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우파 마크롱, 극우 르 펜의 서로 다른 공약들
反극우 '공화국 전선' 딸 르 펜이 넘어설까?
대선 결과에 따라 '프렉시트' 현실화될 수도

국민전선의 마린 르 펜(좌) 후보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우)[사진=로이터통신/연합뉴스]
국민전선의 마린 르 펜(좌) 후보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우)[사진=로이터통신/연합뉴스]

[월드투데이 최도식 기자] 프랑스 대선 1차 투표가 끝이 난 가운데 결선에 오를 두 명의 후보자와 이들의 당선 가능성을 분석해 보았다.

지난 11일 집계된 개표 결과에 따르면 중도 성향의 '전진하는 공화국!(LPEM)' 소속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7.4%를 득표해 1위를 차지했다. 이로써 마크롱 대통령은 2차 결선투표를 통해 지난 2002년 이후 20년 만에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에 도전하게 된다.

마크롱과 함께 결선 투표에서 경쟁할 후보는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 펜이다. 그녀는 1차 투표에서 24.2%를 기록해 지난 2017년 이후 또 다시 마크롱과 결선 투표를 치르게 됐다. 당시에는 결선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66%의 득표율을 차지해 약 30% 정도의 압도적인 격차로 당선됐지만, 이번 대선은 1차 투표 결과에서 알 수 있 듯 박빙의 승부가 예견되고 있다.

현지 여론 조사 기관들은 근소한 차이긴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의 우세를 점쳤다. 프랑스여론연구소(Ifop)는 51% 대 49%, 엘라브는 52% 대 48%, 입소스와 소프라 스테리아는 54%대 46%로 마크롱 대통령의 승리를 예측했다.

친기업 엘리트 마크롱 vs 극우 포퓰리스트 르 펜

결선투표에 나서는 두 명의 후보 [사진=EPA/연합뉴스]
결선투표에 나서는 두 명의 후보 [사진=EPA/연합뉴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창당, 자유주의와 친유럽주의를 표방하는 중도주의 정당 '전진하는 공화국!' 소속 정치인이다. 프랑스 최고 명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과 국립행정학교(ENA)를 거친 정치 엘리트로 금융인으로서도 막대한 수입을 벌어들인 인물이다. 

만 39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대통령에 당선된 능력자이며, 노동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게으름뱅이"라 지칭하는 등 친기업적인 행보를 걸어왔다. 이번 대선에서도 법인세 감면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밖에도 경찰과 판사 규모 확대, 현행 62세이던 정년을 65세로 연장해 연금 부담을 줄이는 등 우파의 지지를 이끌어 낼 공약들을 내세웠다.

물론 서민들을 위한 정책도 들고 나왔다. 새 임기 중 실업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 5년 내 '완전고용'을 약속했다. 이 밖에 에너지 정책에서는 이른바 '원전 르네상스'를 주도하며 신규 원자로 6기 건설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마크롱 대통령 대중연설 [사진=EPA/연합뉴스]
마크롱 대통령 대중연설 [사진=EPA/연합뉴스]

반면 극우 정당의 후보로 출마한 르 펜은 각종 세금을 인하는 정책으로 국민들의 환심을 사고 있다. 휘발유, 가스, 전기 등 에너지 부가가치세를 현행 20%에서 5.5%로 감면, 고속도로 국유화로 통행료 인하 등이 주요 내용이다. 또 유럽연합(EU)보다 프랑스를 우선시 하겠다는 발언으로 프랑스 국민들의 마음을 자극하고 있다.

이처럼 르 펜은 포퓰리즘 정책들을 전면에 내세워 5년 전과 달리 마크롱의 권좌를 위협할 정도로 지지층을 규합했다. 하지만 극우정당의 당색이 바뀐 것은 아니다. 이민자 정책에 대해선 여전히 극우 노선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민 관련 법을 강화하고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하겠다는 공약에서 반이민, 반이슬람을 지향하는 당론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극우' 르 펜, 프랑스 대통령될 수 있을까?

르 펜 후보 [사진=AP/연합뉴스]
르 펜 후보 [사진=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사태로 신냉전 상황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전세계적으로 극우 정치가 다시금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3일 실시된 헝가리 총선에서 극우성향의 청년민주동맹(피데스)이 199석 중 135석을 싹쓸이해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4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원들을 또 한번 결집시키며 민주당 정권을 흔들고 있다. 르 펜 돌풍 역시 이러한 추세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는 프랑스이기에 극우 대통령을 막기 위한 움직임 역시 강하다. '공화국 전선'이라 불리는 반극우동맹은 지난 2002년 대선 당시에 빛을 발했다.

르 펜이 몸담고 있는 국민전선의 창립자 장마리 르 펜은 결선 투표에서 우파성향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에게 패하며 공화국 전선에 굴복했다. 당시 시라크 대통령은 결선투표에서 극우 후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연임에 성공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의 상황이 이번 대선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마크롱과 르 펜은 각각 연임과 최초의 극우대통령을 노리고 있다. 더 놀라운 건 장마리 르 펜이 르 펜 후보의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딸 르 펜은 프랑스 극우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버지 르 펜을 당에서 몰아내며 극우의 이미지 변화를 꾀해왔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역시 극우 대통령을 막기 위한 동맹이 구축되고 있다. 

특히 급진좌파 성향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의 장뤼크 멜랑숑 후보가 르 펜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멜랑숑 후보는 1차 투표 당시 마크롱 대통령(27.8%), 르 펜 후보(23.1%)의 뒤를 이어 21.9%의 득표율로 3위를 기록했다.

득표율 3위를 기록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의 장 뤼크 멜랑숑 후보[사진=AFP/연합뉴스]
득표율 3위를 기록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의 장 뤼크 멜랑숑 후보[사진=AFP/연합뉴스]

멜랑숑이 중도우파의 마크롱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진 않았지만 '반(反)르 펜'에 대해선 단호한 입장을 펼친만큼 결선투표에서 마크롱 대통령에게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도 한자리 대의 득표율을 기록한 녹색당 야니크 쟈도 후보, 사회당 안 이달고 후보 진영들 역시 극우파 집권을 막기 위해서 '공화전선'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생애 3번째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는 르 펜은 매 선거 때마다 지지율 상승을 보여주며 대통령 권좌에 가까워졌지만 이번에도 뿌리 깊은 반극우 동맹을 넘어서는 것은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다른 후보들과 정치적 이념에서 크고 작은 차이를 보이는 마크롱 대통령은 초당적 차원의 '공화국 전선' 구축으로 반사이익을 얻게 됐다.

프랑스 대선의 결과에 따라 EU 와해될 수도...

르펜 후보 언론사인터뷰 [사진=AP/연합뉴스]
르펜 후보 언론사인터뷰 [사진=AP/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과 러시아 간의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전쟁의 장기화와 동시에 지금의 신냉전 국면까지 오랫동안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럽연합(EU)을 강조해 온 마크롱 대통령과 프랑스의 EU탈퇴, 즉 프렉시트(Frexit, France + Exit)를 내세웠던 르 펜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적극적인 외교행보로 유럽의 해결사로 부상한 마크롱 대통령은 일전부터 '강한 EU'를 주창하며 유럽의 단결을 촉구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더라도 EU군 창설 등의 의제를 던지며 EU라는 틀 안에서 공동 방위 태세를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또 EU의 의장국으로서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와 함께 유럽이 추구해 온 가치들을 수호하기 위해서도 부단히 노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마크롱 대통령 대중연설 중 함께 나부끼는 프랑스국기와 유럽연합기 [사진=EPA/연합뉴스]
마크롱 대통령 대중연설 중 함께 나부끼는 프랑스국기와 유럽연합기 [사진=EPA/연합뉴스]

반면 '유럽회의론자'인 르 펜 후보는 줄곧 프랑스의 EU 탈퇴를 주장해왔다. 최근에는 프랑스 우선주의라는 표현을 통해 좀더 완곡한 방식으로 에둘러 표현하고 있지만 권위주의적인 푸틴 대통령을 추앙했던 전력이 있는만큼 전통적인 유럽적 가치와는 동떨어진 사상을 가지고 있다. 

만약 르 펜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현재 의장국 프랑스가 EU에 소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EU 내에서도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는 상황에서 독일과 함께 EU를 떠받치고 있던 프랑스가 역할 축소, 더 나아가 이탈까지 한다면 EU의 미래는 보장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의 안보지형에 큰 변화가 초래된 상황에서 프랑스 대선의 결과가 향후 유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이번 대선에 유럽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결선투표를 앞둔 마크롱과 르 펜은 현지시간으로 오는 20일 TV토론회에 참석한다. 이후 24일  프랑스와 유럽의 명운을 건 최종 결선투표가 실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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