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원 교수] 최근 한반도를 설명하는 단어는 ‘백척간두에 선 한반도 평화’였습니다. 코로나 위기 때문에 이 부분이 가려져 있지만, 사실 한반도 평화 현실은 2019년 2월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급전직하 하기 시작했고, 이후 별다른 해법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2020년 6월 16일에 폭파된 남북연락사무소의 모습은 한반도를 제3차 세계대전 촉발 위기로부터 구해낸 4.27판문점선언 자체를 붕괴시켜 남북관계마저 6.15시대 이전으로 돌려놓을 것 같은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한반도는 그 후 1년여 동안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평화를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로만 규정한다면, 한반도는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 즉 정전협정을 체결하면서 총성이 멈춘 후, 68년간 평화를 유지해온 셈입니다.
그러나 그 68년을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로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남과 북의 무수한 사람들이 이 어정쩡한 평화 속에서 고통과 억압을 겪어왔고, 전쟁과 다름없는 인명의 희생이 수없이 거듭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전쟁’이 멈춘 지난 68년을 ‘전쟁이 없는 평화의 상태’로 알고 살아왔지만, 실제로 남북관계는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살아있는, 그리고 3.8선 이북 지역은 지금도 엄연히 유엔사의 행정적 관할권이 우선되고 있는 ‘反 평화적’ 현실입니다.
물론 우리 사회 특히 정치권에서도 민주화 진전에 따른 국가보안법 폐지 노력이 있었고,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교류협력시대를 여는 훌륭한 하모니를 연출해 내기도 했습니다. 비록 주변 국제환경이 더 이상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이를 제약했지만, 그 역사의 동력은 오늘 이 순간에도 용암처럼 도도히 지표면 밑을 흐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는 20세기 냉전의 대리전을 이미 치렀고, 또 다시 그 이상의 대리전을 치루게 될 ‘현장’입니다. 20세기 냉전의 시작은 사회주의/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적대적 대결양상인데, 사회주의의 출발은 ‘인간의 얼굴을 한 문명’이었지만, 공산주의체제와 결합하면서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으로 변모했습니다. 자본주의도 권력현상이지만, 사회주의/공산주의도 권력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대결구도가 한반도 평화공존의 근원적인 장애요 함정이 되고 있습니다.
마치 한반도 자체가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여져서, 우리 국민이 조금이라도 한눈팔아서는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남남갈등으로 이에 대응할 에너지를 모으기보다는 오히려 국민적 에너지를 소진하는데 급급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답답한 마음 입니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핵심은 한반도 평화에 이르는 과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남북 사이의 평화공존을 이루고, 이를 지속가능한 형태로 만들어나가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대결하는 모습을 보일지라도 서로 통제범위 내에서 갈등을 관리해 왔고 한반도가 그 갈등의 끝에 다다렀던 적도 있습니다. 1994년 6월의 ‘북폭 위기’가 세계3차 3대전이 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상태였습니다. 결국 카터가 평양을 찾아가 김일성과 머리를 맞대고 핵문제 해결과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가까스로 전쟁위기를 넘겼는데, 돌이켜보면 목링 소연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런 과거로의 ‘역주행’ 가능성은 언제나 우리 목의 가시처럼 걸려있습니다.
대선 국면에서는 헤아릴 수 없는 문제가 돌출하고, 상식에 벗어난 마타도어가 판치면서 우리 사회의 분열을 조장할텐데, 남북상황이 정쟁과 분열의 도구가 될것이란 우려를 떨칠 수 없습니다.
마치 유리잔처럼 깨어지기 쉬운 ‘한반도 평화’, 이 진정한 평화를 한반도평화프로세스라는 그릇에 담아 한반도평화공존과 그 결실로서의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되풀이 되지만 되새길 수 밖에 없습니다.
윤창원
서울디지털대 교수
한국NGO학회 이사
코리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