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택소노미 초안 공개, 독일·오스트리아 반발
원전에 대한 국내 및 세계 입장

[월드투데이 김수민 기자] EU가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했다.

지난 2일 유럽연합(EU)이 원자력 발전과 천연가스 등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한 '택소노미(Taxonomy)' 초안을 공개했다.

택소노미는 어떤 에너지원이 친환경·녹색 사업인지 아닌지를 알려주는 기준으로 '녹색 분류체계'라고도 하며, 하나의 '투자 기준'으로 작용한다. 서구에서 먼저 도입된 개념으로 차근차근 법제화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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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가 내세운 조건부 친환경 에너지

이번 초안에 따르면 원자력 발전 및 천연가스에 대한 투자가 '친환경'으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원전의 경우,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할 계획과 이를 시행하기 위한 예산 및 부지가 마련되어야만 한다. 또, 높은 수준의 안전 기준을 바탕으로 수명 연장을 계획한 기존 발전소 혹은 2045년 이전에 건설 허가를 받은 신규 원전은 친환경으로 분류될 수 있다.

천연가스 발전소는 kWh(킬로와트시)당 탄소 배출량 270g 미만이고 오염이 심한 기존 화석연료 발전소를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 2030년 12월 31일까지 건축 허가를 받고 2035년 말까지 저탄소 가스로 전환한다는 전제 조건 하에 '친환경'으로 분류된다.

앞서 2020년 6월 처음으로 그린 택소노미를 발표한 EU는 지난 1년간 원자력의 녹색 분류를 놓고 갈등을 빚어왔다.

[사진=AP통신/연합뉴스]
[사진=AP통신/연합뉴스]

■ 반대-독일·오스트리아 등

탈원전을 지향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포르투갈, 덴마크 등은 이번 EU의 결정에 대해 소송까지 예고하며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독일 측은 천연가스 분류는 인정하면서도 원자력의 위험성을 언급하며 원자력은 결코 기후 변화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EU가 조건으로 건 핵폐기물 처분과 부지 확보에 대한 방안이 뚜렷하게 나온 바 없다.

환경 운동가들은 천연가스와 원자력 모두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천연가스 발전 시 화석연료 발전 시와 비교했을 때 탄소 배출량이 반으로 줄어들지만, 지구 온난화 주범인 메탄이 유출된다.

또 원자력 발전의 경우, 탄소 배출량은 극소량이지만 방사능 폐기물 처분에 대한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이상 친환경으로 분류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제 환경단체 세계자연기금(WWF)에서도 EU 결정에 대해 그저 눈을 감고 최선의 결과를 바라는 것이라며 지적했다.

[사진=EPA/연합뉴스]
[사진=EPA/연합뉴스]

■ 찬성-프랑스·폴란드 등

이와 같은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찬성 측 의견이 반대보다 훨씬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0월 기후 변화 및 러시아 측 가스 공급 중단 사태 등으로 천연가스 수급이 불안해졌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 방법인 원자력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녹색 분류체계에 원자력을 포함시키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원자력 발전이 전력 생산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프랑스와 폴란드, 체코, 핀란드 등은 원자력을 녹색 에너지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전 세계도 원전으로 복귀 중

세계의 흐름도 원전 복귀로 기울고 있다. 

지난해 이미 러시아와 중국은 원전을 각각 녹색 분류체계와 청정에너지로 분류했다. 미국 또한 청정에너지기준(CES)에 원전을 포함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캐나다도 원전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국제회의나 정상회담 논의에서 원전 및 SMR(소형원자로)이 국제기후변화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일본과 인도 등도 수차례 원전이 탄소 중립에 기여할 에너지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진=환경부 로고]
[사진=환경부 로고]

'K-택소노미' 현황은

원전을 친환경에서 공식적으로 배제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지난해 12월 30일 환경부와 금융위원회는 한국판 택소노미 이른바 'K-택소노미' 최종안을 공개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전이 초저탄소 에너지원으로 환경 개선에 유리하다는 의견에도 불구하고 원전은 K-택소노미에서 빠졌다.

그간 환경부는 EU가 원전을 택소노미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K-택소노미에서 원전을 논의에서 제외해왔다. 이번 EU의 초안으로 국내 녹색 분류체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액화천연가스(LNG)의 경우 부분적으로 포함시켰다. 'LNG·혼합가스 기반 에너지 생산'과 'LNG 기반(블루수소) 생산'은 전환 부문에 조건부로 넣었다. 환경부는 '산업계의 요구'로 LNG를 택소노미에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메탄을 주성분으로 하는 LNG를 고온·고압에서 수증기와 반응시키면 수소가 생산되지만, 동일한 열량을 만들기 위해서는 석탄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점에서 친환경으로 보기 힘들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환경부가 내세운 조건도 현재 전혀 개발되지 않은 기술을 적용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라 비현실적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한편, EU가 공개한 초안은 27개 회원국과 전문가 패널의 검토를 거쳐 이달 중 최종안이 공식 발표된다. 초안에 대해 EU 회원국들이나 의회가 다수결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한 그대로 시행된다.

원전이 포함된 그린 택소노미가 확정될 경우, 원전 건설에 대한 투자 유치와 금융 조달이 용이해진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급격히 쇠퇴한 원전 산업에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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