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보수정권, 코로나19 속 연이은 실책에 국민들 마음 닫아
남미에 돌아온 좌파물결... '핑크타이드 2.0' 기대
페트로, 역대 진보 후보들 중 가장 많은 득표율, 정권교체 기대에 힘 실어

[월드투데이 김지현 기자] 이번 콜롬비아 대선에는 20명 이상의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좌파 성향의 포퓰리스트인 '구스타보 페트로'가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가 당선되면 처음으로 남미 콜롬비아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사진=콜롬비아 대선 후보 구스타보 페트로, 연합뉴스]

콜롬비아의 정치는 '특이점'이 있다. 콜롬비아가 속한 라틴아메리카의 대부분 국가가 진보 성향을 띠는 것과는 별개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특징이다. 전통적으로 우파를 지지하는 세력이 과반수인 만큼 현대 정치사 시작 이후 좌파 진영에서 대통령이 당선된 이력이 전무하다. 국가의 정치색이 뚜렷하려야 이만큼 뚜렷할 수 없다. 그랬던 콜롬비아에서 왜 페트로가 유력 후보로 떠오르게 됐을까.

국가 내부적 요인: 2016년부터 전조증상은 시작됐다

'우파 전성시대'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2016년 후안 마누엘 산토스 당시 정부가 소집한 국민투표가 기점이다. 이는 아바나에서 일어난 콜롬비아 무장혁명군 게릴라와 협상을 벌여 도출된 '분쟁 종식과 안정적, 지속적 평화 구축을 위한 최종 협정'을 비준하기 위해 진행된 투표다. 

막상 투표 결과를 열어보니 찬성이 49.8% 반대가 50.2%로 불과 5만 표 차이. 그야말로 접전이었다. 이전까지 한 번의 이례 없이 압도적인 우파 지지율로 막을 내리던 지난 선거들과 달랐다. 남미에 전반적으로 좌파 바람이 불던 2000년대 초반의 '핑크타이드' 당시조차 평화로운 선거로 우파 대통령이 당선되던 콜롬비아다. 

이 협정은 국론을 분열시켜 양극화의 발화점이 되었고 그로부터 1년 후 진행된 2018 대선에서 국민들이 각각 좌파 후보와 우파 후보 지지자로 이분화되는 초유의 결과를 빚었다.

그렇게 2018 대선에서 좌파 진영의 전 보고타 시장 '구스타보 페트로'와 우파 진영이자 현 대통령 '이반 두케 마르케스'가 맞붙었다. 2차 선거까지 진행되며 초접전을 펼친 결과 근소한 차이로 두케가 당선됐다.

[사진=장보는 콜롬비아 보고타 시민들, 연합뉴스]

두케 정부가 들어선 후 좌파 지지 세력의 시위가 계속됐다. 2019년 당시 칠레를 시작으로 남미에 시위가 번져간 2019년 당시 콜롬비아에서도 시위가 펼쳐졌다. 이는 노동, 교육, 연금, 치안 등 두케 정부 정책에 전반적으로 반기를 든 시위였다.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이어지던 와중 코로나 팬데믹은 쓰나미처럼 콜롬비아를 덮쳤다. 콜롬비아 경제는 6.8% 후퇴했고 빈곤율은 42.5%라는 전무후무한 수치를 기록했다. 이 상황에서 두케 정부가 펼친 증세 정책은 그동안 심화된 빈곤과 불평등에 억눌린 시민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그렇게 2021년 5월 수도 보고타를 비롯한 콜롬비아 곳곳에서 노동조합과 학생, 원주민, 환경운동가 등이 벌이는 총파업 시위가 펼쳐졌다. 

이로 인해 정부는 세제개편안 추진을 철폐했지만 이미 터져버린 국민의 분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경찰 과잉진압에 대한 논란도 커져 여당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악화로 이어졌다. 두케 정권은 매우 낮은 지지율을 보였으며 정권 교체 요구가 커져갔다. 정치 관계자들은 이 사건이 다가오는 대선에서 좌파 후보의 선전에 힘을 실어 준 것으로 분석했다.

국가 외부적 요인 : 핑크타이드 2.0의 시작과 신좌파의 탄생

[사진=남미 지도, pixabay]
[사진=남미 지도, pixabay]

최근 몇 년 들어 남미의 수많은 나라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났고 남미 신진 좌파는 하나의 추세가 됐다. 2018년 멕시코, 2019년 파나마와 과테말라, 아르헨티나, 2020년 볼리비아에서 줄줄이 좌파가 정권을 잡았다.

코로나19 당시 우파 정권들의 무능한 대처로 인해 많은 희생을 가져왔다는 게 단초가 됐다. 여기에 백신 구매 비리와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 임금 횡령 등 부패 혐의도 불거져 탄핵 압박까지 받고 있다. 좌파 세력의 연이은 승리는 그에 대한 반작용인 셈이다. 이번 칠레 대통령으로 집권한 가브리엘 보리치는 "칠레를 신자유주의의 무덤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자신의 좌파 성향을 여실히 드러냈다.

'신자유주의'는 경제를 정치와 분리시키는 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본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무수히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경제난과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분배 정의와 사회 안전망 확충, 보편적 복지 등 '국가'의 적절한 개입 요구가 커진 것이다. 

[사진=브라질의 대선후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연합뉴스]
[사진=브라질의 대선후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연합뉴스]

만약 오는 5월 치러질 콜롬비아 대선에서 좌파로의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면 브라질의 대선 구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10월 치러지는 브라질 대선 후보들 중 현재 좌파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전 대통령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돌아온 전설'로 불리는 룰라는 재임 당시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과 함께 중남미의 '핑크 타이드(좌파 물결)'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핑크 타이드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중남미에서 온건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세력이 득세한 것을 가리킨다.

2022년 콜롬비아와 브라질 대선에서 연달아 정권 교체에 성공한다면 중남미 주요 6개국(경제 규모 순으로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칠레, 페루)에 처음으로 모두 좌파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중남미에 이른바 '핑크 타이드 2.0'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최근 일련의 좌파 정권교체의 경우 이념을 떠나 현 상황에 대한 불만과 변화를 향한 열망의 산물로 보는 분석이 많다. 단순히 이념에 따른 선택이 아니기 때문에 좌파 지도자들이 똘똘 뭉쳤던 지난 1차 핑크 타이드 때와는 다른 양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모두의 예상을 깬 페트로의 '카리스마'

[사진=혁명이 적힌 조끼, pixabay]

현 정권의 실책과 남미의 '좌파 선전' 만이 페트로의 높은 지지율을 가져다 준 건 전혀 아니다. 지난 2018년 대선 당시부터 페트로는 '전조증상'을 제대로 보여줬다.

콜롬비아 좌파 정권은 내부적으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보다 게릴라가 좌파의 대부분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렇기에 좌파 계열 정당들이 정치로 발돋움하기도 전에 내부적으로 분열하는 형태를 띠었다. 

페트로는 젊은 시절 좌익 게릴라 조직 'M-19'에 몸담았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기존 좌파의 한계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2018년 선거 준비 당시 페트로는 상하원 선거 당시 겨우 세 명의 의원 확보에 그쳤다. 여기서부터가 시작이다. 그는 예상을 깨고 대선 후보로 나서 진보 진영과 좌파를 성공적으로 규합했다. 그는 전례 없던 좌파의 통합을 가져왔고 이는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그는 당시 선거에서 '역대 좌파 후보들 중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후보'를 거머쥐었다. 1974년도 이후 콜롬비아의 좌파 다수 득표자의 득표율은 10% 안팎을 겉돌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2018년도 선거에서 페트로는 2차 투표율 41.8% 득표율을 거두며 기존 좌파에게서 볼 수 없었던 높은 지지율을 보여줬다. 

[사진=콜롬비아 국기, pixabay]
[사진=콜롬비아 국기, pixabay]

이 기세는 그대로 이어져 현재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페트로는 압도적 선두를 달리고 있다. 단임제이기에 두케는 후보 자격을 가질 수 없다. 그렇다고 우파 진영에서 두케를 대체할 만한 마땅한 인물도 내놓지 못한 상황이다.

상대측의 연이은 실책, 남미 전체에 부는 핑크타이드 물결, 여기에 더해진 역대급 후보의 자질까지. 아무래도 페트로의 여유로운 당선이 예상된다.

페트로가 정권 교체에 성공한다면 그는 국가의 정치사에 어떤 발자취를 남길까. 콜롬비아가  '정치 과도기' 상태이니만큼 다음 정권의 역할은 콜롬비아의 향후 21세기 정치 판도를 결정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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