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연합 '모두의 전선', 상원에서 6석 잃어
임기 2년 남은 페르난데스 정권, IMF 협상 앞두고 험로 예상

[월드투데이 전유진 기자] 지난 14일 아르헨티나에서 진행된 상하원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 페르난데스 정권의 험로가 예상된다. 아르헨티나의 최근 상황부터, 여당이 선거에서 패한 이유를 짚어본다.

[사진=중간선거 패배 결과를 알리고 있는 아르헨티나 신문/REUTERS,연합뉴스]
[사진=중간선거 패배 결과를 알리고 있는 아르헨티나 신문/REUTERS,연합뉴스]

◆ 중간선거 격인 상하원의원 선거

아르헨티나의 이번 상하원의원 성격은 4년 임기의 반환점을 앞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와 마찬가지였다. 페르난데스가 속한 중도좌파 여당 연합인 '모두의 전선'은 기존 상원 의원은 41명, 하원은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120명이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상원의원 72명 중 24명, 하원의원 257명 중 127명을 선출했다.

[사진=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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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결과

선거 결과 여당 연합의 상원 의석은 35석으로 줄어들었고, 40년 만에 상원 다수당 지위를 잃게 됐다. 잃은 6석은 마우리시오 마크리 전 대통령이 이끌던 친시장주의 연합인 '변화를 위해 함께'가 그대로 가져갔다. 하원에서는 더 많은 의석을 잃었다. 대통령인 페르난데스의 힘이 약해지고, 야당과 군소정당이 득세하면서 아르헨티나에 파장이 예상된다.

◆ 예비 선거 결과 결국 뒤집지 못했다

이번 선거 결과는 미리 예고된 바 있다. 지난 9월 치러진 예비선거에서 '모두의 전선'은 전국 득표율 30%를 조금 웃돌았다. '변화를 위해 함께' 정당보다 뒤쳐졌다.

예비선거는 일정 득표율 미만의 군소 정당을 걸러 내기 위해 진행하는 선거다. 본선거처럼 전국 단위 의무 선거라 국민의 여론을 선거로 확인할 수 있어 비교적 본선거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한다.

위기감을 느낀 여당은 본선거에서는 다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진행중인 가운데 페르난데스 정권은 생필품 가격을 동결하며 물가 상승률을 잡으려 했고, 최저임금을 인상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도 유권자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 눈에 띄는 제 3당 부상

아르헨티나에는 양대 연합이 있다. 페론주의를 표방하는 중도 좌파 연합인 '모두의 전선'과 친시장주의를 내세우는 중도 우파 연합인 '변화를 위해 함께'이다.

이번 선거는 상원에서는 모두의 전선 대신 변화를 위해 함께가 더 앞섰다. 모두의 전선이 잃은 6석을 전부 변화를 위해 함께가 가져갔다.

주목할 지점은 하원선거이다. 하원은 이 양대 연합이 아닌 극우, 극좌 정당이 주목을 받았다. 그 중 한 명은 극우 경제학자 하비에르 밀레이(51)이다.

[사진=말레이/AFP,연합뉴스]
[사진=말레이/AFP,연합뉴스]

말레이는 현 정부와 직전 보수정권을 두루 비판하며 반기득권 이미지를 구축했고, 주로 젊은 남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선거구에서 당선돼 하원에 입성했다. 더벅머리로 유명한 그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기후변화가 허구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비슷한 논조이다. 말레이가 이끄는 '자유전진'을 포함한 자유주의 정당 연합은 이번에 하원에서 5석을 확보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한편, 전국 득표율에선 '좌파·노동자 전선 연합'(FIT)이 6%로, '변화를 위해 함께'와 '모두의 전선'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FIT가 지금까지 선거에서 얻은 가장 좋은 결과로, 하원 의석은 2석에서 4석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사진=페르난데스 대통령/AFP,연합뉴스]
[사진=페르난데스 대통령/AFP,연합뉴스]

◆ 페론주의와 아르헨티나

페론주의는 아르헨티나에서 주축을 차지해온 이념이다. 1946년부터 1955년, 그리고 1973년에서 1974년까지 집권한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이 이를 내세운 이후 쭉 40년동안 주류 정치 이념으로 자리잡아왔다.

좌파 이념으로 구분되는 페론주의는 대중영합적 경제 사회정책, 외국 자본 배제, 산업 국유화, 복지 확대와 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자 수입 증대등을 표방한다. 실제로 후안 페론이 집권하며 민간 부문의 역할을 줄여갔고, 자유무역 대신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피해도 낳았다. 지나친 정부의 개입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왜곡된 임금 정책이 경제 발전에 부담을 주었다. 이는 결국 국제 경쟁에서 뒤쳐지게 만들었고 외채가 급속히 증가하며,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무너트렸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한편, 페론주의와 반대되는 이념은 친시장주의로 이야기된다. 친시장주의와 페론주의는 종종 번갈아 가면서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사진= 마우리시오 마크리 전 대통령/EP,연합뉴스]
[사진= 마우리시오 마크리 전 대통령/EP,연합뉴스]

◆ 여당이 신뢰를 잃은 까닭은?

페론주의가 주류 이념으로 자리 잡은 지도 40년, 그동안 페론주의 정권과 친시장주의 정권 하에서 모두 경제 위기가 반복되며 국민들은 실망했다. 지난 정권은 친시장주의를 표방했고 당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으나 페론주의는 이를 해결할 수 있음을 내세우며 이번 정권의 여당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지 않았고, 이에 제3당을 택하는 유권자가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도 겹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연 50%에 달하는 높은 물가 상승률과 높아지는 빈곤율,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에 대한 실망감이 이번 선거로 나타난 것이다. 특히 고위층의 백신 새치기 접종 스캔들이나 봉쇄 기간 대통령 관저에서의 '노마스크' 파티 논란 등도 정부에 타격이 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여당이 상원 다수당 지위를 잃은 상황에서 의회에 극우-극좌 새 얼굴들이 들어오면서 불확실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사진=페르난데스 대통령/EP,연합뉴스]
[사진=페르난데스 대통령/EP,연합뉴스]

◆ 여당 내 갈등 문제도

험로가 예상되는 이유 중 하나는 여당의 분열이다. 예비선거 패배 후 여당은 비교적 온건 성향인 페르난데스 대통령과 강경 좌파에 가까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부통령 겸 전 대통령 간에 균열이 노출되기도 했다.

예비선거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는 본선거 결과로 이미 약해진 여당연합의 결속이 다시 한번 크게 흔들려 정국 혼란이 나타날 우려도 있다.

◆ 예상되는 페르난데스 정권의 국정 운영 어려움

이번 중간선거 결과로 페르난데스 정권은 남은 2년 국정 운영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아르헨티나가 중요하게 처리해야하는 국제통화기금(IMF)과의 부채 협상 등 어려운 과제들이 많은 상황인데, 여당이 다수당 지위를 놓쳐 의회의 지지를 기대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에 의하면 미국 컨설팅업체 메들리 글로벌 어드바이저스의 이그나시오 라바우이 연구원은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여당 연합 내부의 불만과 인플레이션 등 산적한 경제 문제를 안은 채 정치적 힘을 거의 잃은 상태로 임기 후반을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중간 개표 결과가 발표된 후 "IMF와 지속가능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며 “인플레이션 등에 맞설 장기 경제계획안을 내달 초 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극우 성향으로 유명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AFP/연합뉴스]
[사진=극우 성향으로 유명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AFP/연합뉴스]

◆ 남미의 양극화 심화

한편, 극우 및 극좌 정당의 부상은 남미 전체에서 나타나고 있는 경향이다. 다음 주 대선이 예고된 칠레 역시 그동안은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정권이 번갈아 집권했으나 현재는 우파 후보와 좌파 후보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 이번 니카라과 대통령 선거,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 곳곳의 나라에서 극우 및 극좌 정치인들이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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