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 고문, 징역 160년형 목전에 앞둬
포기 않는 미얀마 국민들, 무장도 기꺼이
잔혹의 끝을 모르는 미얀마군...피난민에 총탄까지

[월드투데이 김수민 기자] 오는 2월 1일은 미얀마 쿠데타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군부의 탄압은 매서웠지만, 미얀마 국민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해 2월 1일 미얀마 군부가 11월 총선 결과에 불복하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군부는 아웅 산 수치 국가 고문이 이끄는 국민민주연맹(NLD)의 압승을 부정선거라 주장하며 정권을 찬탈했다.

국민의 힘으로 53년 만에 얻은 문민정부를 5년 만에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사진=아웅 산 수치 국가 고문, AFP/연합뉴스]
[사진=아웅 산 수치 국가 고문, AFP/연합뉴스]

징역 160년형 위기에 처한 수치 고문

군부는 '정치적 제거'부터 시작했다. 쿠데타 당일 수치 고문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을 구금했다. 

가택 연금된 수치 고문은 지난해 말 선고에 이어 지난 10일 무전기 불법 수입·소지 빛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 위반 혐의 등으로 4년 징역형을 추가로 선고받으면서 전체 형량이 6년으로 늘어났다. 

지난 15일에는 기존 10여 개의 범죄 혐의에서 5건의 부패 혐의가 추가 기소되면서 최장 160년형 이상을 선고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수치 고문 외에도 NLD 소속 의원 649명이 체포당했으며, 4분의 3인 약 490명이 여전히 구금 중이다. 이 중에는 90년형을 선고받은 인사도 있다.

일각에서는 군부의 장기집권을 위해 2023년 새 총선을 치르기 전 NLD를 해산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사진=평화시위 중인 미얀마 국민(위)와 무장한 미얀마 국민(아래), AFP/연합뉴스]
[사진=평화시위 중인 미얀마 국민(위)와 무장한 미얀마 국민(아래), AFP/연합뉴스]

지지 않는 미얀마 국민들, 평화시위에서 무장투쟁까지

◆ 시작은 평화롭게

군부의 공격은 군부에 저항하는 시민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쿠데타 발생 직후 시민들은 군부에 크게 반발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소음 시위', '소셜네트워크(SNS) 저항 운동', '총파업' 등 평화적인 방법으로 '시민불복종운동(CDM, Civil Dicobedience Movement)'를 이어갔다. 

시민불복종운동은 시민들이 권력의 명령이 부당하다고 판단했을 때 이를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군부는 계엄령을 선포하며 5인 이상 집회 금지 및 통행금지령을 발령하거나 인터넷과 SNS를 통제하는 등 시위에 대응했다. 

[사진=무장한 미얀마 군인, AFP/연합뉴스]
[사진=무장한 미얀마 군인, AFP/연합뉴스]

◆ 첫 희생자 발생, 서로를 향해 겨눠진 총구

사실상 시위가 금지된 지난해 2월 9일, 어김없이 거의 모든 도시에서 시위가 발생하면서 전투경찰은 시위대 해산을 위해 총을 꺼내들었다.

이때 발사된 실탄으로 2명이 중태에 빠졌고, 4일 후 뇌사 상태에 빠져 생명유지장치로 연명해 오던 20대 여성의 가족들이 산소호흡기 제거에 동의하면서 첫 번째 희생자가 발생했다. 

같은 날 군부는 '개인의 자유와 안보를 위한 시민보호법'(제5·7·8조) 효력 중단을 발표한 후, 시민불복종운동에 가담한 인사 및 시민들을 납치, 체포했다. 총기 발포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3월 27일에는 군경의 무차별 총격으로 5세 유아를 포함한 어린이 등 무고한 시민 최소 114명이 사망했다.

쿠데타 이후 가장 많은 사망자 기록에도 개의치 않고 미얀마 군은 '미얀마군의 날'을 축하하며, 호화 리조트에서 성대한 행사까지 진행했다.

결국 지난해 4월 1일 미얀마 민주진영이 군부와 국지전을 이어오던 카렌 민족해방군 등 무장 세력과 손잡고 '국가통합정부'(NUG, National Unity Government) 수립을 선언하면서 사실상 내전에 돌입했다. 실제 지난해 9월 NUG는 전쟁을 선포했다.

[사진=폭격 맞은 미얀마 마을, AP/연합뉴스]
[사진=폭격 맞은 미얀마 마을, AP/연합뉴스]

미얀마군의 끝없는 잔혹행위

무장한 반군과 군부의 충돌이 계속 이어지면서 군부의 잔혹행위는 갈수록 정도가 심해졌다. 지난해 12월 말에는 아동 4명을 포함한 민간이 최소 35명이 불에 탄 시신으로 발견돼 세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지난 17일에는 해당 사건이 발생한 마을에서 도망친 주민 600명가량이 머물고 있는 피란민 캠프에 폭탄을 투하해 7세와 18세 자매 등 주민 3명이 숨졌다.

미얀마 군부를 이끄는 민 아웅 홀라잉 최고사령관은 이 정도로 저항이 심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지난해 6월 홍콩TV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 있다.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쇠(AAPP)는 군부의 폭정으로 숨진 이만 1천500명에 육박하며, 체포 및 구금된 이는 1만 1천500명을 넘어섰다고 전했다.

[사진=태국 국경을 넘은 미얀마 피란민들, 로이터/연합뉴스]
[사진=태국 국경을 넘은 미얀마 피란민들, 로이터/연합뉴스]

쿠데타 여파는 국경을 넘어 '태국'까지

쿠데타 사태는 이웃 나라 태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은 지난해 12월 기준 태국으로 건너간 피란민이 2천500명가량으로 집계됐다고 알렸다. 지난 13일에는 4천700명 이상이 태국으로 넘어간 상태라고 자유아시아방송(RFA) 등이 보도하기도 했다.

태국 국경을 넘은 건 피난민뿐만이 아니다. 총탄과 포탄 등이 태국 마을로 날아들면서 지난 14일 태국군 부대가 연막탄을 발사해 미얀마 측에 경고를 보냈다.

앞서 지난해 4월 말 태국 주지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미얀마군의 유탄에 맞아 부상당한 국경 마을의 한 여성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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