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투데이=경민경 기자] 지난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는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을 구금했다.
아웅산 수찌는 불법 수입된 워키토키(소형 무선 송수신기)를 소지 및 사용한 혐의, 코로나19 방역수칙 위반 혐의, 선동 혐의, 전기통신법 위반 혐의, 뇌물수수 혐의, 공무상비밀엄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지난 12일엔 자연재해관리법 위반 혐의가 추가됐다.
이와 함께 군부는 아웅산 수찌를 반부패법과 관련해 조사를 진행한다고 밝힌 바, 이 모든 혐의가 인정되면 수찌 고문은 40년 안팎의 징역형을 선고받게 된다.

아웅산 수찌가 미얀마 군부에 의해 구금된 지 12주가 지났다. 군부 대변인은 코로나19를 이유로 접견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의 변호인단은 아웅산 수찌를 직접 대면하지 못하고 화상회의로만 소통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아웅산 수찌를 정치에서 축출하려고 하고 있다. 한 미얀마 해직기사의 소식에 따르면 군부는 아웅산 수찌를 장기적으로 구금하기 위해 여러가지 죄명으로 기소 중이라고 한다. 미얀마 군부의 구금, 그리고 미얀마 국민들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석방 요구. 아웅산 수찌는 어떤 인물일까.

국부 '아웅 산'의 딸
아웅산 수찌는 미얀마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국부 '아웅 산'의 딸이다.
15살 때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아웅산 수찌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경제학 석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그곳에서 영국인 남편 마이클 에어리스를 만나 결혼했고, 두 아들을 낳았다.
1988년, 아웅산 수찌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30여 년의 이르는 외국 생활을 멈추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8888 항쟁'과 '민족민주연맹'(NLD) 그리고 노벨평화상
수찌가 고국으로 돌아온 1988년은 버마에서 '8888민주화 운동'이 발생한 시기다. 버마의 국민들은 건국의 아버지 아웅 산의 딸인 수찌가 행동해 주길 소망했고, 그렇게 아웅산 수찌의 민주화 운동이 시작됐다.
'8888 항쟁'이 발생한 직후인 9월 18일, 총과 칼을 이용한 유혈진압을 단행하던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킨다. 아웅산 수찌는 이에 대응해 민족민주연맹(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을 창설해 의장으로 활동했고, 네 윈 장군을 권좌에 물러나게 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수찌는 1989년 가택연금에 처해진다.
서방의 압력을 받은 군부는 1990년 5월 총선을 실시한다. 이때, 아웅산 수찌가 이끄는 민족민주연맹은 82%의 지지를 얻으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군은 총선 결과를 거부했고, 선동을 이유로 들며 아웅산 수찌를 가택연금한다. 그렇게 군부는 2010년까지 아웅산 수찌를 향한 가택연금과 해제를 반복한다.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한 채 정권을 잡고 있는 군부,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고 있는 아웅산 수찌는 최대의 위험이었다. 게다가 국민적으로 높은 존경심을 사고 있는 국부 아웅 산의 딸이었기에 아웅산 수찌를 함부로 제거할 수 없는 상황. 그렇게 군부는 아웅산 수찌를 14년이라는 세월 동안 구금했다.
아웅산 수찌는 가택연금 중이던 1991년, 민주화 운동의 공적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다. 199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 하지만 연금 상태였던 그녀 대신 그녀의 두 아들과 남편이 수상식에 참석했다.

2015년, '문민정부' 1기 탄생
2010년 야당을 철저히 배제한 상태에서 진행된 20여 년 만에 열린 총선은 군부가 압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해 아웅산 수찌의 가택연금도 종료됐다.
2012년에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아웅산 수찌, 85%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된다. 아웅산 수찌가 이끄는 민주민족동맹은 45개의 선거구 중 43곳에서 승리하기도. 그러나 친 군부 성향인 통합단결발전당(USDP)이 의석의 75%가량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NLD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리고 2015년 11월, 민족민주연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첫 번째 문민정부가 탄생한다. 군부의 몫인 25%를 제외한 의석 75%에서 88%를 쓸어 담으며 전체 의석 중 67%를 차지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 가족을 둔 국민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법률에 따라 아웅산 수찌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못 했다. 의회는 아웅산 수찌의 최측근인 윈 민을 대통령으로 임명, 수찌는 외교부장관과 대통령고문 직책에 임명됐다.

'로힝야 위기', 국민들의 지지 vs 인권, 국제사회 위상
2017년 8월 25일, '로힝야 사태'가 발생해 아웅산 수찌는 국제적인 비난을 받는다.
이슬람교가 주류인 로힝야 저항군은 탄압에 맞서 라킨주 경찰을 공격했다. 그러나 미얀마 군부와 경찰은 로힝야 족을 죽이는 ‘로힝야 집단학살’을 자행한 것. 당시의 사건으로 로힝야 족 수천 명이 살해되었고, 수만 명이 방글라데시로 피난을 가게 됐다.
UN은 이에 대해 '인종학살'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아웅산 수찌는 로힝야 족을 향한 폭력에 대해 침묵했고,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심리에선 미얀마군의 집단학살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하기까지 한다.
일각에서는 다수 민족인 불교도들의 지지와 미얀마 정부의 권력을 의식한 아웅산 수찌가 미얀마를 통치하기 위한 실용적인 노선을 취한 것으로 해석했다.
국제사회에서는 각종 수상이 철회되는 등 아웅산 수찌에 대한 국제적인 위상은 많이 낮아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웅산 수찌는 미얀마 국내적으로는 폭넓은 지지를 유지했다. 2020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는 상황에서도 국민 79%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 무너진 '문민정부 2기'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아웅산 수찌. 그가 이끄는 민족민주연맹은 2020년 11월 치러진 총선에서 또다시 압승을 거둔다. 그러나 2021년 2월 1일, 군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아웅산 수찌를 포함한 민주 인사들을 대거 구금했다.
국제사회는 이들의 석방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 쿠데타가 발생한 지 12주가 넘었지만 상황은 진전되지 않고, 더 악화되고 있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