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 '에버기븐호' 수에즈 운하 좌초 후 직간접적 피해 선박만 1천 척 넘어
4월 3일 운항 재개했지만 배상 책임 공방 예고
이집트 수에즈 운하 관리청, 선주 '쇼에이 기선'에 1조 원 넘게 손해배상 청구

아시아와 유럽 연결하는 최단 항로, 수에즈 운하가 막히다
[월드투데이 전유진 기자] 지난 3월 23일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가 수에즈 운하를 지나다 좌초되었다. 하필 좌초된 부분이 배가 가장 많이 오고 가는 수에즈 운하의 입구였다. 국제 무역의 12%를 책임지는 운하를 가로막은 덕에 400척이 넘는 배가 꼼짝없이 발이 묶이며 물류가 마비되었다.
일부는 수에즈 운하를 피하고자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하는 곳으로 우회를 결정했다.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도 남아프리카 희망봉 노선으로 우회했다. 해당 노선은 7일에서 길게는 10일이 더 소요되며 추가로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다.
에버기븐호는 인양을 위해 배의 무게를 줄이고, 물이 차오르는 만조를 기다렸다. 대형 예인선 10척이 투입되며 결국 사건이 발생한지 6일 후인 3월 29일에 겨우 배를 끌어낼 수 있었다.
4월 3일, 통항을 재개한 수에즈 운하관리청은 정체 해소를 선언했다. 대기하던 420척이 넘는 선박이 운하를 전부 통과했다. 그 사이 새로 도착하여 대기하던 150척 정도도 곧 운하를 지날 수 있었다. 4일이 되니 선박 운항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그럼에도 후폭풍은 예상된다. 수에즈 운하 통항절차를 대행하는 대리점은 평소 상태로 완전히 돌아가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치열한 책임∙보상 공방 예고
수에즈 운하는 호르무즈 해협, 말라카 해협,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뒤를 이어 세계 주요 물류가 지나가는 길목이다. 그러한 주요 길목이 좌초 사고로 길이 묶였으니, 뒤따라오는 피해 규모도 어마어마 하다.
정확한 피해 액수 산정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해운업계는 최소 1천억원에서 최대 수조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통상 화물을 운반하는 대형선박의 경우 운송이 하루 지연되면, 피해액이 약 1억 원을 넘는다. 이번 사고로 인하여 대기했던 선박 400척, 또 항로를 바꾼 선박까지 포함하면 1천 척 정도이다. 1천 척으로 가정하면 선박들의 피해만 대략 하루 1천억 원 규모인 셈이다.
여기에 무역 손실까지 고려하면 이번 사고로 인한 피해액은 수십 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전문가들도 에버기븐호의 사고로 세계 물류시장은 시간당 수억 달러의 막대한 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했다.
◆ 얽힌 것이 많은 이번 사고
이번 사고는 여러 부분에서 피해가 발생하여 고려할 것이 많다. 크게 네 가지다. △사고 기간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지 못한 선박들의 피해, △이집트 정부의 운하 이용료 수입 피해, △에버기븐호 예인 비용, 또 △복잡한 보험 청구 과정이다.
특히 선박들의 피해는 수에즈 운하에 대기 중이던 선박들을 포함하여, 우회 노선으로 운항한 선박, 또 선박에 물건을 실은 회사들의 피해를 포함한다. 부패하기 쉬운 물품을 운송 중이던 이들의 피해까지 고려하면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 선주와 선사 중 누가 책임은 누가?
천문학적인 피해액에 누가 책임을 질지 관심이 집중된다. 에버기븐호의 경우 배의 주인인 선주와 해당 배로 운송을 하는 선사가 다르다. 선주는 일본회사 ‘쇼에이 기선’이고 선사는 대만 회사 ‘에버그린’이다. 그러면 둘 중 누가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가?
결론만 말하면 사고 조사를 통해 밝혀진 사고 원인에 따라 책임 주체가 달라진다. 이집트 정부는 사고의 원인이 에븐기븐호의 과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되면 선주와 선사 중 선장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측이 책임질 전망이다. 관리에 대한 내용은 선사가 선주로부터 선박을 빌리며 체결한 용선 계약 내용에 따라 결정된다.
◆ 이집트 수에즈 운하 관리청, 선주에게 책임을 묻다
지난해 수에즈운하의 통행료 수입은 56억 달러 규모로 하루 약 1500만 달러이다. 좌초로 인해 6일 간 약 9500만 달러가 증발된 셈이다. 이에 수에즈 운하 관리청은 운하 통항 장애에 따른 피해와 인양 작업으로 인한 운하 파손, 장비 및 인건비 등을 고려해 사고 배상금으로 9억 달러(약 1조 원)를 선주 측에 청구했다. 이에 선주 측이 응하지 않자 선박을 압류했다.
수에즈 운하 관리청은 사고의 책임자로 선장을 지목했다. 앞서 사고의 원인으로 기계 결함이나 사람 실수로 의심된다 밝힌 바 있고, 좌초 당시 에버기븐호의 비정상적 속도와 항로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집트 당국에 따르면 수에즈운하 내 제한속도는 7.6~8.6노트지만 에버기븐호는 좌초 직전에 13.5노트의 속도로 운항했으며, 배의 항로도 매우 불안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선주와 보험사 UK P&I클럽은 정확한 피해 규모 산정이 이뤄질 만한 시간이 부족했고, 이집트 측이 제시한 구체적 근거도 없다며 크게 반발했다. 여전히 압류 중인 선박에 대하여 이집트 이스마일리아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UK P&I클럽이 4월 23일 밝혔다.
만일, 이집트 수에즈 운하 관리청의 주장대로 선장의 책임으로 밝혀진다면, 향후 선사와 선주, 보험사간 치열한 소송전이 예상된다.

◆ 복잡한 보험 문제도 대기 중
통상 화물 회사는 해상 사고에 대비하여 보험에 가입한다. 각 회사가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하면 이 보험회사는 다시 에버기븐호 주인에게 손실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면 이때 선주 역시 가입해둔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할 것이다. 이렇게 과정이 복잡해지면 보험금 지급까지는 길게 수년이 걸릴 수 있다. 불가피하게 보험사들의 손실이 클 전망이다.
한편, 선주는 12개의 보험과 배상 클럽에 가입돼 최대 31억 달러의 책임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 정확히 어떤 피해를 배상해야 할까?
통상 해상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은 △사고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고 △예견할 수 있었던 피해에 한정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한다.
즉, 사고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야 하고, 사고 당시 사고 책임자가 그러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이집트 정부의 피해와 에버기븐호의 예인 비용, 에버기븐호에 실린 화물 운송 지연 피해는 에버기븐호 몫이다. 하지만 다른 선박들의 운송 피해에 대하여는 예견 가능성과 직접적 인과관계를 따진 후 정확한 몫이 결정된다.

◆ 공방의 핵심 포인트, 자연재해? 인재?
사고 원인이 전적으로 강풍 등 자연 요소였던 것으로 밝혀지면 선주나 선사 모두 피해를 배상 질 책임은 없다.
이에 관련하여 에버기븐호의 선원들은 당시의 강풍을 좌초의 원인으로 주장하고 있고, 수에즈운하관리청은 에버기븐호의 과실을 원인으로 주장하고 있다.
◆ 수에즈 좌초 사고로 인한 환경 피해는?
한편, BBC는 수에즈 운하 좌초 사고로 환경 오염이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BBC는 “수백대의 배가 장시간 정박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황(SO2) 농도가 지중해 운하 정상 수치의 5배까지 올라갔다” 고 전했다.
그나마 기름 유출과 같은 피해는 없었다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이다. 만약 발생했다면 보상액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