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무기와 탄약 없이는 반격 시작할 수 없어"
우크라이나의 진격 방향은 어디?
러시아, 돈바스 핵 사일로 건설… 크림반도는 참호 겹겹이 둘러싸

[월드투데이 우현빈 인턴기자] 2022년 늦겨울, 러시아는 정례 군사훈련을 위해 병력을 집결시켰다. 크림반도 침공보다 훨씬 크게 집결한 러시아의 병력은 그 '훈련'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정작 러 병사들은 정말 훈련인 줄만 알았던, 우크라이나 침공의 시작이었다.
전문가들은 침공이 몇 주, 최대 6개월이면 충분하다고 봤다. 심지어 푸틴은 당시 이 "특별 군사 작전"이 단 일주일이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뜻밖에도 우크라이나는 코미디언 대통령 젤렌스키를 중심으로 사력을 다해 맞섰고, 러시아는 무리하게 진격하다 늪에 빠졌다. 봄의 라스푸티차였다. 러시아군은 많은 병력과 장비를 고스란히 내어주며 우크라군에 밀려나기 시작했고, 서방의 지원이 더해지며 우크라이나는 이번 침공으로 잃었던 영토를 빠르게 수복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우크라군을 멈춰 세운 건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군의 진격을 막아 세웠던 바로 그 라스푸티차였다. 우크라이나 지역에는 한 해 두 번의 라스푸티차가 찾아오는데, 가을의 라스푸티차가 찾아온 것이다. 전쟁의 양상은 국지전과 소모전으로 변했고, 전선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유튜버들이 “전선 변화가 거의 없어 영상 소재가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라스푸티차가 끝나고 우크라이나가 약간의 영토를 더 수복했지만, 전선에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다.

우크라이나 대반격 임박했나?
지난 24일, 우크라이나의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육군 사령관은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군이 바흐무트에서 심각한 병력 손실로 힘을 잃고 있으며, 키이우와 하르키우에서처럼 우리는 이 기회를 활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최전선에서 바흐무트 사수 의지를 내비친 직후였다. 이미 라스푸티차 이후 양국의 격돌을 예상하던 상황에서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자, 여기저기서 우크라군의 대반격이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바로 전날인 23일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직은 대반격을 시작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젤렌스키는 그 이유를 "무기와 탄약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말하면 '무기와 탄약만 충분하면' 반격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24일 올렉산드르의 발언이 '대반격 예고'로 분석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젤렌스키는 서방의 이러한 지원에 더 속도를 내줄 것을 계속해서 요청하는 한편, "전차, 대포, 장거리 미사일 없이는 반격을 시작할 수 없다"고 밝혔다.

EU에서는 이미 21일 우크라이나에 100만 발의 탄약을 제공할 것을 결정했고, 슬로바키아와 폴란드는 이미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보내기 시작했다. 미국 역시 4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에 패트리엇 미사일과 하이마스 탄약을 추가 지원할 계획을 발표한 바 있으며, 지난 3월에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탄약 부품을 수출하는 방식의 우회적 지원이 제의된 만큼 한국과의 공동 지원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서방의 이러한 지원이 얼마나 빠르게 이루어질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가 이번 전쟁의 향방을 가르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크라군의 기수는 어디로?
그렇게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기 시작하자, 우크라군의 다음 목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가 이번 침공 이전의 영토를 수복하는 것으로 만족하겠느냐는 것이었다.
BBC에서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몇 가지 시나리오를 내놨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전쟁학과 교수 바버라 잔체타는 이 상황이 길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바버라는 평화협상 전까지 러시아의 계속되는 공격이 우크라이나의 기반 시설을 파괴하고, 우크라이나 국민이 그에 맞서 버텨내는 양상이 계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러·우크라 양국 모두 전쟁의 의지가 확고하므로, 서방의 지원이 확고히 유지된다는 전제하에 2023년 말까지는 전선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유럽 주둔 미 육군 前 총사령관 벤 호지스와 워싱턴의 과학자 안드레이 피온트콥스키는 우크라이나가 2023년 내로 크림반도를 포함한 자국 영토를 완전히 수복하고 승리를 선언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인들의 결속력과 의지를 높게 평가하는 한편, 멜리토폴이 이러한 시나리오의 핵심 격전지라고 봤다. 멜리토폴은 크림반도 북동쪽의 도시로, 러시아와 크림반도를 잇는 교통의 핵심이다. 만약 우크라군이 멜리토폴을 점령하면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개입이나 영향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게 된다.
이스라엘 군사 전문가 데이비드 젠델만은 다양한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놨다. 데이비드는 러시아 징집병의 절반이 아직 배치되지 않고 훈련 중이라는 점을 들어, 바흐무트와 아우디이우카에서처럼 좁은 폭으로 천천히 우크라군을 격파하는 한편,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반 시설과 후방을 지속해서 공격하며 지구전 전략을 펼치면 러시아에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봤다. 또 한편으로는 러시아군이 헤르손에서 퇴각하면서 우크라군에 상당한 여유가 생겼다며, 멜리토폴 외에도 스바토베를 점령하는 것이 우크라군의 승리에 있어 핵심적이라고 분석했다. 우크라군이 스바토베를 점령할 경우, 미수복 상태의 동부 영토 전역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스바토베가 동부 지역의 관문인 셈이다.
종합하면,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가장 유의미한 진격 방향은 스바토베가 있는 동쪽과 멜리토폴이 있는 남쪽이다. 두 방향으로의 진격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빠르게 이루어지는지가 이번 전쟁의 종결 시점과 결과를 좌우할 것이다.
러시아의 대응은?
지난 4일,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여러 겹의 참호를 판 사실이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를 통해 전해졌다. 이 같은 사실은 상업위성업체 막사(Maxar)의 인공위성 사진 분석을 통해 확인됐다. 이 참호는 각각 150cm 깊이로, 수 킬로미터씩 이어져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가 이렇게 크림반도에 방어를 집중하는 이유는 크림반도 점령이 푸틴 대통령의 위상을 공고히 해준 업적이기 때문이다. 또 자치국 형태로 러시아 연방에 가입한 도네츠크, 루한스크나 크림공화국와 달리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은 러시아의 연방시로 편입되었다. 이미 크림을 실효지배 중인 러시아 입장에서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을 내주는 것은 점령지역을 뺏기는 것이지만, 크림반도를 내주는 것은 자국의 영토를 빼앗기는 일인 셈이다.
또 러시아는 이렇게 병력과 장비를 크림반도로 집중하는 한편, 돈바스 지역에 핵무기 배치를 선언하고 사일로(미사일 격납고)를 건설하고 있다. 이러한 핵 위협은 우크라이나가 이번 침공 전 영토를 수복하더라도 돈바스로 진입하지는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편, 지속된 전쟁과 무리한 진격에 이은 패퇴로 많은 장비와 탄약, 병력을 손실한 러시아는 최근 북한과 거래를 진행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 30일(현지 시각) 러시아가 북한에 식량을 주는 대가로 탄약을 확보하는 거래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또 같은 날 러시아의 친정부 인터넷 매체 '루스카야 베스나'는 북한이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포탄과 무기를 가진 보병과 포병을 파견하기로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또 미국 국무부는 중국의 러시아 무기 지원 가능성을 꾸준히 언급하고 있는 만큼 중국의 지원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러한 대응은 서방의 우크라이나 대응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장기적인 지구전을 준비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크라이나가 더 많은 지원을 받더라도, 결국 지구전으로 이어지고 전쟁이 점점 길어지면 러시아에 더 유리한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어떤 식으로든 올봄에 다시 전쟁의 양상이 크게 격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양쪽 진영에서는 서로를 비난하며 똑같이 "역사가 판단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대반격'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고 영토를 되찾을 수 있을지, 누가 승자가 되어 역사서에 이날을 어떻게 기록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