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으로 바라본 고요한 세상의 행복, 영화 '리슨'

[사진=워터홀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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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투데이 박한나 기자]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듯, 들리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듣는 것'은 인지하는 것이 아닌, 온몸으로 집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리슨'은 강제 입양을 앞둔 한 이민 가정의 이야기를 담는다. 가난한 이민자 출신이자 3남매를 키우고 있는 '벨라'는 당국의 오해로 아이들과의 이별을 앞두게 된다. 처절한 가난과 침묵하는 사회 시스템으로 그 누구도 그녀와 가족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 상황 속, 이들의 이별의 시간은 가까워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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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아무문제 없어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미래의 사자상과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영화 '리슨'은 아나 로샤 감독의 데뷔작이다. 실제로 아나 로샤 감독은 강제 입양이라는 이슈에 대해 감독으로서, 엄마로서 깊은 아픔을 느껴 그 진심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실제 청각장애를 가진 배우 메이지 슬라이의 시선으로 전해지는 저릿한 감정은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쓰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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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영화 '리슨'은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세상과 가난의 고통은 실제 만연하게 행해지고 있는 '강제 입양'을 바탕으로 재해석되어 스크린에 비친다. 오해로 인해 강제 입양 위기에 처한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감성적으로 그려내는 동시에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듣지 못하지만 맑은 눈동자를 갖고 있는 '루'와 그런 딸에게 세상을 들려주고 싶은 엄마 '벨라'의 마음은 러닝타임 내내 오롯이 오감으로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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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곳들은 농아를 원치 않는다는 것인가요? 저희는 루를 원합니다"

실직과 밀린 월급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는 벨라의 가족은 런던 교외에 살고 있다. '복지국'이라는 이름과 달리 그들 가족에겐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만 요구할 뿐, 그들의 속 사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는 없어 보인다. 그리곤 우연히 발견된 딸 '루'의 몸의 멍 자국은 교사의 신고로 단숨에 벨라의 가족을 생이별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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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강제 입양 절차만을 앞두고 유일하게 허락된 단 몇 분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소리를 듣지 못하는 '루'와의 수어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되레 이에 반발하는 '벨라'를 '공격적'이라는 이름의 낙인을 붙여버린다. 진정한 소통보다는 낡은 시스템의 낳은 폐혜들은 오롯이 벨라와 그의 가족들의 몫이 되어버린다. 

영화 '리슨'은 해맑고 푸른 '루'의 눈을 통해 비치는 종이 카메라 속 인물들과 그 주변을 주목한다. 너무 사랑하지만, 그것만으로 안되는 세상의 차가움을 나타낸다. 또한 아동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영국 사회 속에서 지나치게 치중된 보호법의 어두운 민낯을 들춘다.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생계유지라는 가족의 기능적 측면의 부족함만을 지적하는 시스템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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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보이는 '리슨'은 도통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생물학적인 청각인 소리를 인지하는 것이 아닌 모든 감각을 열어 진정한 소통으로 이어지는 '듣는다'를 말한다. 이처럼 답답한 상황에 감독은 놀라울 만큼 담담하게 그려낸다. 루를 연기한 실제 청각장애인 배우 '메이지 슬라이'의 수어와 몸짓, 표정은 그 어떤 대사보다 간절하고 명료하게 들린다. 

분명 시스템을 만든 것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때론 이 '시스템'은 사람을 사람답게 행하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진정으로 '시스템' 안에 있어야 할 이들이 아닌 '시스템' 밖에 있는 이들을 향해 터무니없는 잣대들로 이들을 더 괴롭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주위를 둘러보게 만든다. 

그리곤 생각하게 된다. 각자에게 행복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행복으로 보이지 않을 소소한 일상이 그리고 부족해 보이는 무엇인가가 누군가에겐 '세상의 전부'가 그리고 '행복'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결코 행복은 절대적이지 않다. 러닝타임 7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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