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촌 도시였던 고베, 개항 이후 해운업·중공업 발달
살생을 금기시했던 전근대 일본, 육식 금지령까지...
메이지유신 이후 육식장려 정책...유럽소와 교잡종 탄생

고베항의 모습
고베항의 모습

[월드투데이 최도식 기자] 일본 고베하면 가장 먼저 고베규를 떠올릴 것이다.

일본의 간사이 지방을 대표하는 고베시는 일본의 근대화와 함께 급속도로 성장했다. 작은 어촌마을이던 고베는 오사카만에 인접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개항지로 선정됐고 이후 해운업과 중공업이 크게 발전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개항지라는 입지 덕에 서구문물이 빠르게 유입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고베를 대표하는 특산물인 '고베규'가 탄생할 수 있었다. 고베규는 메이지유신 이후 진행된 일본 식문화의 급격한 변화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

고베를 대표하는 최고급 와규, 고베규
고베를 대표하는 최고급 와규, 고베규

일본 사회는 오래 전부터 불교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천황과 공가 귀족들이 권력을 쥐고 있던 고대국가 시기 불교국가를 표방하며 전국에 사찰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막부 성립 이후에도 무사계급이 자신들의 문화적·사상적 기반으로 선종(禪宗) 불교를 택하면서 불교문화가 지속됐다.  

이러한 불교의 영향으로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살생을 금기시하는 풍습이 자리잡았고, 대신 생선을 주 단백질원으로 섭취하면서 사시미, 스시 등 생선요리가 발달하게 된다. 소의 식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사례는 675년 덴무 천황 집권기에 내려진 육식 금지령이 있다. 불교에 깊이 감화된 천무 천황은 소, 말, 닭, 개, 원숭이의 식용을 금지하는 조치가 내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의 육식은 천황에 의해 재개됐다. 메이지 천황은 육식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1,000년 이상 금기시됐던 소의 식용 섭취를 직접 선보이게 된다. 

고베규를 사용한 철판스테이크 요리
고베규를 사용한 철판스테이크 요리

이처럼 일본이 급격하게 식문화 혁명을 시도하게 된 사상적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첫째로 전통문화의 전복이다. 메이지 정부는 폐도령 등 구시대의 잔해들을 청산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했으며, 이 과정에서 불교를 탄압하기도 했다. 따라서 천황이 직접 육식 선전을 한 것은 일본 사회를 관통하던 불교와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겠다는 상징과도 같은 행위이다.

둘째로 우생학의 유입을 들 수 있다. 사실 일본은 이미 1500년대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인들과 교류를 주고 받았다. 당시 오다 노부나가는 서양 선교사들의 복장을 따라하는 등 서양 문명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육식문화가 유입되진 않았다. 따라서 육식문화의 확신을 단순히 문호개방의 결과로 해석하긴 어렵다.

오늘날 고베시의 전경
오늘날 고베시의 전경

메이지정부의 육식장려 정책은 서구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서구의 과학기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체형까지도 이상적인 표본으로 규정했던 우생학적 발상의 결과다. 

이러한 발상은 소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일본 토종 소와 유럽산 소의 교잡종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1887년 2,600마리의 서양 소가 수입됐고 이후 교잡을 통한 여러 번의 품종개량을 거쳐 지금의 교베규가 만들어졌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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