 인터뷰에 응했다.

“우선 저는 실패했습니다. 집이 너무 추워 아내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고요, 한 달 난방비가 119만원 나왔어요. 제 실패담을 자세히 써 주세요. 제가 광장건축에 입사해서 15년 경력에 대표이사입니다. 문화시설, 오피스텔, 빌딩은 나름대로 전문가라고 생각했는데 단독주택 18평도 제대로 설계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건축공부 다시 하고 있어 요.”

4일 뒤 신문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의 실패담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소개가 된 것이다. 그것도 한 면 전체를 도배했다. 내 얼굴이 신문에 그렇게 크게 나온 건 난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신문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그것도 소리를 내면서. “하하하. 기자가 나를 확실히 보내 버렸네!”

다음 날 우리는 술자리에서 만났다. 기자는 그동안 많은 건축가를 만나 건축물을 소개했지만 나 같은 건축가는 처음이라고 했다. 기자에게 좋은 점만 이야기하지 실패담을 얘기한 사람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여태 해 온 공부가 잘못된 것을 인정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그래서 내가 마음에 들었단다. 그날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 이후 만나면 건축에 대한 생각과 철학에 공감을 하며 맞장구를 쳤다. 특히 아파트가 인간에게 미치는 나쁜 영향과 문제점에 광분을 하며 열띤 토론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의 날이 오고 땅콩집이 탄생하게 되었다. 결혼생활 10년 맞벌이에 이제 전세 3억. 언제 돈 벌어 마당 있는 집에 살아보냐는 얘기가 시작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벌써 초등학교 4학년. 아들에게 ‘뛰지 마! 아래층에서 올라온다’며 아빠 잘못 만나 불쌍하게 자라는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얘 기를 어렵게 꺼냈다. 자신은 어린시절 마당 있는 집에 대한 추억이 있는데 아들에게는 그런 추억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걸 한탄했다.

“3억? 돈이 없으면 둘이 해! 혼자 해결을 하려고 하지 말고. 혼자 하면 어렵지만 둘 합하면 6억. 우선 든든하잖아.”

이 말에 친구는 잠시 얼어 버렸고 내가 봐도 좀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마당 있는 집에 지금 당장 살고 싶은 거 아 냐? 그럼 친구를 찾아.”

친구를 찾아 같이 집을 짓는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너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친구를 찾아봐. 아님 부모님은 어때?  이번 기회에 같이 사는 것도 좋지 않냐?”

그러고 한 달 뒤 친구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반가운 소식에 같이 땅을 보고 설계 미팅을 진행했다. 용인 동백 신도시에 단독주택 부지를 하나 골랐다. 동네가 조용하고, 초등학교와 할인마트도 가까이 있었다. 교통은 광화문까지 1시간 걸리는 광역버스가 있어 신문사까지 출퇴근이 충분하다. 그리고 그 친구는 직장이 경기도 이천이라 더욱 문제가 없었다. 땅값 3억, 한 필지에 두 가구가 살 집 두 동을 지으면 공사비가 3억, 합이 6억이다. 땅 68평에 한 동당 48평집 두 동이 들어가도 마당이 20평 나온다.

한 집의 최대 바닥 면적은 16평. 2층도 16평 그리고 다락이 16평이다. 합이 48평으로 작지 않다. 두 집 다 16평에 대한 개념이 없어 가설계를 보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에 공감하고 완벽한 시나리오가 구성되었다. 그러고 일주일이 지났는데 기자로부터 이천이 직장인 친구가 포기했다며 미안하다는 메일이 왔 다. 부모와 상의도 했지만 설득에 실패했고 자기도 집짓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너무 쉽게 일사천리로 진행이 된다 싶었는데,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는 땅콩집 설계도 면을 찬찬히 보았다. 눈물이 났다. 산모가 아이를 낳다 사산한 느낌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결과는 종이에서 끝났고 기대가 컸던 만큼 상실감도 컸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좋은 생각이 났다. 그래 내가 하자. 내가 친구가 돼 주자. 누구보다 이 프로젝트를 잘 이해하는 사람 둘이서 이 일을 끝내야 한다. 당장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같이 할 사람 찾았어. 나 어때? 나름대로 괜찮은 녀석이야, 우리 아내도 좋은 사람이고 아이들끼리도 사이좋게 잘 지낼 거야.”

결정은 쉬웠다. 친구도 대환영이었고, 누구보다도 마당 있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두 남자의 열망이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켰다.

문제는 아내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아내는 집을 실험의 대상으로 보는 나를 늘 못마땅해했다. 벌써 이번이 세 번째, 아내를 설득할 자신이 없어 일단 몰래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내는 분명히 반대할 것이므로 집을 다 지어놓고 말할 참이었다.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행복이 자란다. /사진=이현욱 건축가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행복이 자란다. /사진=이현욱 건축가

땅을 구입하고 건축허가가 나고 한 달 만에 집을 짓는 프로젝트. 말이 한 달이지 주택은 상가 건물과는 달리 면적에 비해 공사기간이 오래 걸린다. 게다가 전셋돈으로 시작한 일이라서 공사비 조달이 쉽지 않았다. 땅을 담보로 추가 신용대출을 받아 땅을 구입했기 때문에 추 가 대출도 쉽지 않았다. 결국 전셋돈 계약금을 받아 공사 계약금을 치르고 한 달이라는 공사기간을 약속하고 외상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전세 잔금을 받으면 이사를 하고 공사비를 주면 모든 일이 끝나는 시 나리오를 구상했다.

30일 프로젝트는 10일을 더 넘겨 40일이 걸렸지만 두 남자는 아파트 전세에서 벗어나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내에게는 땅을 구입하고 건축허가가 나고 시공사 공사계약까지 하고 기초공사가 끝날 때가 되어서야 사실을 말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현장에 데려가 집터를 보여주었다. 초등학교가 여기 있고 할인마트가 여기라며 필요 이상으로 친절한 설명을 했다. 아내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지 내게 물었다.

“여보 혹시 이거 우리 집이야? 또 나 몰래 실험하고 있는 집인 거지?”

아이들은 엄마 말을 듣더니 좋아서 우리 집 하자고 성화다.

“우리 집이야. 다음 달에 이사할 거야.” 

아이들을 껴안으며 말했다. 차마 아내의 얼굴을 보고 말할 수 없었다. 아내는 그날 밤새도록 울었다. 상의도 하지 않고 또 일을 저질렀다며 혼자도 아니고 이제는 친구까지 꾀어 이 미친 짓을 시작했다고 울고불고 난리였다. 그 이후로 아내는 툭하면 어떡할 거냐고, 한 달 뒤에 집이 완성이 안 되면 누가 책임을 지냐고, 이 일이 실패하면 우리야 어쩔 수 없지만 친구네가 거리에 나앉으면 누가 수습할 거냐면서 불안해하며 잠을 설쳤다. 그런 아내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사진=이현욱 건축가
사진=이현욱 건축가

이렇게 땅콩집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완성이 되었고, 두 집 다 아직까지 별 문제없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듯하고 건강한 집에서 건강한 삶을 살고 있으니 이번 프로젝트는 성공이었다. 세 번째 짓는 내 집이라 그동안 노하우를 많이 축적해둔 나는 처음부터 자신이 있었다. 특히 땅콩집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믿어준 친구가 고마웠고 눈물을 흘리며 나를 따라준 아내가 고마웠다.

땅콩집에서 산 지 벌써 수 년. 이렇게 오래 살아본 집은 처음이다. 아내는 요즘 또 불안해한다. 지금의 이 오랜 평화가 불안하고 남편이 또 혼자 무슨 꿍꿍이를 만드는지 불안해한다. 그리고 나의 아내는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는 이 말을 가장 무서워한다.

“여보 우리 이사 가자. 짐 싸!”

 

◆ 이현욱 건축가 

-현 이현욱좋은집연구소 대표

-캐나다 정부와 집짓기 프로젝트 시행

-땅콩집 열풍 전국 확산 (MBC 방송 출연)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본상( 기업혁신 부문)

-언론사 선정 올해를 빛낸 인물(2010년)

-화제의 논픽션 작가 선정((2011년)

-<두 남자의 집짓기>(2011년), <나는 마당 있는 작은 집에 산다>(2013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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