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2%가 수에즈 운하 통행료
중동전쟁 중 수에즈 운하 문 닫은 후로 대체항로 필요성 제기
이번 좌초 사고로 러시아, 중국, 이스라엘, 사우디 등 개발 및 홍보 각축전

왜 이집트는 민감하게 반응할까?
◆ 수에즈 운하 좌초 사고로 명예 실추 걱정
[월드투데이 전유진 기자] 수에즈 운하를 관리하는 이집트는 이번 사고에 대하여 예민하게 반응해왔다. 사고가 수습된 지 10일 정도 지나자마자 사고의 원인으로 선주의 잘못임을 발표하고 1조 원 상당의 배상금을 요구했다. 선주 측이 충분히 조사할 시간도 없었는데 배상금을 요구한다고 강하게 반발할 만한 짧은 기간이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수에즈 관리청은 각종 외신보도를 통하여 이번 일이 수에즈 운하의 명예를 훼손시켰다고 강하게 주장해왔다.
이집트가 이번 사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있다. 작년 수에즈 운하로 56억 달러(약 6조2200)억 원의 통행료 수입을 올렸는데, 이집트에서는 해당 수입이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약 2%를 차지할 정도로 주요한 근간이다. 국가 경제의 기둥인 운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음이 한 척의 배로 인하여 만천하에 드러나버렸으니 국가 명예 훼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 민감한 문제는 따로 있다. 수에즈 운하를 대체하는 무역로를 홍보하는 나라들이 이번 사고를 계기로 속속 등장했기 때문이다.

◆ 잠시 알아보는 수에즈 운하의 역사
수에즈 운하 대안 항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잠시 수에즈 운하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해야 한다.
19세기 말 등장한 수에즈 운하는 최단항로를 자랑했지만, 운하의 폭과 길이가 제한되어 있어 선박의 화물 적재량 증대에는 적합하지 못했다. 수에즈 운하는 주요한 길이었기에 해당 운하의 조건에 맞춰 배들도 여러 제한을 받은 것이다.
1970년대 말, 중동전쟁으로 수에즈운하는 잠시 문을 닫았다. 잠시 문을 닫는 새에 일본의 초대형 원유운반선이 등장한다. 유럽과 미국으로의 원유 운송 기능을 극대화한 배이다. 운하가 아니어도 더 큰 배로 갈 수 있는 대안이 새롭게 등장한 상황에서 수에즈 운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그때부터 수에즈 운하 대안을 모색하는 세계 물류업계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번 수에즈 운하사고로 선박 자체가 운하를 완전히 막을 수 있다는 점을 전세계가 확인했다. 운하의 안정성에 물음표가 생기고, 다른 대안의 필요성이 다시 대두된 것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이집트는 명예 훼손 우려가 아닌 더 나아가 수에즈 운하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에 두고 발톱을 세운 것이다.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여야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알아흐람 등 현지 언론은 패권 성향을 드러낸 강대국들이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집트의 불행인 수에즈운하 좌초 사고를 이용하고 있다며 경계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 대체항로 필요성 대두
실제로 국제사회는 수에즈 운하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하여 새로운 운하를 살피고 있다. 4월 22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를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이에 제안된 항로들을 살펴보자.

◇ 러시아, 북극해항로
유리 트루트네프 러시아 부총리는 3월 31일, 북극해항로의 경제성 조사를 지시했다. 북극해항로가 수에즈 운하를 능가하는 경쟁력을 갖추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에 관해 연구하라는 취지다. 사고가 발생한 지 8일만이다.
북극해항로는 서유럽, 러시아, 중국을 잇는 1만4816km의 무역로로 이 중 약 50%가 러시아 인근 해안선을 지난다. 최대 장점은 동북아와 유럽의 해상운송 거리가 수에즈운하 이용 때보다 훨씬 짧다는 것이다. 북극해항로를 이용하면 독일과 일본의 교역 거리가 1만600km다. 수에즈운하보다 무려 7600km 단축된다
단점은 북극 결빙이다. 1년에 5, 6개월만 운영이 가능하고 여름철에도 쇄빙선을 사용해야만 한다. 수에즈운하보다 거리가 짧지만 비용은 최대 3배 비싼 까닭이다.
지금도 운영되고 있지만 지난해 물류량 역시 3000만 t으로 수에즈운하의 12억 t보다 훨씬 적다. 러시아는 2030년쯤이면 지구온난화로 북극해항로가 상시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은 이전부터 실크로드를 재현하는 21세기 육해상 경제영토 확장사업 ‘일대일로’를 추진해왔다. 이번 수에즈 운하 사고 이후 바로 관영 영자 신문에 야심을 드러냈다. 특히나 중국 철도의 우수함을 집중 조명했다. 육상 무역로를 홍보하려는 목적으로 화물선보다 정시 도착시간 준수 사례가 많다는 강점 역시 내보였다. 실제로 사고 발생 후 중국에서 독일 함부르크로 보내는 긴급 화물운송을 사고 전보다 약 35% 늘렸다.
해상 무역로 개발을 위하여 박차도 가하고 있다. 러시아와 같이 북극해를 일대일로와 연결하기 위한 ‘북극 실크로드’ 연구 역시 같이 진행하는 중이다.

◇ 이웃국가들도 뛰어드는 대체항로 각축전
중국과 러시아 외에도, ▲이집트의 카이로와 룩소르를 연결하는 항로도 와 대체 항로로 언급되고 있다. 이는 고대 항로를 재현한 것으로, 에버기븐호와 같은 초대형 선박 항해는 어렵지만 소형선박의 통항은 가능해 수에즈 운하의 의존성을 28% 정도는 줄일 수 있다.
▲이스라엘의 홍해와 요르단의 아카바만을 연결하는 운하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타당성 조사 결과에 의하면 5년 안에 준설이 가능하고, 영국 또한 해당 항로 건설을 도울 수 있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국제운송회랑도 제기된다. 이는 인도 뭄바이에서 이란, 중앙아시아를 거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7200km를 연결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이란이 핵개발 의혹으로 미국과 EU의 오랜 제재를 받은 통에 21년 동안 사업이 거의 진척되지 못했다. 이번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를 복원할 뜻을 밝히고 수에즈운하 좌초 사고까지 터지자 예전 협약을 다시 꺼내며 기회를 다시 노리고 있다.
이집트와 인접한 이스라엘은 ▲에일라트-아슈켈론 파이프라인(EAP)을 다시 개발할 뜻을 밝혔다. EAP는 홍해에 면한 남부 항구도시 에일라트에서 지중해에 면한 북부 항구도시 아슈켈론을 잇는 254km의 송유관이다. 현재 하루 120만 배럴의 원유를 보낼 수 있으며 시설 개·보수가 이뤄지면 지금보다 몇 배 많은 원유를 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이를 대대적으로 개발하기는 어렵다. EAP를 활성화하면 수에즈 운하가 타격을 받는데, 이스라엘은 이집트와의 우호관계가 중요하기에 선뜻 이를 선택하기 어렵다. 이스라엘은 적대적인 이슬람 국가에 둘러쌓여 아랍권 최초로 수교를 맺은 이집트와의 우호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또한 수에즈운하와 가까운 ▲홍해 신도시 네옴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지금은 큰 위협은 아니지만, 네옴과 주변 인프라가 활성되고 사우디와 이스라엘 관계가 개선되면 수에즈 운하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 이라크와 시리아를 통과하는 방안도 거론됐으나 항로 길이가 너무 길어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