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롤링거 르네상스, 그리스로마 문화의 아카이빙
12세기 르네상스, 아랍으로의 충격...선진 과학 전래
의학의 발달,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넘어 산업혁명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월드투데이 최도식 기자] 르네상스는 하루 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흔히 르네상스라고 하면 14~16세기 이탈리아를 기점으로 전 유럽에 퍼진 고전시대 문예부흥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학 작품이나 미술품들이 발견 및 연구되면서 중세 유럽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전에도 르네상스라 불릴만한 사건들이 존재했다. 

 

카롤링거 르네상스

8세기 말 프랑크 왕국의 카를대제에 의해 일어난 '카롤링거 르네상스' 또 십자군 전쟁으로 아랍의 선진 학문이 유럽에 유입된 '12세기 르네상스'를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카롤링거 르네상스는 지역적인 범위에서는 프랑크 왕국에 국한되어 있지만 발생 시기나 역할을 놓고 봤을 땐 중요도가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로마가 몰락하면서 이들의 찬란했던 문화는 남부 유럽에서만 일부 보존되고 있었고, 유럽의 본토를 점령한 게르만인들은 로마의 유산에 대해 무지했다. 프랑크왕국은 카를대제에 이르러서야 고전시대 문헌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고전시대의 문헌들을 필사해 왕국 차원의 보존이 이뤄졌다.

건축술이 발달했던 로마. 아치는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건축법이다.
건축술이 발달했던 로마. 아치는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건축법이다.

 

카를대제는 고전에 대한 아카이빙 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에 학교를 설립하여 문법·수사학·논리를 비롯해 산술·기하·음악·천문 7과목을 교육하는 등 프랑크 왕국의 전반적인 교육 수준의 향상을 도모했다. 그 결과 이 시기에 많은 학자들을 배출할 수 있었으며, 고전문화가 중세까지도 보전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12세기 르네상스

유럽은 12세기에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 아랍으로부터 과학 분야, 특히 발달된 의학과 철학을 수용하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기틀을 마련했다. 인본주의로 불리는 패러다임의 전환은 단연 의학의 발달로 가능해진 것이다. 아랍으로부터 의학이 전래되기 전까지만 해도 프랑크의 의사들은 두통환자의 두개골을 가르거나 종기 부위를 절단하는 등 전문적인 의학지식이 발전하지 못한 상태였다.

12세기 르네상스에 대한 유럽인들의 인식은 르네상스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인 단테의 '신곡'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신곡'에는 아랍 출신의 학자 이븐 시나와 이븐 루시드가 노아, 모세, 다윗 등 기독교 선지자들과 같은 위치에 올라있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는 과거 십자군들이 세운 라틴왕국의 흔적이 남아있다. 십자군 기사들은 중동에 자신들의 왕국을 세운 뒤 정착했고, 인접 이슬람국가들과도 교류했다.

 

이들은 모두 12세기 르네상스에 의해 유럽에 큰 파급력을 미친 인물들로 이븐 시나가 집필한 '의학대전'은 유럽대학의 교재로 사용됐다. 아리스토텔리스 저서를 해석한 이븐 루시드의 저서 역시 당시 유럽 지성계의 필독서로 널리 읽혔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비례도' 그림은 아랍으로부터 전래된 의학 서적들을 통해 탄생할 수 있었으며, 인체 매커니즘에 대한 연구는 자동화 인형인 오토마타(Automata, 자동화인형)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귀족들의 장난감이자 대중국무역의 수출품이던 오토마타는 이후 육체노동을 대신할 인간의 신체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했고 그 결과 산업혁명의 시발점인 방직기의 탄생에 영향을 주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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