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브랜드 역사
납작한 트렁크, 혁신을 일으키다

[월드투데이 이하경 기자] 루이비통은 가방·의류·주얼리·신발·선글라스·시계 등을 제작, 판매하는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다. 오늘은 약 150년간 5대에 걸쳐 패션 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루이비통의 역사

[사진= 루이비통 말레티에]
[사진= 루이비통 말레티에]

루이비통의 설립자 루이비통 말레티에(Louis Vuitton Malletier)는 1821년 8월 4일 프랑스 동부 안쉐 마을의 목공소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나무 다루는 법을 배웠다. 

10살 때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의 재혼하자 고집 센 루이는 엄격한 계모와 지루한 시골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13세에 가출해 무작정 파리로 향한다.

빈털터리로 걸어서 470km 떨어진 파리에 도착하는데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루이비통은 지나던 마을의 목공소나 식당, 마구간에서 간간히 일하고 끼니를 때우며 2년 만인 1837년 파리에 상경한다. 파리로 올라오는 과정을 통해 루이는 목재를 비롯해 가죽, 가구, 염색, 자물쇠, 양철 등 다양한 재료와 제품을 다루는 기술을 조금씩 익히게 된다.

루이는 다잇 파리 생 제르만 부근에서 명성을 크게 얻던 가방 제조 전문가 무슈 마레샬(Monsieur Marechal)밑에서 일을 배우며 트렁크 메이커로서의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다. 

루이가 짠 궤짝은 깨지지 않았고, 그가 싼 짐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의 섬세한 패킹 기술은 귀족들 사이에서 최고의 패커(packer, 짐 꾸리는 사람)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고, 후에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의 부인 유제니 황후의 전담 패커(짐 꾸리는 사람)가 된다.

여행용 트렁크 개발

[사진= pixabay]
[사진= pixabay]

당시 여행 가방은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보물상자와 같이 뚜껑이 볼록한 나무 궤짝의 형상이었다. 귀족들은 보물의 도난을 막기 위해 보물상자를 튼튼하고 묵직하게 만들었다.

유제니 황후의 짐을 꾸리던 루이비통은 이런 보물상자 짐가방에 불편함을 느낀다. 무거워 옮기기도 불편하고 뚜껑이 둥글다 보니 물건을 쌓아 놓을 수도 없다. 

패션과 연회에 관심이 많았던 황후의 나들이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녀의 의상과 패물을 담은 궤짝은 늘어갔다. 파리 패션을 주도했던 황후는 임신한 몸매를 숨기기 위해 크리놀린(버팀살을 넣어 풍성하게 만든 치마) 스타일을 즐겨 입었다.

또 타조 깃털로 화려하게 장식한 외제니 스타일 모자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루이비통은 자연스레 황후의 까다로운 짐을 꾸리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보물상자를 계속 개발하게 된다. 

또, 루이는 황후가 의상마다 챙기는 패물이 각기 다른 것에 착안해 궤짝 안에 작은 칸을 만들거나 서랍을 달아 부피가 작거나 파손되기 쉬운 패물을 함께 담았다. 

1854년 루이비통의 재능을 높이 산 유제니 황후는  프랑스 파리의 '뤼 뇌브 데 까푸신느 4번가'에 포장 전문가게를 열도록 후원하고 부유한 귀족 손님까지 알선해준다. 

[사진=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
[사진=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

그의 작업장 부근에 최초의 철도 선인 '파리 생 제르맹'이 건설되는 것을 지켜본 루이비통은 교통수단의 발달로 여행의 시대가 올 것을 예상하고 여행용 가방 개발에 주력한다. 그리고, 1858년 평평한 바닥에 사각형 모양이 트렁크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를 개발했다. 

그의 예상대로 프랑스 자본주의의 성장과 19세기 산업혁명, 철도 및 수로 교통의 대중화로 여행 인구가 증가했고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루이비통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트리아농 캔버스는  가볍고 튼튼해 운반하기 편리하며 비에 젖을 우려도 적고 좁은 공간에 많이 실을 수 있어 파리의 왕족과 귀족들에게 큰 인기를 끈다. 프랑스 황후뿐만 아니라 윈저공 부부, 어니스트 헤밍웨이,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등의 저명한 고객들이 애용하며 널리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사진= 텀블러 자물쇠]
[사진= 텀블러 자물쇠]

루이비통과 아들 조르주비통은 텀블러 자물쇠라는 새로운 유형의 잠금장치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도난에 대비해 보물상자마다 자물쇠와 열쇠를 다르게 만들었기에 열쇠를 헷갈리거나 잃어버릴 위험이 컸다.  

조지 비통은 여행용 트렁크가 강도들의 표적이 되자 자신만의 열쇠 하나로 여러 자물쇠를 열 수 있는 텀블러 잠금장치를 개발했다. 루이비통은 오늘날까지도 텀블러 자물쇠를 발전-응용 시켜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 판매되고 있는 식스 텀블러는 구입 시 잠금장치의 고유 넘버와 고객 정보를 기입하는 시스템을 통해 열쇠를 분실할 경우 새로 발급받을 수 있다.

[사진= 해리후디니, 비앤비매직]
[사진= 해리후디니, 비앤비매직]

루이비통과 아들 조르주비통은 자물쇠의 강력한 효과를 선전하기 위해 미국의 유명 마술사인 해리 후디니에게 루이비통의 케이스와 자물쇠에서 탈출해 볼 것을 신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제안한다.

후다니가 이 도전에 응하진 않았지만, 이 광고는 고객들에게 '루이비통 자물쇠=안전'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사진= 루이비통]

저작권자 © 월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